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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Dec 16. 2019

들어는 봤나, 대리병이라고.

야근 강요하는 선배가, 상사가 못 미더운 부하가 된다는 것.

'이쯤 되면 대리한테 월급을 제일 많이 주어야 한다니까?'


우스갯소리로 자주 했던 말이다. 대리란 위에서는 연차가 쌓였다는 이유로 '알만한 사람이 왜 그래' 모드로 일을 뿌리고 아래에서는 '제가 00은  처음이라서' 모드로 일을 숙성시키는 환경에서 꿋꿋이 일을 해내가는 산업 역군 아닌가. , 위아래로 치이는 것이 일상인만큼 회사 생활에 대한 회의도 불만도 늘어가는 시기다.


그래서 약도 없다는 대리병 말기, 나는 나를 야근 강요하는 선배로 만드는 후배도 버겁고 연차 대비 못 미더운 상사도 미웠다. 사무실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상사의 잽(jab)과 후배의 훅(hook)을 매일 견디다 보면 스스로 K.O를 외치고 수건을 던지고 싶은 순간이 끝도 없이 찾아오곤 했다.




# 야근 강요하는 상사가 된다는 것


고객사가 1분기 프로젝트 제안을 요청했다. 이 고객사는 1분기가 연중 마지막 성수기다. 시즈널 이슈도 있거니와 고객사에서 차별화된 신제품 출시 계획도 있어 총력을 기울일 상황이었다.


현재 맡고 있는 업무도 있으니 나를 비롯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모두 바빴다. 특히, 지난 하반기부터 함께 달려온 이들이니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일 거다. 뿐만 인가, 연말인 만큼 한 해 동안 못다 쓴 휴가와 칼퇴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팀원들은 오죽하랴.



나라도 정신을 졸라매야 했다. 급히 팀원들에게 아이데이션 요청 메일을 보내고 업무 분담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이 생겼다. 얼마 전 합류한 동료가 메신저 창을 켰다.

 

'르넷, 저 일이 있어서요. 먼저 가 봐도 될까요??'


이 동료는 내가 아끼는 후배다. 하나를 이야기하면 쿵작이 잘 맞아 내 문장을 완성해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랄까.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지금처럼, 제안이 바쁜 걸 빤히 알면서 본인은 워라밸을 지키겠다고 하는 이 태도가 나는 부러우면서도 밉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까. 안된다고 할까. 내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절절한 이유라도 이야기해주면 안 될까. 부모님과 약속이 있다거나. 병원에 가야 한다거나.'


생각에 생각을 물고 메신저 답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아차'싶었다. 비겁하지 않은가. 야근 강요하는 상사가 되고 싶진 않고 후배를 불편한 게 만들고 싶지도 않고, 이 상황을 합리화할 명분을 후배에게서 찾고 있는 꼴이라니. 


그래, 본인 일 다 했으면 가라고 해야지, 어쩌겠는가.

'네, 가세요. 다음부터는 가능하면 업무 마무리 같이 합시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다스리며 메시지를 보냈다.

'네! 수고하세요! :) '


해맑은 답변이 왔고 이 친구는 8시 즈음 퇴근했다. 어찌 됐든 동료도 야근을 한 셈. 동료를 보내고 도시락을 시켜 자리에서 PPT 화면과 함께 식사를 하다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할 일을 다 하고 간 건데, 나는 왜 괜히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걸까. 정말, 갈수록 심보만 고약해지는 꼰대가 돼가나 보다. 제발, 동료가 작성한 부분이 꼬투리 잡을 데 없이 완벽하기를 빌어보며 그녀의 이메일을 열어본다.




#커리어의 수건을 던질까 겁이 난다.


꾀병을 부렸다.

 

사실 정말 꾀병은 아니다. 아프긴 했다. 하지만, 평소 같으면 약을 먹고 버텨봤을 테다. 아프다는 핑계, 힘들다는 응석으로 흔히 말하는 여자 짓, 직장에서는 욕먹어 마땅한 일이니까.


