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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Jan 18. 2023

오늘의 희망 사항

오늘의 희망사항

                                                    

미용실에 파마를 하러 갔다.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날자와 시간을 설정하고 예약을 하고 갔다. 바로 집 앞에 있는 미용실이지만 그렇게 시간을 약속하고 갔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예약 없이 단골 미용실에서 손님들 사이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렸었다. 예약을 한 약속 시간에 들어서니 손님은 한 명도 없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원장이 반갑게 인사한다. 이제 이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두 사람만 있는 미용실에서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고 시술을 한다. 몇 번 다녀갔다고 단골이 된 것 저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이미 기억하고 있는 서로의 주변 이야기를 나눈다. 잘 짜인 각본처럼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저 뒤쪽에는 손님과 고객이라는 작은 계산이 예민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흠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친근함을 담은 이야기 속에서 서로의 욕구를 채워간다. 머리를 말고 기다려야 하는 사이, 한 잔의 커피가 내 앞에 놓였다. 얼음을 띄운 시원한 커피를 마시다 보니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여고 졸업 이후 지금까지 파마를 해 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갔다. 거의 매달 미장원에 들러서 파마를 하거나 커트를 치거나 염색을 하면서 머리카락을 다듬었는데 중년이 넘어가면서는 파마시술의 간격이 벌어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술이나 약품들이 좋아진 이유일 것이다. 더불어서 환경의 변화도 참 많았다. 머리를 말고 약품에 의해 파마가 되는 시간 동안 지금은 커피를 마시며 티브이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또는 스마트 폰을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루프로 꼬불꼬불 말아 놓은 머리 위에 머플러를 쓰고 집에 갔다. 지금처럼 미장원에서 시간을 보내도 되었건만, 왜 그때는 꼭 집을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집에 가서 밥을 먹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티브이를 봤다. 머리에 둘러쓴 머플러를 보면 누구나 파마 중이라는 걸 알 텐데 머플러를 쓴 채 다른 곳도 못 가고 부지런히 집에만 다녔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옛 생각을 하다 보니 중화제를 바를 시간이 되고, 곧 머리 감을 시간이 되었다. 샴푸실의 의자에 앉으면 스르르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편히 누워 있으면 적당히 따듯한 온도의 물이 나오고 약간의 지압과 함께 부드러운 손길이 움직인다. 시원하다. 마사지받는 머릿속으로 옛 기억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세면기 앞에 서서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 커다란 양동이에 더운물과 찬물을 적당히 섞어서 바가지로 머리에 물을 끼얹으며 미용사가 머리를 감겼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나게 불편한 자세로 머리를 감았지만 그때는 불편한 줄도 모르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시절이다.


생각해 보면 그리 먼 시간의 일도 아니다. 예전의 방식이 조금씩 변화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지만, 머리에 머플러를 쓰고 나서던  때가, 양동이 물을 바가지로 퍼서 머리들 감던 시간이 이십 년 전일까? 삼십 년 전일까?  나이가 들고 보니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날의 이야기 같다. 지금 생각하면 불편할 것 같지만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시간이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일상의 사소한 것들도 변한다. 그 변화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느 사이 변해버려 익숙해지고 예전의 상황은 곧 잊혀진다. 하지만 예전의 상황이 있었기에 오늘의 편리함이 만들어지는 거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상은 언제나 유익하고 편리하게만 변하지는 않는다. 벌써 3년이나 되는 시간을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변해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람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도 진화한다. 그 진화가 사람에게 유익한 것도 많지만 때로는 사람을 위협하기도 한다. 무릇,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기중심적이기에 자신의 세상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다른 종족에게 해가 되는 일도 많다. 2019년 말에 중국에서 생겨난 새 생물인 코로나 19라는 병원체가 그렇다. 중국에서 시작해 세상의 모든 나라에 침투한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흔들었다. 그 흔들림에 멀미를 앓으며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한여름, 실내에서는 에어컨 속에서 산다. 시원한 나무그늘이나 선풍기나 부채는 이제는 옛날이야기다. 가는 곳마다 시원한 온도로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에어컨 속에 산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는 실내와 밖으로 나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여름에, 길을 걸으면 저절로 땀에 흐르는 한여름에 코로나 19를 방어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어린 시절에는 겨울에 방한을 목적으로 쓰던 마스크였다. 30도가 넘은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마스크를 쓰고 길을 걸어야 한다. 마스크 안으로는 땀이 차고 답답하지만, 코로나 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지금, 우리는 한 여름에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하물며, 가족의 결혼식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 한 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한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처럼, 마스크를 언제 벗는 날이 언제가 될지 알지 못한다. 지금은.


한낮의 더위를 피해 해가 진 저녁에 마을을 걸었다. 더위와 코로나 19로 인해 오가는 행인들도 많지 않다. 행인들은 당연하게 마스크를 쓰고 있다. 땀 흐르는 더위 속에서. 앞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걸어온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막연하게나마 마스크를 벗는 시간이 올 것이라 믿으며 더위를 참아내고 있다.


낮에 했던 파마의 머리카락 속으로 땀이 찬다.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싶다. 미장원이 들어가 손님들 사이에서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던 예전과 달리, 머리에 머플러를 두르고 파마가 되는 시간을 기다리던 그때와 달리, 카페 분위기 같이 멋진 인테리어로 꾸며진 미용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난 시간을 잊었듯이, 한 여름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오늘도 얼른 잊힌 어제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먼 훗날에 오늘의 마스크를 기억할 날이 있을 것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하듯이, 한 여름에도 마스크를 쓰던 날이 있었었지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마스크를 벗고 사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2022.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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