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순미 Sep 27. 2023

명절 보내기

추석이 다가왔다.

이번 추석은 연휴일정이 길다.

이번 명절에는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다.

차례준비는 내가 한다.

가까이 사는 아들 부부만 아침에 와서  차례 같이 지내고 식사하고 우리 부부는 성묘하는 걸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리고 남은 연휴.

시누이 시동생 가족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단다.

목적지와 날짜가 이미 결정되었다.

그렇게 통보받았다. ㅋㅋㅋ~

집에서 손님 접대 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간.

나는 여전히 아파서 괴롭다.

그래도 떠나야지 여행은. 가족 여행이라잖아?



올해 설날은 어떻게 지냈더라?

지난 설 연휴도 조용히 보냈었다.




**********

2023. 구정 연휴일기



이번 구정에는 명절 같지 않은 명절을 보내고 있다. 아무도, 딸도 아들도 오지 않은 명절이다, 그동안, 오랜기간 명절 전에는 시댁 식구들이 와 이박삼일을 보내고 당일날 차례를 지내고 성묘길에서 헤어졌다. 명절날 이후에는 친정 가족들이 만나 연휴의 시간을 함께 한다. 시댁 식구들과의 모임은 내가 주방장이고 무수리다. 오기 전에 미리 장을 봐서 먹을거리를 준비한다. 대형마트와 재례 시장을 다니면서 이박 삼일 동안 먹을 음식과 안주상 차릴 재료와 간식을 준비한다,  물론 차례상 준비도 한다. 텔레비젼이나 신문기사에서 보면 차례 명절 상차림이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연휴동안 먹을거리 걱정이 더 된다.  평상시처럼  밥상을 준비할 수도 없고 무언가 짭짤한 메뉴와 술안주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명절을 보낸다. 거기에 비하면 친정 식구들 모임에서 나는 조연이다. 손 빠르고 크고 음식 솜씨 좋은 동생이 있어 그녀의 분주함으로 우리 자매들은 명절 후유증을 잊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그러나 이번 명절은 우리 부부만 방구석에 앉아 쉬고 있다.


지난 삼 년간의 코로나 19 영향으로 명절은 간소화되었다.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손님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편안한 일이 없다. 차례상 차리는데 도와주는 이 없어 어쩌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차라리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상차림 음식을 만드는 일은 간편하다. 시어머님 살아 계실 적에는 동서와 시누이가 손님이었다. 어머님이 계획적으로 의도하는 건 아니었지만 저절로 그렇게 그들의 위한 며칠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나누고 정담을 나누는 건 당연한데 그 모습에서 소외되고 시중드는 내가 되는 게 참 싫었다. 평소에 시부모 모시고 사는 건 난데, 사랑은 그들이 받고 있으니 말이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코로나 19 이후 명절에 오지 않는 시집 가족들 때문에 편안한 명절이다.


어머님 돌아가시던 달에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 후에도 몇 년간은 여전히 이박삼일의 명절이 계속되었다. 몸은 피곤해도 집에 온 손님인데 어쩌겠나. 여전히 장보고 음식 만들고 술 안주도 준비해야 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청소도 하고 이부자리도 청결히 준비해야 하고 떠난 후에는 청소와 다시 이부자리 정리해야 하는 일이 무척 피곤했다. 암 수술받기 직전에도, 치료 중에도 치료 후에도 그 일은 계속되었는데 어느 해 설날 아침에 아침상 앞에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을 만큼 갑자기 힘이 빠져 주저 앉았고 밥 한 숟가락 먹지 못한채  눕고 말았다.  항암치료 후의  후유증과 몇 년동안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나쁜 건강이 문제지만  그 상황에서도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날 위해 살지 못하는 여자였다.


남편은, 명절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을 했다. 길 막히는 복잡한 명절보다는 날씨 좋은 계절에 함께 만나 여행하자고 했다. 그 말은 그럭저럭 지켜지고 있다. 내게는 편안한 명절이 시작된 것이다. 해가 거듭되면서 차례상 음식이 간소화되고 있다. 아니 있을 건 다 있지만 차례상 이외의 가족들이 먹을 음식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마음이 간편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구정 전에 딸이 아팠다. 연휴 전에 집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딸 집에서 지내며 연휴 전날 동네 재례 시장에 들려 차례 음식을 모두 샀다. 재래시장의 전 집이나 반찬가게는 손님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집에서의 수고보다는 간편한 준비를 하고 있다. 차례상은 정성이라고 하지만 남의 도움을 받는다고 정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전을  부치는 곳에는 연세 있는 아주머니나 할머니들 여러 분이 전을 부치고 있다. 아마도 대목 중에 일당을 받고 일하시는 분들 같다. 요즘 젊은 주부들이 음식장만을 하겠는가? 어르신들이 차례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분들이 시장의 가게에서 전을 부치고 계시니 집에서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감기 증상이 심하다. 아들의 전화를 받고 오지 말라고 했다. 이제 4개월 된 손주가 있고, 명절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아들이다. 며느리가 아기를 데리고 오는 일도 번거롭고, 할아버지인 남편의 감기 증상이 심하니 전염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오지 말라고 말하고 나니 쓸쓸해진다. 나야 편하고 좋지만 며느리가 명절에 아기와 둘이 있을 걸 생각하니 명절음식 없는 밥상도 걱정되고 미안해진다. 푸짐하게는 해주지 못해도 함께 밥이라도 먹어줘야 하는데.


