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한 아버지가 집을 지으셨다. 논이었던 아버지의 땅에 이층집이 지어졌고 넓은 마당을 따라 울타리가 이어지는 너머로는 텃밭이 있었다. 텃밭에는 계절에 따라 조금씩의 변화는 있었지만 콩이나 깨 옥수수 같은 잡곡과 배추 고추 상추나 파 또는 도라지같은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나이드신 부모님은 당신의 자식을 위해 정성으로 텃밭을 가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는 동생과 함께 텃밭을 가꾸셨다. 텃밭의 채소밭에 앉아있던 어느 날 저녁. 하늘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서쪽 하늘을 향해 가던 붉은 해는 어느 덧 강한 힘을 잃어 가고 있는데 파랗던 하늘의 붉은 노을. 텃밭을 걸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주홍빛 노을과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노을 속 붉은 해는 어머니의 생애 같았다. 꽃 같이 아름답던 시절에 시집온 동네에서 육남매를 위해 들에 나가 한여름의 땡볕과 싸웠고, 자식들을 다 출가시키고 나니 이제는 나이들어 작아진 몸으로 가을 들녁을 걸어가는 어머니. 아침해로 솟아 뜨거운 한낮을 보내고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 붉은 노을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였다.
그때, 문득 어머니의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그러나 미루고 미루다보니 시간만 흘렀다. 해 지기전 붉은 노을처럼 이제 자식들의 안녕만을 소원하며 걸어가는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 지난 시간의 우여곡절은 다 접어두고 그저 웃음으로 우리를 대하는 어머니와 지난 시간의 이야길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는 내 삶에 빠져 어머니와 대화 시간을 갖지못했다. 이제는 영영 단 한 마디 말도 들을 수 없어 마음 아파 온다.
어머니 가슴에는 육남매와 얽힌 많은 사연이 있었겠지만, 어머니의 시점에서의 이야기는 이제 듣지 못한다. 어머니가 살아오시면서 기억하는 이야기는 이제 듣지 못하지만 내 무의식 속에 잊혀진 듯 잠자고 있는 기억을 꺼낼 수 있으려나?
어머니가 농사 지으시던 밭에 지금은 동생이 있다. 가끔 동생 밭에 가면 그 밭을 일구던 어머니를 생각하는 날이 있다.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며 어머니의 이야기를 적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