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처럼 늘 그곳으로 눈이 간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서면서부터 바라보는 시계. 하루 종일 수시로 그곳에 시선이 머문다. 이제는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계지만, 우리 집에 시계가 들어오던 날 나는 그 시계가 무척 싫었다.
이십오 년 전, 아파트로 이사를 했었다. 결혼 후, 방 하나 전세 얻어 살던 집에서 몇 번의 이사를 거친 후 드디어 방 두 개가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인 내 집을 가지게 되었다. 작은 트럭을 빌려서 몇 번씩 옮겨 나른 이삿짐으로 새 집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복잡했다. 내 집을 가진다는 기쁨으로 이삿짐 정리가 힘든 줄도 모른 채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친정어머니가 들어오셨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어머니다. 시골에서 평생을 살았기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지 못하는 어머니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12 층까지 올라오셨다. 바쁜 나는 어머니가 어떻게 우리 집까지 올라왔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어머니에 대한 관심보다는 잠시 후 배달되어온 커다란 상자가 더 궁금했다. 어머니 키만큼 커다란 박스였다. 가위를 들고 묶인 끈을 싹둑 잘랐다. 상자를 여니 그곳에서 커다란 괘종시계가 나타났다.
순간, 화가 났다. 작고 아담하게 생긴 예쁜 시계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투박한 검은색에 아이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괘종시계가 방 두 개 있는 작은 아파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양이 예쁘지 않다고 짜증을 부렸다. 싫으면 다른 것으로 바꾸라는 어머니는 시계와 나를 바라보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있던 남편은, 이 시계야말로 우리 집에 딱 어울리는 시원시원하게 생긴 시계라면서 망치를 찾아 벽에 못을 박았다.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은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큰댁과 나란히 붙어 있었다. 자그마한 우리 집과는 다르게 머슴과 식모가 있는 할머님 댁은 넓은 시골 종갓집이었다. 할머니가 계시는 안방에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걸려 있었다. 시간마다 울리는 종소리를 세면서 숫자를 배워나가는 계임이 재미있었다. 어린 내가 단순히 숫자 놀이하는 시계와는 다르게 그 시계는 안방을 지키는 터줏대감이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를 중심으로 뭉친 가족들은 시곗바늘의 지시에 따라 하루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가족 모두는 방에 들어서면 그 시계를 바라보았고, 어린 나도 할머니 방에서 제일 큰 시계에 늘 눈을 주고 살았다.
60년대의 농촌은 가난했었다. 어머니는 가끔씩 중얼거리곤 했었다.
“나도 벽시계 하나 있었으면…”
마당에 있는 닭장에서 알려주는 새벽시간과, 유일한 문화시설이던 라디오의 시보에 맞추어서 하루의 시간이 갔다. 학교에 근무하시던 아버지의 손목에 있던 동그랗고 작은 시계가 우리 집의 유일한 시계였다. 어머니는, 할머니 댁에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는 감히 꿈도 못 꾸겠다는 듯이 작은 벽시계 하나 걸어 놓는 것을 소망하며 사시는 듯했다.
어느 해, 아버지가 동그란 벽시계를 사 오셨다. 벽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째깍거리며 하루 종일 돌아가던 시계. 수시로 방을 드나들면서 제일 먼저 눈이 꽂히는 곳은 벽에 걸린 시계였다. 조용하던 시골의 밤도 째깍거리는 시계의 움직임이 새로 생긴 친구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곤 했었다.
예전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짐에 따라 벽에 걸린 시계들의 모양도 여러 번 변해갔다. 뻐꾸기가 노래하는 시계를 달아놓고 무릎에 앉은 당신의 손자가 뻐꾸기 소리에 숫자를 익혀 가는 모습에 어머니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넘치곤 했다.
자그마한 벽시계가 어머니의 소망을 하나씩 풀어주었듯이, 시계의 움직임 따라 시간은 흘러갔고, 시간 속에서 우리들도 잘 자라나 어른이 되었다. 내 어린 시절에서 몇십 년이 흐른 후, 어머니가 괘종시계를 들고 우리 집에 오셨다.
“나는 지금도 커다란 괘종시계가 걸린 방을 보면 부러워.”
시계를 향해 입이 삐죽이 내미는 나를 보면서 어머니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서야 할머니 방에 걸려 있던 커다란 괘종시계를 생각났다.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어머니는 예전의 소망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어머니 방에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던 괘종시계가 아직도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인지도 모른다.
사위가 못을 박는 벽을 향해 위치를 일러주던 어머니가 말했다.
“애들이 집 사면 시계는 내가 꼭 사 주고 싶었어.”
추가 움직일 때마다 똑딱거리는 소리. 매 시간마다 숫자 따라 땡땡 울리는 소리가 예민한 내 신경을 자극했다. 다행히 소리를 죽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벙어리가 되기는 했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고 몇 번이나 더 이사를 한 지금까지 그 시계는 우리 집을 지키고 서 있다.
시계는 우리 집의 기둥이다. 어머니가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나의 하루를 이끌어주는 시계다. 벽의 길이를 반씩이나 차지하는데도 이제는 투박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침에 방문을 열고 나오면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곳에 거실 벽에 걸린 시계다.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이 내 방에 걸려있다. 시계를 바라보면서 하루를 계획하고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가 나의 시간을 지켜주는 것 같다. 시계의 움직임에 따라 내 하루가 지나간다.
시계를 걸어주는 어머니의 마음은 새 집에 이사한 내가 잘 사는 것이었을 게다. 이제는 쾌종 시계보다 자식의 행복이 더 커다란 꿈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