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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Sep 08. 2023

남의 말을 하지 맙시다 - 각자의 입장

중년이 지나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매일 쓰기를 했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쓰면 되는데 마음 가는 대로의 문장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쓰다가 멈추는 날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날을 일기를  쓰지 않고 지나가 버렸다. 어쩌다 쓰는 일기. 그 일기가 가끔은 지난날의 오늘 이야기로 인터넷의 내 비밀일기장에 뜰 때가 있다.


그날의 일기를 읽으며 "그래 그랬었단 말이지?" "그랬구나." 이러면서 잠시 그날을 생각한다.


정수기에서 받은 얼음물로 만든 커피를 마시며, 17년 전에 마을 공원에서 생수를 받아다 먹던 날을 기억한다.



남의 말은 하지 맙시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님이 계시지 않았다.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 생수를 받으러 가셨나 보다. 어제저녁  어머님께 말했다.

"엄니, 물통 좀 조금씩 들고 다니세요."

"...."

"남들이 어머님 불쌍하대."

조금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면서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 일흔일곱이 되신 어머님은 등은 조금 굽어 있다. 작은 키에 웃음이 없으신 그늘진 얼굴을 하고 굽은 등으로 힘없이 걸으시는 어머님은 내가 봐도 안쓰러운 모습니다. 가진 것 없는 젊은 날을 고생으로 보내고, 이제는 빈 주머니로 자식에게 얹혀 산다는 자책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 어머님. 제발 그런 생각은 하지 말고 즐겁고 재미난 노후를 보내라고 말씀드려도 어머님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사신다.


우리 집 앞에는 공원이 있다. 우리 가족은 그 공원에서 생수를 받아다 먹고 산다. 편히 살려면 정수기라도 하나 놓으면 되겠지만 난, 어머님이 살아 계실 동안은 정수기를 놓지 않을 생각이다. 물까지 돈 들여 먹으면 어머님은 아마 소화불량 걸리지도 모른다. 수돗물이야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에도 어머님은 아주 먼 길을 생수 받으러 다니셨던 분인데 집 앞 공원에 생수를 두고 정수기를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수를 받으러 가는 어머님의 모습은, 아이가 고등학교 때 책가방으로 메고 다니던 커다란 배낭에 그 크기만 한 물통을 넣으신다. 그리고 비닐 주머니에 음료수 페트병을 몇 개 담아서 양손에 들고나가신다. 공원을 가실 때야 빈 통이지만 집으로 올 때는 생수통이 얼마나 무거울까? 집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키에 어머님이 물통에 갇혀서 허위허위 걸으시는 모습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몇 번씩 쉬어서 집으로 돌아오시고, 다시 3층까지 걸어올라 오신 후 현관에 들어서는 모습은 숨이 턱에 차서 헉헉거리신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엄니, 조금씩 자주 떠다 먹읍시다"

그러나 내가 그건 허공에 대고 지르는 소리일 뿐 어머님의 세계에서는 받아 드려지지 않는 소리인가 보다.


나는 어머님이 안 계신 틈에 물통을 들고나가 생수를 받는다. 남편에게 눈짓으로 '생수는 자기가 받아와라'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그 사이에 어머님의 부지런함이 우리 부부를 앞선다.


어제 이웃집 여자와 차를 한 잔 마셨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여자는 어머님의 나이를 묻는다.

"할머니 보기가 너무 안 됐어. 왜 할머니가 생수 받으러 다녀? 힘들게."

그렇구나. 남들이 보기에 우리 어머님이 불쌍하구나. 남편과 내가 어머님께 작은 생수통을 들고 다니라고 말씀드리지만, 생수도 재산같이 생각하시는 어머님의 커다란 생수통이 다른 사람 보기에는 불쌍한 할머니로 보였나 보다. 그러나 어쩌랴. 나도 막을 수 없는 어머님의 일인걸. 가진 것 없이 사셨고 물려준 것 없다는 자책감에서 생수라도 열심히 받아다가 자식들 먹이려는 그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래요? 그건 우리 어머님 운동이잖아"

그냥 그렇게 웃고 말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옆집 여자와 헤어져 돌아오며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을 했다. 여든이 넘으셨던 시 아버님. 치매가 있어서 정신없던 날이 많았던 시아버님은 삼겹살과 소주를 아주 좋아하셨다. 주변에 그렇게 나이가 드신 할아버지도 없었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니 주변에 사람들도 없던 아버님은 늘 집에서 혼자 삼겹살에 소주를 드셨다. 3일 정도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면 '고기도 못 먹고 산다'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칠 정도로 삼겹살과 소주를 즐기시던 분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삼겹살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버님은 당신이 직접 정육점 가기를 좋아하셨다.

"내가 가야 좋은 고기 사 온다"

시도 때도 없이 삼겹살을 한 근 들고 들어오시는 아버님의 마음속에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고기를 먹여야 된다는 생각 속에 잠겨있었던 것 같다. 치매에 정신을 놓으셔도 삼겹살 상 앞에 앉았을 때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행복한 웃음을 보면서 난 아버님이 사 오시는 고기 보따리를 고맙게 받았다. 물론 한 근은 우리 여섯 식구들에게 부족한 양이지만, 아버님이 사 오신 삼겹살에 내가 조금 더 준비하면 푸짐한 가족 식탁을 꾸밀 수 있었다. 그것이 아버님의 행복인데, 그 행복함을 깨고 싶지 않아 아버님의 정육점 행을 막지 않았고, 살그머니 나가서 다시 삼겹살을 추가로 사 오곤 했다.

"세상에, 노인네가 얼마나 고기가 먹고 싶으면 추운 날 손수 고기 사러 다니겠어?"

동네 할머니가 내게 하던 말이다. 그렇구나. 나는, 노인네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안 사주는 나쁜 며느리로 보이는구나. 속상했다. 내 마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남들에게 보일 내가 속상했다. 그러나 당신이 삼겹살을 사서 들고 오는 아버님의 마음이 행복한데 내가 뭘 어떡해야 하나? 그렇게, 지금은  안 계신 시아버님과의 지난 일이 잠시 떠올랐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머님의 방문은 열려 있었다. 어머님은 나가고 안 계셨다. 주방으로 나와 보니 물통을 들어 나가신 것이다. 어제 '남들이 불쌍하대' 이렇게 내가 말한 것이 어머님의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을지도 모르지만, 하지 말았어야 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이기적인 마음은 남들에게 나도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은 욕심이 있다. 예전의 살림살이와는 많이 변한 지금,  이제는 좀 여유를 가지고 즐거운 노후를 보내는 할머니로 어머님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어머님은 달팽이 같은 자신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시니 어떻게 해야 하나?

                                                                                                                          (2005. 8)

 





이미 오래전 일기이고 이제 시부모님은 계시지 않는다.

정수기 물을 마시고 사는 나는 이제 시어머니가 되었다.

결혼은.

세대가 다르고 살았던 환경이 다른 세계의 사람이 만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부대끼며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사랑을 나누는 가족이 되어 간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났다.

내가 시간이 없으니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나다가 몇 개월 만에 만났다.

그녀들과는 학창 시절부터의 친구였으니 우린 허물이 없다고 생각하며 이런저런 가족의 일도 다 이야기한다.

어쩌면 속풀이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직은 시어른들의 시중을 들으며 사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돌아와,

오래된 일기장을 뒤적이며 내 지난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저마다의 입장이 있다.

내 행동이 옳기만 한 건 아니지만,

한 단면을 보고 상대를 평가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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