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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May 09. 2022

어머니의 소원

묵정밭



묵정밭       

                                                          

며칠 전 부모님이 사시던 집에 갔다.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하고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면서 주변의 모습은 조금씩 변해 가지만, 그 집은 예전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의 담장은 무너지고 마당에는 시든 개망초가 아이들보다 더 큰 키를 한 채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빗장이 그어진 문을 열지 못했다. 비록 빈 집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주인이 바뀌었으니 밖에 서서 기웃거리면서 사진을 찍었다.


몇 달 전과는 달리 맞은편도  새로운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개발의 바람은 이곳 변두리까지 불어오고 있다. 아직은 빈 상가인 건물 앞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의 터줏대감 같은 어르신들은 세상을 뜨거나 자식들의 집으로 이사를 가서 아는 얼굴은 보기 힘들다. 나를 바라보고 앉아있는 그분이 누구인지 모른다. 마을에 계신 분인지, 지나가던 걸음을 잠시 쉬고 있는 나그네인지.


담장 밖을 돌며 사진을 찍던 나와 아저씨의 눈이 마주쳤다. 집이 멋있어서 찍느냐고 묻는다. 당황했다. 이렇게 잡초가 우거지고 담장과 벽이 군데군데 무너진 채 흐트러져가고 있는 집이 멋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상한 여자라는 시선을 의식하면서 예전에 살던 집이라고 말했다. 혼자 중얼거리신다. 추억을 찍고 있는 것이군. 그 말을 따라가듯 추억 속으로 걸어갔다.


정년퇴임을 하신 아버지가 노년의 삶을 위해 집을 지으셨다. 붉은 벽돌을 이어 이층으로 지은 집의 마당은 아주 넓었다. 마당 한편에 닭장을 지었다. 마당에는 시골의 밤을 지켜주는 개와 매일 달걀을 나아주는 닭이 있었고, 풀과 푸성귀를 오물거리고 씹어 먹는 하얀 토기도 있었다. 봄에서 초여름이면 달걀에서 부화된 병아리가 어미 닭을 따라 마당을 휘저으며 다녔다. 담장 밖의 풀은 토끼의 먹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동물 농장의 주인이었고, 어머니는 수시로 과일나무와 꽃나무를 사다 심었다. 예전에 먹을 것이 많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왜 과일나무 하나 심을 생각을 못했냐고 삐죽거리는 딸의 시선을 웃음으로 넘기며, 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리며 채소를 가꾸던 그런 집이다. 어머니는 마당에서 딴 포도며 복숭아. 밤을 까먹는 너희들 입이 참 예쁘다며 사는 게 재미있다고 말씀하시곤 하던 집이다.   


소박하게 봉숭아와 채송화가 자라는 울타리 넘어 텃밭에는 항상 채소와 곡식들이 자라고 있었다. 어린 열무를 솎아 만든 물김치와 함께 먹던 삶은 감자와 고구마, 아침저녁 멍석을 끌고 다니면서 가을 햇살에 빨갛게 말려주시던 태양초, 한 여름 간식으로 손색이 없는 옥수수와 방울토마토가 부모님의 정성으로 익어 내게로 오곤 했었다.


더 오래전에는 볏짚을 이엉으로 엮어 만든 초가집에 살았다. 이른 새벽이면 동구 밖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새마을 노래를 들으며 들로 나가시던 부모님에게는 올망졸망 커가는 우리 육 남매가 있었다. 직장에 다니시랴 농사를 돌보시랴 바쁜 아버지 옆에는 어린 지식을 키우며 하루 종일 논과 밭에서 하루를 보내는 어머니가 계셨다. 말씀은 없었지만 부모님의 꿈은 우리들의 성공이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생의 성공이 무어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매일 들에 나가 농사를 지으시듯이 자식들이 잘 자라 무언가를 이루어주길 바라셨을 것이다.


봄이면 버덩에 나가 호미질을 하고, 워낭 소리를 들으며 사래 긴 밭을 갈아 씨를 뿌렸다. 어린 자식들이 탈 없이 학교 잘 다니고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이면 자식들 입 걱정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님의 하루와 사계절이 흘러갔다. 계절의 흐름은 부모님의 얼굴에 검버섯을 만들었고, 쟁기질과 호미질로 단련되었던 건강한 팔과 다리는 이제 파스와 약의 기운으로 버티다가 지팡이에 의지하는 시간이 오고 말았다. 지팡이 없이는 바깥출입이 어려운 어머니는 당신의 젊은 시절의 꿈을 접고 아들을 따라 아파트로 자리를 옮겼다.


 텃밭의 한 옆에 밤나무가 있다. 커다란 밤나무 아래에는 평상이 놓여 있다. 지난가을에는 어머니와 함께 앉았던 평상이다. 그 평상에 혼자 걸터앉았다. 햇볕을 피해 평상에 앉아, 밭을 바라보며 주름살 사이사이 웃음을 간직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때는 잡초 하나 없이 초록의 채소들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먹는 입이 예쁘다며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수고가 짙푸른 초록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다. 이제는 이름도 모를 잡초 더미가 되어버린 텃밭이, 망초대가 메워버린 마당이 떠나버린 주인의 꿈을 알기나 할까?


어머니에게는 다섯 딸이 있다. 일제강점기가 지나 한국전쟁이 휘둘린 유교집안에서 자란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가 딸에게 고등교육을 시켰다.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살림을 도와 아침잠도 자지 못한 채 버덩을 일구고 농사지은 곡식을 팔아 우리들의 학비를 대었다. 남의 식구가 될 딸에게 공부시켜 뭐하냐는 이웃 아낙의 지청구쯤은 무시한 채 긴 시간 어머니는 밭을 일구었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라고 신선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자식들이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라던 어머니의 꿈을 내가 깨버렸다. 딸인 내가 텃밭에서 잘 자라는 채소나 곡식이 되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어 주저앉고 말았다. 항암 후유증으로 머리카락 빠진 민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고 다시 그 위에 모자를 쓰고 진한 화장을 한 채 거짓 웃음을 웃고 있다. 당신의 딸이 몸이 아주 많이 아파서 이제는 쉬어야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언저리를 서성거린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뙤약볕을 받으며 호미질로 지나간 어머니의 젊음 날 열정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의 풍성한 열매를 꿈꾸었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열매로 익지 못한 채 약 봉투에 매달려 살고 있다.   


어머니가 떠나신 고향집 마당을 보며 텃밭의 잡초더미에 앉아 있자니 마치 내가 어머니의 묵정밭인 것 같다.  당신의 건강한 젊음을 바쳐 키운 자식이  탄탄한 열매로 영글기를 바랐을 어머니의 꿈. 자식인 나는 좋은 씨앗이 되지 못했다. 이제는 나이 들어 밭을 일굴 수 없는 어머니 대신 세상의 한 곳에 자리를 잡아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야 할 사람은 나다. 그런 내가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렇게 주저앉아 있다. 묵정밭의 잡초처럼.  그동안  일구어야 할 밭을 묵혀둔 채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었단 생각이 든다.


이제는 풀밭에서 일어나야 한다. 부모님이 던져주고 간 호미를 다시 잡아야 한다. 시들어가는 풀을 뽑아 거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 사진기를 들고 일어섰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다시 사진기에 담는다. 사진은 추억을 담는 것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지난날 부모님의 꿈이 꽃으로 피어나는 열매를 찍어야 한다. 다행히 약 봉투의 약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어느 사이 서쪽 하늘로 해가 기울었다. 마당으로 어머니의 그림자가 서성인다. 빨간 석양이 하늘 가득하다.


그리운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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