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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Jan 22. 2023

다육식물 키우는 그녀

- 건강을 위해

다육식물 키우는 그녀     


오랜만에 들른 식당 앞에 그녀가 앉아 있다. 건강이 좋지 않아 한동안 병원을 드나들던 그녀다. 살그머니 다가가 인사를 하니 활짝 웃으며 반긴다. 오랜만에 본 미소가 아름답다. 그녀 앞에는 화분 몇 개가 놓여 있고 조심스러운 손길에 따라 곱게 자리 잡은 다육이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른 다육이가 한 가족인 듯, 하나의 정원을 이룬 듯이 앉아 있다.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작고 통통한 식물과 그녀를 얼굴을 번갈아 보던 나도 나의 작은 화단을 떠 올렸다.


나 역시 한동안 건강이 무척 나빴던 시간이 있었다. 치료 과정에서 빠지는 머리카락을 최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밀었음에도 짧고 검은 머리카락이 누워있던 침대 위와 베개 위에 검게 박히던 시간이었다. 여자의 상징과도 같은 머리카락이 없는 민머리를 차마 거울 속으로 보지 못했고, 가족을 향한 미안함을 수건으로 감싸고 지내던 날들이었다. 우리 집에는 현관을 나서면 마당이라고 할 것도 없는, 하지만 마당이라는 이름을 겨우 달아줄 수는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 거기에 작은 화단을 만들고, 화단 옆으로는 화분을 몇 개 놓았다. 그곳에 시골집의 어머니 집에서 받아온 꽃씨를 뿌렸다. 씨앗은 싹이 나오고 작은 떡잎을 만들더니 조금씩 줄기를 만들어갔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독한 약이 몸에 쌓여 시들어 가는 듯이 머리와 팔다리가 무거웠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보다는 그대로 누워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는 고향에서 가져온 씨앗이 자라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무거운 몸을 추슬러 현관을 나섰다. 아침마다 물 조리개 가득 물을 담아 화단과 화분에 듬뿍 물을 주었다. 물만 주었음에도 계절이 바뀌어 가면서 여린 싹들이 잘 자라서 제법 줄기를 세우고 꽃망울을 맺었다.


여름의 이른 아침은 식물의 줄기마다 촉촉하게 이슬방울이 맺힌다. 하지만 여름의 하루는 무척 뜨겁다. 이슬방울로 하루를 견딜 수 없는 화분에는 아침마다 물을 주어야 한다. 자연이 아닌 열악한 조건의 화분 속 식물들이 여름의 태양과 열기를 이겨내려면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주인인 내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이 병들면 의사의 도움이, 치료를 위한 약이 필요하듯이 자연의 조건을 갖출 수 없는 화분에게는 주인의 손길과 영양분의 공급이 필요하다. 아침마다 물 조리개를 이용해서 화분에 물을 듬뿍 주었다. 매일을 그렇게 지나고 있었다. 그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일과였고, 그 시간을 사랑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화분에 물을 주다가 고개를 들어 멀리 치악산을 바라보았다. 마침, 치악산 위로는 밝은 아침햇살을 가득 담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손아래는 간밤에 숙면을 취하고 힘껏 기지개를 켜는 듯이 싱싱한 줄기와 잎들이 아침 이슬과 조리개의 물에 흠뻑 머금은 채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가족과 이웃과 병원의 도움으로 하루를 지탱하는 나와 내가 주는 물을 먹고 지내는 화분 속의 식물이 서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족들의 사랑에 의지하면서 머리카락을 키우듯이, 내 사랑을 먹고 자라는 화분 속의 꽃들도 무럭무럭 자라 꽃봉오리 맺고 있었다.


아침은 더욱 부지런해졌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아래서 작은 식물의 생을 위해 물 조리개로 물을 뿌리는 시간이 내 건강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대단한 것도 아닌, 단순하게 물을 뿌려 주는 것만으로도 무럭무럭 자라는 화분 속의 식물처럼 나 역시 가족들의 사랑으로 나의 건강을 찾아가고 있다. 식물이나 사람에게는 작은 정성과 사랑이 오늘을 이기는 힘이 된다. 아침, 마당에서의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행복했다. 그날들이 주었던 희망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식당 앞의 그녀 옆에 앉았다. 그녀가 심은 작은 다육이가 잘 자라기를 바란다. 시시때때로 병원을 드나들고, 약기운에 졸음이 깃든 얼굴이지만 그녀의 미소를 바라본다. 마당가의 화분에 물을 주면서 바라본 햇살 속의 희망을 꿈꾸었던 나처럼, 작은 화분이 그녀에게 많은 힘을 주리라 믿는다. 화분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도 주인의 사랑을 먹으며 잘 자라는 다육식물처럼, 늘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그녀와 내게도 함께 하는 가족들의 관심이 우리를 일으켜 세울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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