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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Oct 01. 2023

운전 못하는 여자

추석전날, 남편이 응급실에 누웠다.


밤 10시 넘어서까지 아시안게임 중계방송을 보다가 잠시 밖으로 나간 남편의 목소리가 창문 밖에서 들렸다. 나를 부르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내다보니 잠시 내려오란다. 달려 내려가니 구부리고 있다. 넘어졌냐니까 아니고 그냥 갑자기 아파서 서지도 걷지도 못하겠단다. 웬만해선 병원 가는 사람이 아닌데 병원을 가자하니 순수히 그러자는 걸 보면 엄청  아픈 게 틀림없다.


어쩌자고 나는 운전을 배우지 못했나? 나이 들면서 더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웬만한 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녔는데 이제는 갈 수 있는 곳이 다양해지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거나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미안하다. 매번 택시 타기도 부담된다. 그러나 그것 보다 더 큰 불편은, 이렇게 응급상황이 되고 보니 난감하다.


잠시 숨을 고르며 쉬더니 움직임이 나아졌다고 한다. 아플 대 병원 가자고 해도 가지 않고  약 먹는 것도 마다하는 사람이 운전석에 앉는다. 얼마나 아프고 놀랐으면 앞장서 병원을 갈까, 싶다. 나도 놀랐다. 무슨 드라마처럼 갑자기 배인지 옆구리인지 모호한 곳이 아프다고 주저앉는지.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고 혈액검사와 소변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이 있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두 시간이 걸린단다. 열이 오르니 코로나와 독감 검사도 했다. 요 며칠 감기증상과 근육통이 있었는데 동네의원에 다녀오라는 말을 도통 듣지 않더니 급기야 밤의 응급실 침대에 눕고 말았다.


응급실은 많지는 않지만 환자가 계속 있다. 명절 전날 예상치 못한 응급실행으로 많은 가족들이 편치 않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열이 있어 응급실이지만 1인실에 누워있어서 다른 환자들과의 접촉은 없었다. 병원에 와 주사를 꽂고 누워있으니 별생각이 다 든다. 혹시 알지 못하고 있는 무슨 병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종합검진을 받아야 하나? 그러나 병원에 있다는  건 바로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조건 속이라는 안정을 준다. 해열제로 열은 내리고  검사결과는 큰 문제없으니 일단 퇴원하고  다음 주에 외래로 나오란다.


연휴는 왜 이렇게 긴 거야? 연휴가 길다고 좋아라 하면서 여행 일정을 잡았는데 이제는 연휴가 길어서 불만이다. 외래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연휴가 너무 기니 진료받을 날이 멀고, 한 밤중에 문을 연 약국도 없는데 다음 날이 추석이니 당장 약을 사는 일도 난감하다.  운전 못하는 나는 아픈 몸으로 운전을 하는 남편 옆에서 미안한 마음만 가득이다. 누가 보호자인가  말이다.


독한 감기인 것 같아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추석날 아침에 오지 마라 했다. 아기가 걱정돼서. 준비한 음식을 차려 둘이 차례를  올렸다. 둘이 앉아 맛없는 아침을 먹고 각자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은 심란하다. 정말 독한 감기일까?  그러면 며칠 고생하고 나아질 텐데. 모르는 다른 문제는 없는지?  휴일이니 그저 안정하고 쉬는 방법밖에 없다. 큰 병을 앓았고 늘 건강이 나쁜 나는 걱정이 태산이다. 걱정이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저녁 무렵 고기를 사 들고 아들부부가 왔다. 얼른 가라고 배웅을 하고 저녁상을 차리려 먼저 들어왔는데 밖에서 남편이 부른다. 다시 많이 아파지기 시작한단다. 아들을 불렀다. 아들의 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니 두세 시간 기다려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추석날 밤 응급실은 만원이다.


 아프다는 남편은 바라보다 다른 병원으로 갔다. 명절날밤 응급실 근무를 하면서도 친절한 직원들이다. 말도 잘 들어주고 간호사는 소소한 것에 대답도 잘해준다. 열이 높지만 전날 받은 코로나와 독감검사지를 주니 검사는 하지 않고 해열제주사를 처방한다.


