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핸드백

by 이순미

딸이 들고 다니는 핸드백이 새삼스레 예뻐 보이는 날이 있다. 명품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디자인의 가방이지만 그날의 기분에 따라 더 예뻐 보이는 날이 있다. 딸을 바라보며 요즘은 저런 가방을 많이 드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때는 커다란 가방이 유행인듯 했지만 지금은 작고 아담한 모양의 가방이 보기 좋다.


여자에게 핸드백은 외출시 필수품이지만 패션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지 못한채 내 젊은 날이 갔다. 필요하니까 한두 개, 검은색이나 커피색 정도의 무난한 가방이 나의 필수품이었다. 중년까지 세상에 명품 가방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핸드백은 그저 소지품을 담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오래전, 중국의 북경으로 여행을 갔었다. 팔순이 넘은 시어머님과 시누이 시동생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며느리로서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어른을 모셔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살아온 어머님은 그저 누가 돈이라도 쓸까 봐 수시로 잔소리를 하셨고, 맏며리인 나 역시 자린고비 생활을 벗어나지 못할 때였다.


패키지여행 중에 시장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가이드는 물건을 살 때 75% 정도 할인하라는 팁을 살짝 안내해 주었다. 에누리 싸움을 하지 못하는 나다. 북경의 재래시장에서 그저 어정쩡하니 서서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쇼핑을 주도하지 못한 채 시누이와 동서를 따라 핸드백가게를 기웃거렸다. 다양한 모양과 예쁜 무늬의 핸드백이 마음에 들었다. 검정과 커피색 가방으로 지내던 내 생활 속에 다양한 패턴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핸드백의 종류도 많았다. 여행지 대도시의 재래시장은 소도시의 재래시장에 서너 군데 있는 가방가게와는 달랐다. 서울사람인 시누이와 동서를 따라 가방을 고르고 그녀들 옆에서 덩달아 흥정에 들어갔다. 여행객으로 가이드의 말을 믿으며 75%의 할인 가격에 도전했다. 언어는 달라도 눈치와 어설픈 몇 개의 단어들로 말이 통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계산기 속의 숫자를 보며 흥정했는데 50% 할인 정도에서 우리는 대치했다. 다시 10%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며 시간이 흘러갔다. 서로 버티며 이어가던 협상을 접고 두 개의 가방을 샀다. 되돌아 생각하면 몇 천 원을 두고 긴 시간 협상이 이어졌던 것 같다. 내가 뭐 하는 짓이지? 뒤늦게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방 한 개를 들고 친정에 갔다.


"엄마, 나 여행 다녀왔어."


"아이구 잘했다. 그래 여행은 재미있었니?"


여행은 돈 낭비라고 인상을 쓰시는 시어머님과 달리 친정엄마는 딸이 비행기 타고 외국 여행 다녀온 걸 무척 대견해하고 즐거워하셨다. 그 엄마에게 외국 여행 기념으로 핸드백을 선물 했다.

"나, 이거 자랑했어. 딸이 외국에서 사다줬다구."


얼굴 가득 웃음을 담은 엄마가 장롱 안에 고이 모셔 놓은 가방을 꺼냈다. 몇 달 전에 중국에서 사 온 가방이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건 몇만 원에 불과한 모조품 가방이었다. 여행 이후 가방에 관심이 달라진 나는 그때 그 시장에서 보았던 다양한 무늬와 모양의 가방이 명품을 카피한 것인 걸 비로소 알았다. 엄마의 가방 역시 그중에 하나였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를 짓고 살던 엄마는 딸이 사준 가방이 자랑거리였을 것이다. 엄마 눈에는 예쁜 가방이었을 테니까. 아무것도 모르던 내 눈에도 예뻐 보였던 가방이었으니까.


이를 어쩌나? 노인 대학에는 시내에서 오는 할머니도 많고, 엄마가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교사출신 할머니도 있는데 그들의 눈에 엄마의 가방은 어떻게 보였을까? 미안하고 죄송하고 속상했다. 딸의 무지가 엉뚱한 곳에서 엄마의 품위에 상처를 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인데.


"엄마, 이제 그 가방 그만 들고 다녀. 한참 들었잖아. 사실은 그거... 비싸고 좋은 거 아니에요."


우울하지만 에둘러 그만 들고 다니라고 말했다.


"아이고 비싸야 좋은 거냐? 난 딸이 사다 준 게 최고여. 이렇게 이쁜 가방을 내 평생 처음 든단다."


여전히 웃음 많은 엄마가 가방을 쓰다듬었다. 여전히 우울하고 미안했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전 이야기다. 요즘 나는 에코백을 즐겨 든다. 나이가 들어가니 무게가 느껴지는 좋은 가죽가방보다 천으로 된 가방이 가볍고 편하다. 크고 작은, 그림이 들어간, 장소와 용도에 따라 모양이 다른 저렴한 가방 몇 개 두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바꾸어 들고 다닌다. 이제는 성인이 된 딸이 선물로 준 좋은 가방은 어쩌다 한 번 들고 나가지만 평소의 나는 그저 가벼운 가방이 마음 편하다.


가끔 내 가방을 바라보다가 친정엄마를 떠올리는 건 아직도 그때의 죄송함이 풀리지 않았다는 증거일까? 그 후에 나이 많은 할머니가 된 엄마를 위해 예쁜 그림이 그려진 가벼운 천 가방을 사 드렸다. 가벼워서 참 좋다며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니시던 엄마가 생각나는 날이다. 엄마의 외출이 자유로웠던 시간에, 내 곁을 떠나 먼 길 떠나시기 전에 좀 더 예쁜 가방이나 가벼운 가방을 더 선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날이 후회스럽다.

경기도 외곽에 너른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어르신들도 여유롭게 차 마시는 분들이 많다. 또는 가족과 함께 나오신 어르신들도 있다. 카페에 앉아 어르신들을 바라보니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와 함께 나들이하는 딸들이 부러워지는 시간이다. 예쁜 가방을 멘 엄마와 함께 외출하는 일, 그건 내게서 영영 사라진 그리운 꿈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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