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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Aug 18. 2023

우선순위

만약에 가능하다면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들었다. 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돌아간다고 후회 없는 멋진 생을 다시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성공한 삶은 아니지만 들러보면 소소하지만 미소를 지으며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견디며 지켜온 일들도 많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런 걸 거부하며 먼 옛날의 어느 날로 갈 수는 없다.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 언니 우리 피부과 갈까?  언니 얼굴 좀 깨끗하게 해 주고 싶어. 선은 참 고운데.

싫다고 거절했다.

- 됐어. 난 얼굴에 까지 신경 쓸 틈이 없어.

- 하자.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냐에 따라 생각이 바뀔 수 있어. 시간 조금 투자하면 예뻐져서 기분 전환 될 거야.

하지만 동생의 의견에 따르지 못했다. 언제든지 연락 달라는 동생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늘 건강을 염려하며 살고 있는 나다. 매일같이 하루도 쉬지 않고 있는 여기저기 통증에 시달리면서 소화불량과 피곤을 달고 약을 먹고사는 나다. 이런 피곤함 속에서 피부미용에까지 신경 쓰면서 살 여유가 없다. 나이 들어도 삶은 바쁘다.  나를 잃어버리고 산다. 가끔은 시간이 빨리 흘러서 늙고 싶다. 몸이 아프니 아직은 활동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처럼 살지 못하니 차라리 빨리 나이 들어 자연스럽게 노인의 세계로 들어 가 욕심을 버리고살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이게 우울증 일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내 삶은 이렇게 팍팍하기만 하다. 우선은 건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몸이 아프니 의욕도 많이 사라라 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위안의 말은 그저 실없는 웃음으로 날려 보낸다. 나이 들고 아파 보라지?


나이 어린 젊은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인문학 강의실에 앉아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난 지금 이대로 그냥 살겠다고 했다. 옆에 앉은 내 또래의 수강생은 절대적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왜냐고 하니, 지금처럼 살지 않고 멋지게 살 것이라 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멋진 삶이 될까? 그건 알 수 없다. 가지 못한 길은 아름답다. 경험하지 않고 마음으로 그려 보는 세계야 현실적인 고난을 겪지 않으니 다소 낭만적으로 아름다운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나와는 전혀 다른 곳에 우선순위를 두고,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모든 세계와 인연들이 다 다르다면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내 세계 속에서 나만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새롭게 뭘 이루며 살 것인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생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란 만약은 생각하지만 우리 생에 사실 만약은 없다. 지난 시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지금의 생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게다. 굳이 갈 수 없는 나라에 대해 환상을 가지기보다는 순종하며 살던 지난 세대 여자의 삶을 바꾸어  지금부터라도 삶의 우선순위를 다른 곳에 두고 변화를 만들어 보는 일이 더 현명할 것 같다. 갈 수 없는 그날로 돌아갈 생각보다는 오늘부터라도 생각을 바꾸며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시간이 흐른 후에는 오늘도 지나간 날일 테니까.


그럼 지금 우선순위는 어디다 두어야 하나? 생각은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몇십 년의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건 알지만 여전히 나 자신에게 우선순위를 먼저 두지 못한다. 가족을 먼저 생각한다. 내가 움직여서 가족이 좀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냥 주저앉아 있다. 살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남편을 바라보며 내 삶을 내가 주도하지 못하고 보조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게 가끔은 우울증을 만들고 한숨을 쉬게 하고 마음이 절망적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 삶보다는 가족의 삶에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어린 시절의 교육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정에 순종하면서 가족을 위한 삶을 사는 현모양처가 되라고 교육받았다. 그렇게 살아야 했다. 그게 최선의 길이었다. 성격이 강하지 못하니 속으로 누르면서 살아온 지난 시간이다. 지금에 와서 나를 위한 생활로, 나를 우선순위의 일 번 자리에 놓고 사는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지 못함에 또 속을 끓어 댄다. 그런 속에서도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조금씩 내 생활을 찾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변한 건, 사회의 변화에 나 역시 어느 정도 따라가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우선순위의 방향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 보는 오늘이다. 지나간 어제로 돌아가 다시 살기를 원하기보다는,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훗날 오늘을 기억하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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