다만 도망치고 싶었다. 무책임한 과장으로부터, 쏟아지는 메일로부터, 끊임없는 전화로부터, 아기새 마냥 나만 바라보는 후배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내 자리에 앉아있을 힘이 없었다.


알고 있었다. 오후 반차를 내고 집에 가도 일을 해야 할 거라는 걸. 삼십 분에 한 번 꼴로 전화를 받아내고 이메일을 써내야 할 거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을 못 버티고 오후 반차를 신청했다.


아무리 이 쪽 일이 내부 외부 커뮤니케이션이 반이 라지만 나 혼자 듣고 말하는 건 힘에 부친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이란 대리로서 상사와 후배 사이에서 업무 상황을 보고하고 받고 업무 지시를 하고 보는 그런 일이다. 즉, 가교 역할로 모두의 커뮤니케이션을 해내야 하고 양단에 있는 둘 중 하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빈 부분을 채워 나가게 되는 위치인 셈. (이래서 대리가 제일 돈을 많이 받아야 한다니까?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외부 커뮤니케이션이란 갑과 을의 위치에서 하루 종일 줄다리기를 해내는 것과 같다. 갑의 위치에서는 조금 더 낮은 비용을 지불하고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을의 위치에서는 오늘 조금 더 적은 시간 일하고 많은 일을 해낸 것처럼 보이기 위한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 말들이 하기 힘들어서 도망 왔나 보다. 그리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 날 꼭 해야만 하는 일 한 가지를 했다. 할만했다. 반차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짜증이 나긴 했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쉬려고 나왔다기보다는 도망친 거였으니까.  


하지만, 도망쳐서 일까. 미처 체크하지 못하고 나온 상사의 일이 하루 종일 마음이 쓰인다.


‘그 사람은 과연 제 때 고객사에 오늘 기획안을 보고할까? 보고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보고하지 않으면 내일 가서 고객사에게는 뭐라고 변명해야 하고?’


왜, 후배의 일도 아닌 내 일도 아닌 나보다 상사의 업무 진행을 더 걱정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자기 전까지도 마음이 쓰였다. 스스로가 일중독이 아닌가 하는 답답함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내 심정은 그랬다.


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반전은 없었다.

00님, 제가 메일함이 어제 꽉 차서 기획안 이미지 공유 좀 부탁드릴게요”

“네, 메일 드렸어요.”


“아, 그럼 이걸로 고객사 보고 된 거죠? 피드백 있던가요?”

“아니요, 어제 디자이너에게 받긴 했는데 아직 고객사에 보고는 안 된 상태예요.”


오늘은 금요일이다. 이 초청장은 수요일에 전달되었어야 하는 건이다.

뭘까. 이 당당함인지 무개념 인지 헛갈리는 태도는. 마음을 가다듬고 물었다.


“아, 그럼 고객사도 알고 있는 거예요? 언제까지 전달한다고 하셨어요?”

“아니요, 고객사에는 따로 말 안 했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요즘은 신입도 보이지 않을 이 태도는.


“이거 수요일에 전달하기로 한 건데요, 그럼 고객사는 그냥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거고요?”

“……..”


아무 말 없이 나만 바라보고 있다. 이 태도는 무엇인 걸까. 어차피 자기는 고객사랑 커뮤니케이션하지 않으니 나보고 알아서 미안하다 잘못했다 엎드리라는 건가.


이런 무책임한 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상사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는 또 다른 무게의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내 자리로 와 메일을 보냈다.


상사란 후배의 허물을 담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행동하려 노력했는데 지금의 내 상사는 자신이 허물을 낳고 문제를 떠넘기고만 있다.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항상 잘 쓰이고 싶고 일 시키기 쉬운 후배가 되고 싶은 나였는데. 이런 식으로 일하는 상사와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러다 반차가 아니라 내 회사 생활의 수건을 던질 까 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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