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by 이순미

냉면


냉면을 먹으러 갔다. 오래된 냉면집은 허술하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점심시간 무렵이면 앞의 도로까지 간이 의자가 놓이는데 손님들은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 도로 위를 서성이며 기다린다. 손님들의 줄로 출입문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문 옆에 순서판을 놓고 이름이나 가명을 쓰고 번호를 매긴다. 그 번호는 비교적 도착한 순서에 의한다.


냉면집 앞을 서성이며 이름이 불리는 순서대로 식당 안을 들어서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우리들 삶의 순서는, 냉면집 손님의 순서만큼의 질서도 없다. 먼저 도착했으면 먼저 불리는 익명의 번호나 이름에 따라 냉면 식탁 앞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오는 순서에 따라가는 순서가 정해지지 않는다. 삶의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막연한 순서 앞에서 서성일 때 느닷없이 또는 계획된 숨은 손길에 의해 삶이 정해진다.


여름이면 더 많이 찾아 나서는 냉면처럼 시원한 한 끼를 얻기 위해서는 삶에도 인내가 필요하다. 밀가루의 부드러운 국수 같은 시간이 이어지다가 어렵고 힘든 시간을 이겨내면 그게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다. 때로는 작지만 일상에서 주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삶을 다독여주기도 하고, 추억이란 이름으로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가족모임이 있었다. 나이 드신 어머니부터 어린 조카까지 많은 인원이 식당을 절반쯤 차지하고 앉아 식사를 했다. 한 옆에서는 왁자한 웃음소리 속으로 편육 안주를 먹으며 소주잔이 오기고 있었지만, 한 옆에서 편육 접시에 눈을 주며 냉면도 같이 먹고 있었다. 쫀득쫀득하며 고운 긴 면발로 만든 냉면 위에 오이가 가지런히 놓이고 빨갛게 양념한 회 조각이 놓인 냉면이 있고 다른 쪽에는 물냉면이 놓였다.


후루룩 냉면을 먹던 어린 조카가 컥컥거린다. 모두의 시선이 조카에게로 쏠렸다. 어린 조카가 냉면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 속에 넣었는데 긴 면발이 냉면 그릇에 그대로 매달려 있으니 그 면발을 입속으로 넣으면서 먼저 입속으로 들어간 면발을 꿀떡 삼켜버린 것이다. 순간 냉면그릇 앞의 우리는 놀라 허둥댔다. 누군가 옆에 놓인 가위로 냉면을 싹둑 잘라버렸다.


잠시 후 물 한 모금으로 숨을 돌린 조카의 눈망울이 촉촉하다. 얼마나 놀랐을까? 세상에 밥을 대신하는 음식은 많았고, 냉면과 국수나 라면 가닥과의 차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어린 입으로 냉면은 그저 처음 보는 국수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카는 오랫동안 냉면의 첫 경험이 눈물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옆에서 어머니도 냉면을 드시고 계셨다. 어머니의 치아는 몹시 좋지 않다. 아주 오래전 농촌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절에 무허가 시술로 만들어 낀 틀니의 영향으로 잇몸은 건강하지 않았다. 훗날 치과에서 만든 좋은 틀니를 끼었을 때는 그 길들임을 세밀하게 할 만큼의 정신 건강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대충 음식만 씹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틀니를 가지고 있다. 직접 농사지은 밀가루를 밀 판과 홍두깨 자루로 밀어가면서 특별한 양념 없이 장국으로 먹는 국수에 익숙했던 입맛이, 양념이 가미된 달고 새콤하고 매콤한 냉면을 새로 발견한 음식처럼 무척 맛있어하셨다. 그동안 좋아하시던 냉면을 먹으러 함께 다니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맛있다"를 연발하면서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다. 어머니는 어느 사이 식탁 위의 가위로 냉면을 잘게 조각내서 숟가락으로 퍼 드시고 계셨던 것이다. 어린 조카가 긴 냉면 가닥에 눈망울이 촉촉해지는 동안, 어머니는 마치 밥알같이 잘디 잘게 잘라낸 냉면을 드시고 계셨다. 세월이 어머니의 냉면 먹는 법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어머니와의 일화를 생각하는 사이에 빈자리가 생겨나 적어놓았던 이름이 불려지고 깨끗한 상 잎에 자리를 잡았다. 작은 방에서 올망졸망 모여 있는 손님들 틈에 앉아 주변을 살펴본다. 옆 좌석에 할머니들이 앉아 냉면을 드신다. 옆 좌석의 할머니들이 냉면을 훌훌 드시는 걸 뵈니 그 모습이 참 부럽다. 냉면을 후루룩 드시는 모습에 어머니 생각이 난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있구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는데, 어머니는 냉면 한 그릇 마음대로 드시지 못하고 누워계신다. 세상에 번진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면회마저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좋아하는 음식 한 숟가락 함께 먹을 수 없다.


올이 긴 냉면처럼 긴 생을 이어가면서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 생각에 냉면을 먹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맛있다던 냉면 그릇 앞에서 코끝이 시큰 거린다. 냉면에 겨자를 많이 넣은 것도 아닌데.







20220716_19074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마솥의 옥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