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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May 13. 2023

호칭에 관하여

친구들과 만났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결혼생활 30 년이 넘은 우리들.

"난, 여보 소리가 안 나와.ㅋㅋ"

"어머나  나도 그래."

부부로 살면 당연한 단어가 여보 당신 아니던가?

그 흔하디 흔하고 평범한 단어의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말하면 누구에게 말하는지 통하지만  남편을 불러야 할 상황이면..... 자기라던가 ㅇㅇ 아빠지."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게 왜 안 되는지?

연애결혼이 아닌 중매결혼(소개팅)으로 만나 결혼으로 이어지면서 순진한 쑥스러움에 호칭이 애매했었거나, 시부모님이나 시집 식구들이랑 함께 살면서 이런저런 눈치를 보는 입장으로 여보 소리를 하지 못하고 지내다 보니 누구 아빠로 굳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야" 소리는 우리 세대의 연인에 대한 호칭이었으니 그렇게 익숙해져서 오늘에 이르렀을 거라고 우리끼리 결론지었다.

"우리 딸들이 들으면 정말 웃기는 이야기일 거야."


오래전 젊은 시절에 읽었던 작은 이야기가 있다. 한글학자의 호칭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어른 앞에서 자기 남편을 낮춰 부르는 호칭이 "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한 적은 없다. 그 단어는 남편을 너무 낮추어 부르는 것 같고, 그 표현이 맞다 하더라도 듣는 어른의 입장에서도 버릇없이 들릴 것 같았다. "아범"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그마저도 사용하기가 버릇없는 것 같아 "ㅇㅇ아빠"라고 남편을 지칭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호칭을 들었을 때 어르신들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여쭈어 볼 기회마저 영영 사라졌다.


내 자식들이 부르는 남편의 호칭은 "오빠"다.

"오빠가 어느 오빠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네."

가족 행사장에서 딸이 부르는 오빠 소리에 누구를 찾는 거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아, ㅇㅇ오빠요. ㅋㅋㅋ~"

한 부모를 가진 오빠와 남편인 오빠 사이에 서서 이제는 그들의 이름과 함께 오빠를 찾는 딸이다.

그러려니, 다 그렇게 부르니 그건 애교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나이 더 먹었으니 오빠가 맞긴 하다.


인터넷에서 글쓰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가 있다. 젊은 친구들의 명랑하고 쾌활한 글을 읽은 건 재미나다. 아무래도 나이 든 친구들보다는 아는 것도 많고 시대의 흐름에 대한 의견들이 발랄하고 신선해서 많이 배우는 입장이다.  젊은 친구들의 글에서 요즈음의 흐름을 읽고 그 세계를 읽는 건 내 아이들과 미처 나누지 못한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저 모르는 척 덮고 넘어가는 일도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 나눌 줄 아는 가족이어야 하니까.


우리가 젊었던 날들보다는 개방적이고 자기 생각이 뚜렷하다. 시댁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며 참아내고 친정일은 돕지 못해 속앓이를 하던 우리 세대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오래전 광고지만, 친정 동생에게 세탁기를 사 주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는 광고가 있었다. 지인들의 모임에서  "친정 동생한테 세탁기를 사주는 건 심하다"는 말을 듣고 억울하던 생각이 난다. 시동생 결혼식에는 월급의 10 배나 되는 돈을 주는 사람도 있는데 친정 동생에게 한 달 치 월급 정도의 선물이 그렇게 과하단 말인가? 그때는 시집식구와 남자들의 남성위주 사고에 평등이 없던 부부 불평등시절이었다. 다행히 세월은 흘러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지금도 불평등은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애들은 고모는 몰라도 이모는 잘 안다"는 말이 이미 오래전에 들었던 말이다. "여행지에 가면 시부모보다 친정부모와 여행"중인 사람이 대부분인 시대이니 이것도 불평등의 시대인지도 모른다.


인터넷 속에서 글 읽기를 하다 보면 호칭이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할 때가 있다. "그의 아버지", "그의 동생의 부인"이라는 낱말을 읽는다. 아버님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버지라고 해주면 안 되는 걸까?  동서라는 짦은 낱말을 두고 그의 동생의 부인이라고 하니, 누그인지 잠시 생각을 해야했다. 결혼하고 살면서 배우자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동등한 자격으로 불러주면 안 되는 걸까? 가족 이야기를 할 때 마치 사회 속의 호칭을 부르듯이 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물론 극히 일부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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