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순미 Aug 03. 2023

호칭의 변화

"어르신, 그 치마 어디서 샀어요? 예뻐서요."

손녀딸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나오는데 들어갈 때부터 자꾸 쳐다보며 가게 앞에 앉아있던 두 분의 아주머니 중  한 분이 내게 묻는다.


어르신?  그저 웃었다. 내가 보기에는 동년배 같은데?  어르신이라는 당황스러운 말보다는 예쁘다는 말에 높은 점수를 매기며 구입한 곳을 이야기해 주니  얼마냐고, 색깔은 또 어떤 게 있냐고,  꼬치꼬치 묻기까지 한다. 비싼 옷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생활에서는 저렴하지도 않은 치마였다. 웃음을 주고받으며 치마가 시원해서 좋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딸을 돌보는 지금, 외출은 늘 손녀의 손을 잡고 다닌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냥 할머니 스타일이기는 싫어서 집에서라도 추레하게 입지 말자는 생각에 산 치마였다. 또 한 편으로는 조금은 젊어 보이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집을 떠나 딸 집에서 지내다 보니 친구도 없고 나들이할 일도 없는 생활에서 나름대로 나를 가꾸어가는 일이, 한 살이라고 젊은 생각을 가지고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매일의 일이 살림하는 일과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보니 대책 없이 할머니로의 길이 친구들보다 더 빠르게 내게로 달려오고 있다는 생각이다.  


처음 할머니라는 말을 들었던 날이 떠 올랐다. 50대 초반이던가 중반이던가. 할머니라는 의식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영화관이 있고 상가가 많은 지역의 길을 걷고 있는데 중학생 서너 명이 길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에 관심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야, 할머니 지나가시잖아. 조심해."


그 말에 두리번거리니  나 말고 어른이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할머니였다. 맞다. 당황스럽지만, 중학생이 보기에 할머니겠지만 처음으로 들은 내 호칭이 할머니라는 말에 아이들의 솔직한 눈과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벌써 할머니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걸 의식해야 했으니까.  며칠 후 아래층 아기엄마가 나를 "할머니"라고 불렀다. 아기의 입장에서 보면 할머니지만, 아직 대학생 아들딸을 둔 내게  아줌마가 아닌  할머니라고 불러 조금 당황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도 내가 할머니였을까? 하지만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날로부터 시간은 많이 흘러 이제는 손녀 손자를 둔 할머니로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 석에 앉기는 괜히 눈치가 보인다. 염색으로 까만 머리를 하고 노약지 석에 앉기는 불편하다. 나보다 어르신으로 보이는 사람이 타면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 같다. 앉았다 일어서기도 어색하고 안 일어서자니 민망해서 아예 그쪽으로는 시선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염색을 하지 않는 남편은 흰머리로 당당하게 노약자 석을 지킨다. 어서 오라는 손짓에 마지못해 남편의 옆자리에 주춤거리며 앉지만 아직은 그 자리가 불편한 좌석이다. 그렇지만 젊은이 앞에 서 있는 일도 그들을 신경 쓰게 하는 것 같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결혼과 함께 사회생활을 접고 가정주부로 살아와 나에 대한  호칭은,  고유명사인 내 이름은 사라지고 남편의 아내와 아이들의 엄마로 불렸다. 세상의 문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여성들의 활동도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소도시의 주부들이라 하더라도 사회의 여러 일에 참여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신의 이름을 찾는 기회도 많아졌다. 취미가 같은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고, 인문학 강의실을 찾고, 문화센터를 나가고,  중년의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면서 공식적으로 내 이름이 적히는 일이 많아졌다.  이름을 찾으니 보조적 위치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의 생을 사는 것 같아 당당하고 좋았던 날도 있었다.  


다시 사회 속에서 후퇴하여 지금은 할머니의 삶을 산다. 내 집을  떠나 사니 주변에 친구도 없다. 맞벌이하는 딸 부부가 나가고 나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며 보내는 지금. 밖으로 나가는 일이 적으니 몸과 마음이 느슨해진다. 이러면 더욱더 할머니의 길로 빠르게 접어드는 건 아닐까?  "어르신. 그 치마 어디서 샀냐"라고  묻던 질문에 웃으며 답하고 돌아섰지만 마음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질문한 그녀들도 젊은 사람은 아니라 나와 비슷해 보였으니까.  


이제는 어르신이라는 말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보다 일주일이라도 젊어 보이려면  집안에서의 생활과는  다른 문화를 접하기 위해 나들이라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때로는 눈물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