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즐겨 먹던 그 시절 호떡이야기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 공부를 핑계 삼아 식욕이 왕성하던 여고생이던 때의 이야기다. 나는 밥보다 간식을 더 좋아했다. 하교 후 버스를 타는 곳까지 15분은 족히 걸어야 했기에 간식 연료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호떡.
호떡을 만드시던 분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판 위를 지휘하시던 그 손만은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물 그릇에 살짝 담가 젖은 손으로 피자 치즈처럼 늘어지는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신다. 그 양은 매번 거의 동일하다. 아무렇게 대충 펼쳐진 듯한 반죽 위에 흑설탕이 대부분인 호떡소를 숟가락으로 한가득 퍼서 넣는다. 그것을 밀가루 감옥에 단단히 가둔다. 기름을 휘 두른 팬에 동그래진 흰 덩어리를 척 올린다. 지글지글 기름에 한쪽면을 살짝 익혀 단단하게 만든다. 노랗게 익었을 아랫면을 뒤지개로 홀랑 뒤집은 뒤, 꾹 눌러준다. 가끔 감옥을 탈출하는 '소'들이 있지만, 괜찮다. 그래봐야 어차피 갈 곳은 나의 입속이니.
요즘도 겨울이면 가끔 호떡을 사먹는다. 흘러내리는 호떡소로 인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종이컵에 담아주신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반 접힌 두꺼운 종이사이에 호떡을 끼워 건네주셨다. 뜨거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호떡을 손에 들고 호호 불어가며 한입 베어 물면 쫄깃한 식감의 달콤함이 입안에 가득했다. 늘어진 호떡 틈 사이로 어김없이 고동색 설탕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내 교복으로 뚝뚝 떨어졌다.
두꺼운 모직으로 된 겨울 교복에 떨어진 설탕은, 그렇게 나와 함께 한 계절을 보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매년 겨울, 호떡 소를 교복에 묻히고 다녔다. 오죽하면 학교 선생님께서 제발 교복 좀 빨아 입으라고 말하셨던게 기억이 날까. 아 물론, 휴지로 닦아보기도 했다. 지금처럼 물티슈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선택지는 없었다. 이런, 휴지까지 교복에 같이 붙여 한 계절 나는 수가 있었다.
여벌의 교복은 없었다. 호떡소를 지우고자 옷을 세탁소에 맡긴다면 세탁소에 맡겨둔 며칠은 교복을 못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겠지? 나의 교복은 더 이상 입지 않아도 될 따뜻한 봄바람을 만난 후에야 겨우 세탁소에 맡겨졌다. 겨울 교복이 단 한 벌 뿐인것 그리고 오염에도 오직 한 번의 드라이크리닝만이 허락 되는 것에서 그 당시 우리집의 형편이 짐작되었다.
용돈이라면 겨우 버스비 정도였으니, 나는 종종 버스와 호떡중에 호떡을 선택 하기도 했다. 버스비로 산 달콤한 호떡을 씹으며 40분 정도 집까지 걸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러워진 교복을 스스로 조물조물 손빨래라도 해서 입을 만도 한데, 호떡소가 마치 교복에 달린 겨울의 훈장인양 그렇게 한 계절을 보냈다.
나는 그렇게 무던했다. 내가 무던했기에 그런 교복을 입고 다닌 건지, 엄마가 바로 세탁소에 맡겨주지 않아서 무던해진 건지, 그 상관관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성격 덕분에 지금도 일상의 어지간한 불편함에는 예민하지 않다.
호떡이 생각나는 코끝 시린 날씨다. 이제는 간식 연료를 자제해야 할 40대가 되었다. 그래도 긴 겨울 중 한 두번의 호떡은 괜찮겠지? 예전처럼 호떡 소를 붙여서 계절을 나진 않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