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엄마가 된 딸이 옥수수를 아주 좋아 한다.
서울에서 지내다 강원도 집에 다녀 올 때면 옥수수를 사오라 부탁한다.
강원도 옥수수가 맛있다.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보다 훨씬 더 옥수수를 좋아 하는 건, 아마도 나의 영향인 것 같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 엄마인 나를 따라 할머니의 텃밭을 자주 다녔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기장에서
글 하나 가져왔다.
<가마솥의 옥수수>
집 앞의 공원 옆에 옥수수장사가 천막을 쳤다. 밭에서 새로 수확한 옥수수를 트럭에 가득 싣고 와서 직접 벗기고, 커다란 솥에서 김을 푹푹 올려서 쪄낸 옥수수를 팔고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다. 옥수수 장사를 바라보면서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다. 농사를 지으시던 어머니는 올망졸망 자라는 여섯 남매를 키우며 새까맣게 햇볕에 그을린 모습으로 늘 밭에서 지냈다.
70년대, 시골의 이른 아침은 동구 밖에 설치 된 확성기에서 우렁차게 들리는 새마을노래로부터 시작 되었다. 어린 나는, 노래에 이어 연속되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잠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그 시간 이면 이미 어머니는 밭으로 나가시고 집에는 계시지 않았다. 늘 잠이 부족해서 길을 걸으면서도 잠을 잔다는 어머니는 그렇게 이슬 젖은 밭에서 이른 아침을 맞이하고는 했었다.
어머니는, 우리들이 아침을 먹을 무렵이 되어서야 수확한 옥수수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옥수수는 금방 따서 쪄 먹는 것이 맛이 있다고 늘 그렇게 새벽에 옥수수 밭을 나갔었다. 식구들이 모두 아침식사를 마친 시간, 부엌에서 물 말은 밥을 급히 먹은 어머니는 자신의 몸은 돌아보지 않고 밭에서 따온 옥수수 껍질을 벗겼다.
마당 한옆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껍질 벗긴 옥수수를 가마솥 가득 넣고 펌프로 끌어 올린 지하수를 부은 후 불을 지폈다. 옥수수는 가마솥에서 푹 익혀야 하고 도중에 뚜껑을 절대 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맛있는 옥수수를 만드는 어머니의 비결이었다. 설탕이나 소금 같은 것을 넣지 않고 물과 불의 힘으로만 옥수수를 푹 익히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여름 한 낮의 오후 시간은 햇볕이 쨍쨍 내리 쬔다. 어머니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가마솥을 열어 양은 다라에 옥수수를 옮겨 담았다. 열전도가 빠른 양은 다라도 금방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정없이 햇볕이 내리 쬐는 여름의 한 낮,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비 오듯이 흐르는 시간에 뜨거운 양은 다라를 머리에 인 어머니가 마을의 논둑길을 걸어 시장으로 나갔다. 그 시간 어머니는 뜨거운 땀을 흘리며 여름의 태양 아래서 자식을 생각 했겠지만, 나는 차가운 지하수에 세수를 하고 부채를 휘휘 저으며 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남겨두고 간 쭉정이 옥수수를 먹었다. 마음속으로는 어머니가 팔러간 질 좋은 옥수수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해가 어둑어둑 넘어가는 저녁 무렵에 집으로 돌아 온 어머니에게서는 많은 잔돈 들이 나왔고 그 돈들이 모여 우리들의 학비가 보충 되었던 것이다.
여고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였다. 길가에 위치한 조그마한 사무실이었다. 늘 혼자서 사무실을 지켰다. 어느 여름날, 시골 할머니 한 분이 옥수수를 팔러왔었다.
“안사요.”
무심하게 한 마디 던지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잠시 후, 창문 너머로 저만치 옥수수를 이고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괜스레 눈물이 나왔다. ‘우리 엄마도 저렇게 옥수수를 팔러 다녔겠지?’ 하는 생각으로 눈앞에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 거렸다. 철없이 지껄였던“좋은 옥수수는 다 팔고 왜, 우리에게는 덜 여물은 것만 주는 거야?” 하고 항의 하던 말들이 철없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할머니를 불러서 옥수수를 한 묶음 샀다. 여름 내내 그 할머니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옥수수를 좋아 해서 라기보다는 할머니의 옥수수를 팔아 주고 싶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옥수수를 좋아 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 내가 옥수수를 좋아 한다고 믿는 할머니는 그 다름 해에도 잊지 않고 나를 찾아 왔었다.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면서 여름이면 옥수수를 사 먹었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어머니가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다. 예전에는 아버지를 도와 한 푼의 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농사를 지었겠지만, 요즈음은 한 알의 곡식이라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농사를 짓는 어머니이다. 건강을 생각해서 이제는 쉬라고 말씀드리면 “먹는 입이 예뻐서 그런다." 라고 농담처럼 웃음으로 이야기 하신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어머니가 손수 가꾸신 채소와 곡식들을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사랑이 담겨 있음을 나는 안다. 당신이 전해주는 것들을 먹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끼며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며칠 전에 어머니의 텃밭에 가 보았다. 이제는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니 잘 정리된 밭이 되지 못하고 곡식과 채소들과 풀이 버릇없이 함께 엉켜 자라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는 옥수수들도 자라고 있었다. 옥수수 사이에 서 있던 키 작은 어머니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맞는다.
“옥수수 익으면 많이 따다 먹어라.”
풀과 함께 무성히 자라는 옥수수 숲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 있는 어머니의 굽은 등도 바라보았다. 그동안 나는, 맛있는 옥수수를 먹기 위해 껍질을 벗기듯이 어머니의 건강을 벗겨 먹으며 살아 온 것 같다.
껍질을 벗겨 삶은 쫄깃한 옥수수를 먹고 나서 입에 힘을 주고 쭉 빨아들이면 달착지근한 옥수수물이 나온다. 그 물마저 맛있다고 빨아 먹었던 어린 날이 떠오른다. 이제는 나이 들어 작아진 어머니가 힘겹게 가꾼 옥수수를 간식으로 먹을 생각을 하는 나는, 다 먹은 옥수수에서 단물까지 빨아먹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 그대로 이기적인 딸인 것 같다.
공원 옆에 차려진 옥수수 천막을 바라보면서 지난날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칠월의 더위 아래서 뜨거운 김이 오르는 가마솥을 들여다보면서 건져 올리던, 잘 익은 옥수수 같은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생각한다. 하찮은 간식이라 여겨지던 옥수수지만, 우리 집 경제에 도움을 주었던 보물이었다.
껍질을 벗겨낸 후 쫄깃한 알맹이와 단물을 다 주고 이제는 빈껍데기의 옥수수 같이 작아진 어머니. 그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는 큰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한다. 오늘 만큼만, 앞으로도 계속 오늘 만큼만 어머니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