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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우리 아빠 죽일라 카나?

단판빵 하나로 시작 된 부부싸움

by 병 밖을 나온 루기

"니 지금 우리 아빠 죽일라 카나?"

이 말은 시어른께 드릴 단팥빵을 산 나에게 남편이 다짜고짜 건넨 말이다.


남편과 내가 연인에서 배우자가 되기까지의 기간은 겨우 9개월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결혼 후 우리의 다름은 종종 상처가 되어 서로에게 흠집을 냈고, 상처 난 부위를 기워가며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일도 바느질이 필요한 일화 중 하나라 볼 수 있겠다.


계절이 언제였더라. 그것까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수년 전의 일이다. 우리 동네에 이름난 빵집이 문을 열었다. 그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단팥빵이었다. 이 집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특별한 빵도 있었기에 나는 고마운 사람에게 이 빵을 포장하여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침 시부모님 댁으로 향하던 날, 그 빵집이 보였다. 어머님은 찾아뵐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려 주셨다. 두 끼를 배부르게 얻어 먹고 나서는 우리의 손에 좋아하는 밑반찬도 한 보따리 싸주셨다. 남편과 나는 여름이면 수박 한 덩이, 겨울이면 사과 한 박스를 들고 가서 어머님의 사랑을 받아먹고 오곤 했다.

'그래, 오늘은 단팥빵이다.'

나는 남편에게 잠시 차를 세워달라고 말했다. 나의 부탁에 남편은 차를 도로변에 세웠고 잠시의 정차만 가능했다.나는 서둘러 빵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단팥빵을 포함해 여러 종류의 빵을 골고루 담아 포장했다. 내 손에 묵직하게 들려진 빵 박스를 바라보며 마음이 들떴다. 아마 남편은

"어떻게, 이런 걸 다 사드릴 생각을 했어."

이렇게 말하며 나의 마음 씀씀이를 칭찬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차에 오르자 남편이 물었다.

"이게 뭐야?"

나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단팥빵, 우리 동네 새로 생긴 고급 단팥빵. 이거 진짜 맛있어."


그런데, 남편의 입에서 돌아온 말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니, 지금 우리 아빠 죽일라 카나?"


나는 화면 정지가 눌려진 티비 속 사람처럼 굳어버렸다. 방금 내가 무슨 얘길 들은거지?


시아버지께서는 당뇨병을 앓고 계신다. 단맛이 나는 모든 음식을 되도록 자제하시고 흰 쌀이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도 가려 드시는 편이다. 하지만 지난번에 아버님께서 팥빵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그 덕에 '가끔은 드셔도 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칭찬의 말과 함께 쓰다듬어 달라며 내민 머리에 쎄게 꿀 밤을 맞은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남편의 거친 말에 가슴속에 있던 나의 고운 마음은 튕겨져 나와 쓰레기통으로 꼬꾸라졌다. 억울했고, 화가 났다.


"아니, 아버님이 못 드시면 어머님은? 어머님은 드실 수도 있잖아. 오빠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있으면, 아빠도 드시고 싶어 지잖아."

순식간에 달라진 차 안의 분위기에 움츠러드는 아이들이 보였다. 더 이상 언성을 높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입을 닫았다.


그래. 당뇨병에 대한 나의 이해가 부족했다. 남편에게는 가족력으로 내려오는 병이기에 익숙했고, 주의할 점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설탕에 버무려진 단팥을 소로 하여, 밀가루로 만들어진 단팥빵은 아버님께 거의 금지된 음식에 가까웠으리라. 그런데도 나는 너무 섭섭했다. 나의 선한 의도와 마음까지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일순 버럭 화를 낸 남편은 시무룩해진 나를 보고 마음이 미안했는지 조금 누그러진 말을 보탰다.

"그래 엄마가 드실 수도 있고, 아버지는 간혹 가다 한 번씩은 드셔도 되긴 되지. 그래도 안 드시는 게 좋긴 해."


결혼 후 친정에 갈 때면, 엄마가 좋아하시는 크림빵, 아빠가 좋아하시는 단팥빵을 한 아름 사서 가곤 했다. 그러면 부모님께서는 내가 사온 빵을 바로 꺼내어, 앉은 자리에서 두 어개쯤 맛있게 드셨다. 좋아하시지만 자신의 손으로 일부러 사서 드시지는 않는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저 좋은 마음을 담아 빵을 샀다.


하지만 이날, 달콤한 단팥빵은 누구가를 죽일 수 있는 빵이 되어 버렸다.


단팥빵을 둘러싼 우리의 부부싸움은 선한 의도와 과정, 선한 행동과 결과,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기보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그게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는 것도 말이다.

(그래도, 그 말은 너무 심했어 여보. 나 진짜 당신 이름 빨간색으로 쓸 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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