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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Sep 01. 2023

아침해장국



며칠 집을 비웠다 돌아온 아침이 피곤하다. 한동안 심하게 앓았던  감기 몸살이 아직도 다 회복이 되지 않아서 몸이 몹시 무겁다. 남편이 해장국을 먹으러 가잖다. 반드시 아침에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 마누라가 몸이 아파도 식사를 손수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침을 먹으러 가자는 뜻밖의 말에 부스스 일어났다. 그러나 집을 나서려니 흩어진 머리카락도 정리하고 후줄근한 잠옷을 벗고 옷을 갈아입은 후  동네지만 식당 끼지 걸어가는 일은 밥을 하는 거나 매 한 가지로 귀찮은 일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아침시간이지만 손님들이 꽤 있다.  이른 아침 시작한 일을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오는 사람, 젊은이들 한 무리도 아침을 먹고 있다. 이미 운동장을 달렸을 부지런한 조기 축구회 아저씨들,  부부나 가족인 듯한 사람은 무슨 사연으로 아침을 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우리 부부도 아침부터 식당나들이를 했으니  숨은 사연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일 거다.  


오래전, 한 이십 년쯤 전일까? 아는 언니가 아침 먹으러 종종 식당에 가는데 해운대가 보이는 어느 식당의 아침 해장국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면서 자주 간다고 했다. 전화기 속 언니의 맑은 목소리를 들으며 가정주부가 아침을 안 하고 식당에 가는가? 이상했다. 혼자서 배추 50 포기를 김장해야 하는 나와는 달리 배추 다섯 포기를 김장했더니 남편이 수고했다면 저녁을 사 주었다는 말을 들으며 "그게 김장이야? 김치하는 거지. 언니는 왕비야." 하고 말하며 웃던 기억이 있다. 대도시에서  잘 사는 부자 언니는 소도시에 사는 나와는 다른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변하다보니 내가 아침 해장국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아 있다.  


결혼하면 가족의 식단을 책임져야 하던 우리 때와 달리 요즈음 젊은이들은 자신의 일을 하며 산다. 결혼하기 전 살림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던 예전과는 다른 시대다. 결혼하면 육아나 살림의 공동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우리 때보다 훨씬 많다. 딸네집을 다니며 손녀를 돌보느라 두 집 살림을 하다 보니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집에 먹을 게 없다. 음식 재료를 사고 양념을 사서 반찬을 만들어 먹다 보면 그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다시 딸네 집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은 반찬을 싸들고 갈 수도 있지만 반찬이라는 게 해서 바로 먹어야 맛있고 냉장고를 들락날락 하다보면  맛이 달아난다. 결국 버리게 된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먹던 밥상을 차릴 와는 달리 두 식구가 앉아 먹는  요즈음은 먹성이 그렇게 좋지도 않다. 그저 조금씩 먹고 만다.  


냉장고에는 두세 가지 김치종류와 계절따라 담궈둔 장아찌가  몇 가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나는 반찬가게를 가끔 이용한다. 두 식구 하루 이틀 먹기에는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게 경제적일 때가 있다. 비싼 물가를 들먹이며 재료를 구입하고  여러 종류의 양념을 구입하기보다는 서너 가지 반찬팩에 손이 자주 간다.  또한 게으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건강하지 못한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이기도 하고, 음식은 누가 해 줘야 맛있다는 이유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맛이 보고 싶은 거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해장국이 식탁 위에 올려진다.  김치와 두세 가지 반찬이 차려진 아침상이 결코 초라하지 않다. 물가 이야길 자주 들먹이게 되는데 5,000원, 둘이 앉아서 받은  만원이 주는 따뜻함이 아주 마음에 든다. 국물서 한 숟가락 먹으니 속이 시원하다. 그러니 전날 술 한 잔 마신 남편의 속은 아마도 더 시원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 솜씨 없는 마누라의 지친 얼굴이 해주는 허술한 아침상보다 더 좋을 것 같다. 말없이 아침을 먹었다.  


세월이 흐르며 변하는 게 많은데 나도 많이 변했다. 아침에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고 마을 둔치로 나가 한 시간을 뛰거나 걸으며 아침운동을 하던 날도 있었다. 외식보다는 직접 밥상을 차리는 부지런함에 익숙하던 몸이었는데 중년이 지나고 나이를 들어가면서, 가족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중병을 앓고 난 이후 아픈 곳이 많다는 이유로 가정일에 자꾸 손을 놓는다.  언제 아침 운동을 했던가, 싶게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아직 김장은 직접 담그고 계절마다 장아찌도 담근다. 그러나 누가 해주는 밥이 더 맛있다고 생각하며, 외식을 나가자는 말에 거부를 하지 않는다. 그건 내 집에 있을 데 해당된다. 손녀를 돌보는 딸네집에 가면 예전의 나로 돌아간다. 아이돌보기와 집안일, 음식 만드는 일을 위해 하루가 간다.  


주말의 아침. 뜨근하지만 시원한 해장국을 앞에 놓고 앉아 대접받는 것처럼 맛있게 먹었다. 오래전 아는 언니의 아침 식당 이야기를 들으며, 김장하는 이야길 들으며 언니의 편안한 삶을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부러워말고 가끔 이래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평일의 나는 여전히 살림과 육아에 집중해 살고 있으니 주말은 편히 지낼 수 있지 않은가?  세상은 편리한 으로 변해가고 내 마음도 이렇게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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