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했던 당신

오래전 일기장에서

by 이순미


아침준비를 하는데 저쪽에서 남편이 전화를 받고 있다.
전화 내용이야 알 수는 없지만 목소리가 들렸다.
- 오케이.

오케이라는 낱말 사이로 친정 어머니가 떠 오른다.


어린시절 시골집 마당에는 항상 개가 있었다.
개의 역활은 도둑을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하며 자랐다.
전기가 없어 어둠이 짙은 밤에 낮선 사람의 인기척을 가장 먼저 알고 경계를 하게 했지만, 외출에서 돌아오는 가족을 보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한 가족이었다.
매정하게도 여름 복날무렵이 오면 강아지에서 자란 커다란 개가 사라지곤했다.

개장수에게 팔려가면서 작지만 우리 집 경제에 도움을 주었을 개는 가축 중에서는 우리와 가장 친한 동물이었다.

우리집 개의 이름은 항상 '메리' 와 '도꾸'였다.
한번 메리였다가, 메리가 사라지고 나면 도꾸가 왔고, 도꾸가 사라지면 다시 메리가 왔다.
언제부터 강아지의 이름이 메리와 도꾸였는지 모르지만 그 이름을 부르면 강아지들은 매우 좋아했다.
어렸을 때는 강아지 이름이 모두 메리와 도꾸인줄 알았다.
중학교를 가서 영어 교과서를 받으니 메리라는 여자아이가 등장했다.
그리고 DOG라는 낱말을 배웠다.

농촌에서 여자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교육을 받지못한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시집을 와서 고등교육을 받은 남자 가족이나 신식공부를 하는 조카들 사이에서 들은 영어가 강아지 이름으로 변했던 것일까?
바람결에 강아지를 도그라 부르는 걸 알았을 것이고, 어렴풋이 들었던 도그가 집에서 키우는 개의 이름이 되었던 모양이다.
경제가 발전해 세상이 많이 변한 후에도 어머니의 강아지는 여전히 메리와 도꾸였다.

이미 오래전 이야기지만 어머니 입에서 가끔 영어가 튀어 나왔다.
즐거운 일이 있거나, 칭찬을 할 일이 있거나, 가족들과 웃음을 나눌 때면 어머니가 즐겨하는 말이 있었다.
- 오케이 땡큐 유 넘버원.
얼굴가득 웃음을 담고 두 손을 번쩍 들어 엄지척을 하시던 어머니다.
평생 강아지 이름이 메리와 도꾸였던 영어실력으로 '오케 땡큐 유 넘버원'은 또 어떻게 배우셨을까?




전화를 거는 남편의 대화 중에 들리는 오케이라는 낱말 속으로 어머니의 모습이 지나간다.
웃음과 칭찬이 많았던 어머니.

- 오케이 탱큐 유 넘버원


갈 수 없는 지난 시간을 그리며 어머니를 생각한다.
긍정의 사고로 사신 어머니, 두손 번쩍 들어 자식들에게 엄지척을 보내시던 어머니, 웃음 많았던 어머니, 그 옛날의 당신은 참 명랑하신 분이였구나. (2017의 어느 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