거짓말

by 이순미

팔순이 지난 친정어머니의 생신날이다. 서둘러 준비를 한다. 가발을 쓰고 그 위에 다시 모자를 쓴다. 답답하면서 머리 거죽에 이물질이 닿은 것 같은 거칠한 느낌이 좋지 않다. 가발 위에 모자까지 쓰고 나니 더 답답하다. 화장이 곱게 먹으라고 얼굴을 두드린다. 며칠 전 반짝이며 윤기가 흐르는 빨간 색 립스틱을 조금 비싸게 샀다. 그 립스틱을 입술에 바른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한번 웃어 본다. 하루 종일 이렇게 웃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해보는 연습이다.


팔순이 지나 기력은 약해 졌지만 어머니는 눈치가 아주 빠르시다. 두어 달 전 친정에 갔을 때 어머니는 내 얼굴색이 좋지 않다고 어디 아프냐고 물으셨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으며 어머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시답잖은 농담을 하면서 웃고 떠들었지만 어머니의 그 한 마디에 가슴이 철렁 했었다. 연세 많고 건강이 좋지 않으신 어머니를 위해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엄마의 둘째 딸이 이제 곧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난 후 어머니를 뺀 친정 식구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거짓웃음을 지으며 가벼운 암에 걸렸려 입원했고 수술 받을 거라고 했다. 암이 가벼울 수 있겠는가. 암은 암이지. 속마음과는 달리 듣는 사람이 받을 충격이 염려되어서 걱정 말라고 했다. 말을 잃고 눈만 동그랗게 뜨는 가족들에게 나는, 요즈음은 의술이 좋으니 수술하고 치료 받으면 그만이라고 호기 있게 한소리 하면서 웃었다. 진단을 받고 난 후 우울하던 며칠이었으나 거짓말을 섞어 가볍다고 말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픈 것보다도 먼저 어떻게 식구들에게 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암 진단을 받고도 울지 않았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몹시 우울하고 무섭고 겁이 나기는 했지만 울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는데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러나 전화는 걸 수 없었다. 눈물이 없는 메마른 가슴이지만 담담하게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불안한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엄마를 부르면서 가슴에 안겨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날 좀 도와줘. 무서워 엄마. 나 좀 꼭 안아줘.'


병원에서 머리카락이 빠질 거라 했던 말을 기억하면서 빗을 살폈다. 한 올 두 올 빠지던 머리카락이 어느 날부터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건강할 때는 한 올의 머리카락이라도 잡아 당기면 따끔하니 아팠는데 머리카락을 당겨보니 아무 감각이 없다. 머리카락이 새까맣게 쌓여간다. 무슨 오기인가. 앉아서 일삼아 손바닥으로 머리를 문질렀다. 순의 움직임에 따라 감각없이 머릿카락이 떨어진다. 머리카락은 빠지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으니 뽑는 게 아니라 털어내는 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 삼 일 동안의 일과는 손 운동뿐이었다. 살갗만 남은 민머리가 되었다.


어머니의 생신날이다. 건강할 때의 나는 모자를 즐겨 쓰지 않았다. 다시 어머니 앞에 서야 하는데 모자를 쓰고 가면 눈치 빠른 어머니가 이상해 하실 것 같다. 팔순이 넘어도 아직은 여자인지라 옷이나 장신구에 대한 욕심이 많은 어머니가

"네 모자 예쁘다. 나 줘라"

하고 말씀 하시면 어쩔 것인가. 종종 머리 핀이나 모자나 목도리에 욕심을 내고, 딸들이 입고 간 옷도 예쁘다고 나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벗어 달라고 하시는 어머니다. 어머니가 예쁘다며 모자를 탐내도 드릴 수 없다. 한번 써보게 모자 좀 벗어보라 하시면 어쩔 것인가. 민머리가 되어 어머니 앞에서는 모자를 벗을 수 없으니.

광대처럼 진하게 화장으로 병색이 감도는 얼굴색을 감추고 입술을 빨갛게 바르고 가발을 쓴다. 어색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너 가발 썼니?"

하고 물을지도 모르니 또 하나의 속임수로 나를 방어 한다. 가발위에 모자를 쓴다. 모자를 욕심내면 모자 정도는 벗어 드리지 뭐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육 남매를 둔 어머니의 자식들은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 크게 성공하거나 부자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제 위치에서 말썽부리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는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런 행복도 못보고 돌아가셨다고 아쉬워하는 말을 가끔 한다. 모여 앉은 우리 남매를 돌아보면서 행복에 겨워서 하는 말씀이다. 크게 말썽을 부린 자식도 없고, 배고픈 자식도 없고, 건강을 잃은 자식도 없었으니 어머니의 노년은 행복하다고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가 아프기 전까지는 그랬다. 시시때때로 자주 모여서 함께 어울리며 놀아주는 게 어머니가 원하는 행복이려니 생각하며 살았다.


우리 가족 같이 화기애애한 가족도 드물 것이란 생각도 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던 내가, 가발을 쓰고 과장된 화장을 한다. 빨갛게 입술을 바른다. 실물보다 더 예쁘고 화사하게 보이기 위해 화려한 포장지를 둘러쓰고 있다. 속을 감추고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엄마의 마음으로는 지식에게 일어나는 일을 가슴으로 나누고 싶을 테지만, 어머니 앞에선 나는 진실 하지 못하다. 속임수로 치장을 하고 어머니 앞에 선다.


"아이고! 오랜만이네. 지난번 보다 예뻐졌구나. 그땐 어디 아픈 거 같아서 걱정했는데."


어머니의 말에 까르르 웃고 있지만 나는 아프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머니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 나이 많고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에게 많이 죄송하다. 당신의 딸이 건강하지 못해서. 자식은 많지만 가진 것은 적어서 늘 자식들 입을 걱정하며 지난날을 살았던 어머니다.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고 살면서 수시로 모여서 함께 웃어주는 자식들 사이에 앉아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어머니다. 그 어머니 앞에 한동안 나서지 못했던 내가 또 허풍을 떤다. 화려한 옷에 고깔모자를 쓰고 연지곤지 진한 화장을 한 어릿광대가 되어서 웃으며 한바탕 묘기를 부린다. 그런 딸을 보며 어머니가 웃으신다. 건강한 척 허풍이 가득한 내 새빨간 입술을 보면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래된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