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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Jun 25. 2023

나무를 심던 아버지

나무를 심던 아버지  

  

숲이 우거진  계곡을 따라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물아래 돌멩이 사이로 작은 물고기들이 보인다. 살금살금 걸어가다가 장난기가 발동해서 한쪽 발을 크게 굴렀다. 퉁 하고 바닥이 울리는 소리보다도 먼저 물고기가 줄행랑을 친다. 태풍이나 장마가 지나갈 때 온 산을 쓸어갈 듯이 한바탕 물난리를 겪었을 그들이 큰 물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아 이렇게 등산객의 발걸음을 잡는다. 물고기에게 삶의 자리를 주는 맑은 물이 계곡을 흘러내려간다.


친구에게 물었다. 맑은 물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계곡의 물이야 당연히 맑고, 맑으니 마음이 상쾌해진다는 상식적인 대답은 재미가 없다. 그 물을 보면 아까운 생각이 든다. 내 물을 이용해 내 일상의 어느 곳에라도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가 써보지도 못하고 흘러가는 물. 햇살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물이 아까워 손조차 씻지 못하고 바라볼 뿐이다.


고향 마을이 생각난다. 집 옆의 개울가에는 겨울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버들개지가 피었다. 살얼음이 녹아가며 버들개지 아래로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그 물에서 빨래를 시작했다. 봄비가 지나가고 여름과 가을로 계절이 옮겨가는 사이, 개울물에 푸성귀를 씻었고 때로는 설거지도 했다. 여름밤에는 시원하게 등목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개울은 또래의 소꿉놀이 장소이기도 했고, 동네 어머니들의 이야기 교실이기도 했다.


내게는 개울물이 어머니의 일을 돕는 장소였거나 놀이터였지만, 아버지에게 개울물은 근무지였고 우리 집의 젖줄이었다. 이른 아침 우리가 일어나기도 전에 삽 한 자루 들고 개울 옆 논두렁으로 출근을 하셨다. 해가 너머 갈 무렵이면 다시 삽을 들고 논두렁으로 나가시곤 했다. 개울과 논 사이, 논두렁을 가로질러 뚫어 놓은 큰 구멍이나 물이 들어가는 길목에서 적당한 논물을 대기 위해 논으로 들어가는 물의 양을 조정했다. 적당히 비가 내려주거나 개울물이 많이 내려오는 날은 아버지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자연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가 많다.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했다. 개울에 물이 마르면 논도 함께 말랐고 아버지의 마음도 말라가는 것 같았다. 논바닥이 마른나무껍질처럼 갈라질 때는 삽자루대신 담배만 입에 물고 한숨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더욱 쌀을 아꼈다. 철없는 나는 쌀보다 보리쌀이 많아진 밥상에 앉아 매끄러운 쌀밥이 주는 달콤함이 그리워 밥투정을 했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가뭄이 계속되면 개울물을 끌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아버지의 새벽은 더 빨라졌다. 가끔은 동네 아저씨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논물을 잘 대는 것이 일 년 농사라는 걸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하늘이 야속했다. 비는 왜 원하는 만큼 내려주지 않는 것인가. 아버지는 산에 나무가 많으면 가뭄과 홍수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가뭄이 든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산을 바라보면 갈색의 민둥산이 많았던 시절이다. 산에 나무가 땔감으로 이용되던 시절이었으니까.


어느 해부터 봄이 되면 아버지는 우리를 산으로 데려갔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으며 그 나무가 자라는 이십 년이나 삼십 년 후에는 산이 푸르고 일 년 내내 계곡에는 물이 흐를 것이라고 하셨다.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산등성이에 앉아 심술을 부렸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빼앗기며 산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 일에 화가 났다. 아직 어린 내가 삼십 년 후를 생각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 같았다. 그 먼 미래에 산에 나무가 푸르고 계곡에 물이 흐르는 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어른이 된 내가 등산을 나섰다. 숲이 우거진 산으로 오르다가 계곡으로 내려섰다. 계곡사이의 바람은 시원하고 흐르는 땀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바위 위에 앉아 항상 물이 흐르는 개울물을 애가 타게 원하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원했던 것처럼 산에는 나무가 많아 숲이 우거졌다. 계곡에는 맑은 물도 흐른다. 그 물에 손 한번 담근다고 누가 뭐라 하겠는가. 지나가던 다람쥐도, 계곡 속의 작은 물고기도 아까워하지 않고 손 씻을 물을 내어줄 것 같다. 그러나 그저 바라볼 뿐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논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대려 새벽잠을 설치던, 산에 나무기 많으면 맑은 물이 사철 흐를 거라고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한다. 지금, 산에는 숲이 우거졌지만 물은 예전만큼 흐르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발달된 문명이 물을 빼앗아 갔다. 마을에 축사가 들어서고 논에는 농약을 치며 맑은 물이 적어지고 있다.


일 년의 먹을거리를 위해 잠을 설쳐가며 삽자루를 들고 논두렁을 헤매던 아버지. 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 물을 얻으려 아버지가 심었던 나무가 자라 숲이 우거졌다. 아까워 손조차 씻지 못하는 계곡의 물이 산에서 내려가 내를 이루며 강으로 가는 사이에도 맑음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물을 얻기 위해 우리의 아버지들이 심었던 나무들이 이룬 숲 속의 계곡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숲 속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마치 아버지가 부채질을 해 주고 계신 듯 시원한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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