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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Jun 17. 2020

신에게는 260명의 구독자가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시작의 가벼움을 이겨내는 방법, 약속하기.

여느 날처럼 고객사의 월간 플랜을 쓰다 야근을 한 날이었다. 잡히지 않는 택시와 씨름하다 결국 지하철 막차를 기다리며 서있던 스크린도어에서 브런치를 켰다. 


'00님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알림이 쌓여있었다. 내 브런치에 콘텐츠를 쓰기는커녕 접속을 한 달여만에 한 날이었다. 신규 콘텐츠도 없는데 내 브런치를 구독해주다니. 불편한 부채감에 서둘러 브런치 앱을 종료했다. 


브런치 사용자로서 '구독'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안다. 나에게 '구독'은 이 작가가 앞으로 써낼 글들도 주의 깊게 보고 싶다는 일종의 지지이자 격려다. 사용자마다 다르겠지만, 맥락은 비슷하다는 믿음 하에 한 달째 글이 업로드되지 않은 내 브런치 채널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했다. 


왜 글을 쓰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우선순위에서 밀려서다. 부인하지 않겠다. 내일 당장 나갈 고객사의 보도자료가 우선을 차지했고, 시시 때때로 몰아붙이는 부정 이슈 응대가 나를 삼켰다. 그렇게 내 브런치는 점점 마음의 짐일 뿐 아웃 오브 안중이 되어 갔다. 


나는 '시작' 중독자다. 인정하기 싫지만, 시작 중독이라고 말하는 건 '시작'만 잘한다. 꾸준히 무언가를 해나가고 끝맺음을 하는 게 여간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건 꾸준히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거다. 지금 나에게는 내 브런치 채널이 그렇다. 작년 휴직기간 동안 나의 지난 커리어를 중간 정산하자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기대보다 많은 분들이 내 글을 구독해주었다. 


나 좋자고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누군가 나를 지지해줬다는 건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의 '구독'으로 스스로 동기를 부여받았고 상호작용하면서 견문을 넓혔다면, 작가로서 구독자가 기대하는 콘텐츠를 고민하고 만드는 건 일종의 책임 아닐까.  


고객사의 자료와 채널은 캘린더를 만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시간에 콘텐츠를 생산해내면서 '내 콘텐츠'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고민의 끝에 '의무'와 '약속'이 보였다. 고객사의 콘텐츠는 그들과의 '기한 협의'를 통해 지켜야 하는 의무감이 있다. 약속이니까. 


그렇다면, 나도 내 브런치 구독자에게 약속을 하면 되지 않을까. 일방적인 약속이긴 하겠다만, 개인의 다짐이 아닌 공지를 통한 다른 이에게 한 약속이면, 그래도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 6월 르넷 브런치 캘린더 예고 ※

6월 24일(수): (가제) MBTI는 왜 재흥행 했을까. (누가 고객사 MBTI도 만들어 줬으면)

6월 30일(화): (가제) 후배의 칭찬은 나를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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