친정가족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독한 감기가 걸렸다는 핑계로 우리 부부는 각각 다른 방에서 하루를 뒹굴고 있다. 방송에서 홍보되는 간소한 명절을 저절로 지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간편한 명절이 될 것 같다. 이래도 되는 걸, 우리 할머니 세대와 어머니 세대와 내가 며느리로 살 때는 너무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남편의 조상과 시집 가족을 위해서 말이다.  그 조상이 내 자식의 조상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언론에서 제시하는 간편한 상차림에 살짝 짜증이 난다. 원래는 간편했는데 많은 음식을 만들어 차례에 올리는 건 잘못된 상차림이었다는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태어나기 전이야 알 수 없지만 내 기억이 시작된 이후의 몇 십 년 동안 제사나 차례상을 위한 할머니와 어머니의 수고는 대단했다. 할머니 살아계실 때는 밤새 맷돌에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다. 하루 전에 식혜를 만들고 절구에 쌀을 빻아 아궁이에 불을 때서 떡을 만들었고  솥뚜껑을 뒤집어 불 위에 얹어 놓고 전을 부쳤다. 생활문화가 달라지면서 어머니 때는 맷돌에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결혼 전의 나는  엄마와 함께 추석에는 밤새 송편을 빚었고, 설날 전에는 만두를 빚었다. 떡 벌어지게 차례상을 차렸는데 그 수고가 하루아침에 뭉개지는 것 같다. 그냥, 세월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간편하게 차례상을 차리자고 해 주면 안 되는지. 원래 그렇게 차례상을 차리는 게 잘못되었었다는 말은 하지 말자. 우리 안방 어르신들이 오랜 기간 동안 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 사랑방 어르신들도 그런 상차림을 원했던 게 아닌가. 가족들 모두 모여 밤새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 모임을 만들어 오시지 않았던가. 세월이 흐르니 성균관을 이끌어가는 어르신들도 세대교체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 주부들도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또한 아버지나 아들들도 이제는 명절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할 거다. 그러니 그동안의 상차림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지말고  시대가 변하니 상차림도 변화시키자고하는게 맞다.


이번 명절은 그냥 여느 휴일과 다름없이 지냈다. 다르다면 내가 준비하고 만들지 않은 시장 음식으로 차례를 지냈다는 것 뿐이다. 명절은 연휴가 주어지니 그 시간에 가족 여행을 하면서 쉬면 좋겠다. 앞으로도. 직장 다니는 아이들은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도 갈 수 있을 만큼의 휴일이니 휴식의 시간으로 좋을 것 같다. 나, 내 아이들에게 명절 스트레스는 주고 싶지는 않다. 나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 아들부부나 딸 부부 모두가. (2023)


****************


추석 명절 간소한 차례상 사진이 카톡으로 들어왔다.

ㅋㅋ~ 남편이 보내준 사진이다.

이미 뉴스를 통해 알고 있는데 이렇게 간소하게 하라는 뜻인 것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할 거다.


명절 술상 차림이나 식사가 큰일 이었다.  집에 오는 손님들이 없으니 먹고 마시는 상차림이 없는 간소함과, 집안 청소나 이브자리, 주방정리도 하지 않는 편안함 속에서 먹고싶은 음식으로 부모님이 생각하실 차례상을 어느 정도는 맞추어서 차릴 예정이다.


산소에 가기전 늘 가는 꽃집에서 꽃을 사고,  그 건너 편 명절마다 들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고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공원묘지에서 성묘를 한 후 과일을 아 먹으며  잠시 옛시간을 추억하겠지.

욕심을 내자면, 가까운 관광지로 드라이브 하면서 바람이라도 쐬거나 멋진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실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그리고 연휴 후반 3일은 시누이 시동생 가족과 만난다.

집이 아닌, 서해안 어느 섬이란다.



브런치를 찾아 주시는 작가님들.

추석명절 재미나게 보내시고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

둥근 보름달 마냥 마음이 환한 연휴 되시길 빕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금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