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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Jul 02. 2023

네 잎 클로버



하루 종일 집안에서의 시간이 무료하게 느껴져서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갔다. 쨍쨍하게 햇빛이 내리 쬐이지 않고 조금은 구름이 머물고 있는 하늘이 산책하기 좋은 날씨라는 생각을 했다. 멀리 교외로 바람을 쏘이러 갈 만큼의 시간은 없었기에 원주천 둑길을 넘어 둔치로 내려갔다. 들꽃들이 바람에 살랑이며 나를 맞는다. 들꽃들도 무리를 지어 피어 있으니까 새삼스레 예뻐 보였다.


  둔치에는 토끼풀도 무리 지어 자라고 있었다. 토끼풀을 보면 풀밭을 살피는 습관이 있다.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서다. 네 잎 클로버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거기에 주술적인 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네 잎 클로버를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마음이 든다. ‘행운이 온다’는 꽃말 때문이리라.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네 잎 클로버를 잘 찾아내곤 했었다. 마을길을 달려가다가도 네 잎 클로버가 눈에 띄는 날이 있었다. 일부러 쪼그리고 앉아 찾으려고 하면 잘 나타나지 않지만,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에 문득 발견되기도 한다. 어떤 때는 한 곳에서 여러 개씩 발견되기도 한다. 그것을 발견하면 할수록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무언가 기대되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가끔은 그것을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기도 하는데 그것을 받는 친구들이 잠시나마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이래저래 기분이 좋아져서 내 마음이 행복해 지곤 했다. 그렇게 네 잎 클로버는 꽃말처럼 언제나 행운을 부르는 상징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풀밭에 앉았다. 토끼풀 밭을 헤치는데 동생과 조카가 생각났다.  임신을 한 동생이 태교를 위해서 동화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내게, 우리 아이들이 보던 동화책과 위인전을 빌려 달라고 해서 그러라고, 언제든지 가져다 보라고 했다. 내가 젊은 날에 해 보지 못했던 태교에 신경을 쓰는 동생이 예뻐 보였다.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동화책도 좋지만, 훌륭한 아이를 낳고 싶어 뱃속에서부터 위인들의 이야기를 읽어 주고 싶다는 동생의 생각이 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옆의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다. 네 잎 클로버는 있는 곳에 무리 지어 있는 성향이 있어서 하나를 발견하고 그 줄기를 잡고 쭉 훑어가면 여러 개의 네 잎 모양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곳에도 여러 개의 네 잎 클로버가 있었다.


 그것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빌려 줄 책갈피에 예쁘게 펴 넣었다. 아직은 싱싱한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모양의 틀이 망가지지 않고 잘 마르리라는 생각을 했다. 클로버를 책갈피에 넣으면서, 이 책을 읽을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들을 아기(태아)에게 앞으로 많은 행운이 오게 해 달라는 내 마음을 고이 담아 전하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이 보던 책을 동생에게 넘겨주던 날, 고맙다고 웃음을 가득 담고 책을 펼치던 동생의 얼굴이 순간 변했다.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동생이 웃을 줄 알았지만 동생은 웃지 않았다.


  “이건… 기형이잖아.”


  중얼거리는 동생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아차, 하는 생각을 했다. 동생은 나와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행운이라는 꽃말을 붙잡고 중년의 내가 소녀처럼 내 기분이 휩싸여 있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랬다. 네 잎 클로버는 기형으로 생겨난 풀잎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풀잎이 기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생. 임신한 동생에게 기형의 풀잎을 선물했으니 나는 너무나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작은 풀잎 하나에서도 행운의 그림자가 내게 오고 있다고 즐거움을 느끼는 반면에, 그 속에서 일탈의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지금껏 살아왔던 것을 아닐까? 그때 동생을 바라보면서 같은 상황에서도 상대방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주천 둔치의 바람이 시원하다. 행복의 풀밭에 앉아 행운이라는 꽃말을 붙잡고 풀잎을 헤치며 어린 조카의 웃음을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동생에게 실수는 했지만 지금은 예쁘게 잘 자라고 있는 똑똑한 조카를 생각하니 그것이 우리의 행복이고 행운이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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