응급실이라는 게 응급환자를 위한 곳인 건 안다. 그러나 휴일이나 밤시간에 아픈 사람은 응급실을 향할 수밖에 없다. 열이 오르며 태어나서 평생 동안 제일 아픈 통증이 왔는데 그냥 집에 있을 수는 없다. 입원이나 큰 병원으로 전원을 해야 하는 응급상황의 판단은 의사가 한다. 그러니 아픈 사람은 응급실을 향할 수밖에 없다. 아픈 순간 원인을 모르니까.  휴일 응급실 운영병원을 알려주고 홍보하면서도 응급을 요하는 중환자가 아닌 환자는 응급실을 자제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아픈 순간 집에 있을 수만은 없다. 밤에는 약국도 다 문을 닫았고 아픈 환자와 가족의 마음은 다급하다. 응급실 직원들의 수고는 알지만, 급한 응급환자가 있을 수  있지만 몸이 아프니 원인을 찾아 거기에 대처학 위해  응급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열이 높아 해열주사와 수액을 맞는 동안 아들을 돌려보내고, 명절모임을 위해 모인 친정 가족들에게 상황을 전했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둘러보니 혼자온 환자는 없는 것 같고 보호자와 함께 온 환자들이 많다. 나가고 들어 오고 환자들이 이어지니 이 밤의 응급실도 계속 환자들이 드나들 것 같다.


택시 잡기가 쉽지 않다. 콜택시에 전화를 거니 연결이 안 된다. 명절이라 기사님들도 퇴근이 빠른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며 운전 못하는 게 다시 한심해진다. 오래전, 면허를 따고 서툰 운전을 나갔다가 뒷바퀴 두 개가 다리에 걸리는 묘기를 하고 운전대를 놓았다. 놀란 가슴이 운전이 무서워하는 이유도 있었고, 전 시대의 사고방식으로 사시는 시부모님이  '여자가 운전은 뭐 하려 하냐'는 말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술 좋아하는 남편이 날 불러 운전 심부름을  시킬 것 같은 반항심이 더해지며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를 만들곤 했다. 당장 운전이 필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운전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많고,  언제 어디서나 이용하는 대중교통이 있으니 운전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며 작은 짐도 무거워진다. 그럴 때 운전 못 배운 아쉬움을 느낀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렵지만 가고 싶은 곳들이 많다. 운전을 하면 훌쩍 다녀올 텐데.  여행 중에 남편이 혼자 운전을 하는데 옆에 앉아있기만 하는 것도 편한 건 아니다. 이제 나이 들어가면서 몸이 피곤할 텐데 도와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 장거리 운전을 서로 나누며 하면 좋을 텐데. 무엇보다 큰 아쉬움은 이렇게 가족이 아픈 응급상황이 되었을 때  나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친구가 이제는 운전이 조심스럽고  겁이 날 때가 있다고 한다. 감이 떨어진다고. 젊어서부터 운전하던 친구의 그런 말을 들으며 이제 영영 운전대 잡을 일이 없을 것 같다. 걱정 많은 겁쟁이에 건강을 이유로 약을  먹는 일이 많은데, 약을 먹을 때는 운전이나 기계조작을 조심하라고 하니 더더욱 운전 배울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미안하다. 부부가 함께 움직일 때 운전을 하는 일은 서로 돕고 협조하는 일 중에 하나인데 나는 나눔의 협조도 못하고 사는 여자다.


며칠 전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다섯 살 손녀가  묻는다.

"할머니는 운전을 아예 못해요? 저기 보세요. 둥그런 거 잡고 요렇게 요렇게 움직이면 돼요. 잘 봐요."

요렇게 요렇게 움직이면  되는 그 쉬운 걸 배우지 못했다. 살면서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일이 참 많다. 그중에 하나가 운전을 배우지 못한 일이다.


 아픈 사람과 버스를 타고 오며 내내, 걱정 많고  미안한 밤이었다.


**********


어제와 달리 가을 날씨가 좋다. 

추석 연휴 여행은 취소하고 집에 있다. 

예약한 숙소에는 시누이 시동생 가족들만 갔다. 

친정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서 휴식한다, 


멀리 치악산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이 참 예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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