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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Nov 01. 2020

예천 금당실 돌담길

가족 둘레길 걷기 프로젝트 No.8

 한국천하명당 십승지(十勝地).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서 말하는 전쟁, 흉년, 전염병이 들어올 수 없는 땅이다. 기운이 좋고 편안하며 살기 좋은 명당이 전국에 열 곳이 있다. 그 한 곳이 경북 예천군에 있는 내고향 금당실이다. 김동환의 시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 말하는 남촌은 어디에 있을까? 꽃피는 사월에는 진달래 향기를 따라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밀 익는 오월이면 들판의 보릿냄새가 밥 짓는 굴뚝에서 솟아오른 장작불 연기와 어울려 돌담을 넘어가는 정겨운 마을. 이 풍경화 같은 남촌이 현실에 있다면 바로 금당실이다. 당산나무 아랫동네는 넓은 들판이 있는 남촌이고, 우체국부터 중학교까지 이어진 새장터길 양쪽에는 양장점, 전파상, 약국, 신발가게, 제유소가 있는 서촌이다. 면사무소에서 금당실길로 이어진 동촌에는 금당주막이 정겹다. 한옥과 초가집이 거미줄처럼 이어진 돌담 마을 북촌이 나온다. 금당실은 동서남북, 네 마을이 하나로 불리는 이름이다.    

 

 도시 아이들에게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자연과 들판을 가꾸는 농부의 땀을 보여주려고 계절마다 금당실을 찾고 있다. 여름의 절정 팔월의 어느 아침, 첫째는 할머니가 만든 감주와 과자를 배낭에 넣고 둘째는 접이식 의자를 어깨에 둘러메고 탐험을 떠난다.      


 집 앞 남촌길을 따라가면 느티나무가 보인다. 용이 천문에서 뛰어논다는 용비천문(龍跳天門) 바위는 고택길로 이어진다. 구불구불 돌담길을 따라가면 150년 된 한옥 우천재가 나온다. 대문 사이로 처마 아래 늘어선 장독대가 정겹다. 묵은 된장과 간장을 품고 숨을 쉬는 옹기들이 소담스럽다.      


 황토와 돌을 쌓고 기와를 얹어놓은 돌담은 비바람에도 꼿꼿하다. 맞은편에는 오롯이 돌만으로 정교하게 쌓아 올린 담장도 있다. 희고 검게 얼룩진 돌에 사는 이끼도 대를 이어간다. 호박 넝쿨은 잿빛 돌담을 초록으로 감싸고 손바닥만 한 노란 꽃을 피웠다. 가을이면 둥글게 주름진 누런 호박들이 아이들을 맞이하겠구나. 미로처럼 이어진 반송재길, 은행나무길, 북촌길은 누구의 집 대문으로 이어질까. 담장 아래에는 금잔화와 백일홍이 형형색색 곱게 피어있고, 오래된 밤나무와 대추나무에는 가을을 기다리며 달콤하게 사랑이 익어가고 있다. 마당에 일군 텃밭에도 풋고추가 풍성하고, 줄기마다 할아버지 수염을 닮은 옥수수가 영글었다.      

아침 안개가 내린 금곡서원 

 북촌마을의 정점에는 오미봉의 정기를 품은 금곡서원이 있다. 선조 1년에 박충좌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어 300년간 학문과 토론의 장소가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 명령을 내려 문을 닫았다가 후손들이 복원했다. 처마까지 내려온 구름 안개가 기나긴 세월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손으로 전해준다. 서원 앞으로 펼쳐진 송림(松林) 사이로 금당실의 아이들을 키워온 중학교가 보인다. 소나무 아래 의자를 펼치고 하늘을 올려본다. 솔잎 사이로 바람이 흘러간다. 수백 그루의 방풍림(防風林)은 중학교에서 시작해 초등학교까지 이어져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고택 돌담길을 따라 아빠의 고향에 전해오는 전설을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향긋한 풀 내음에 머리는 맑아지고 호기심은 상상의 나래 위에 펼쳐졌다. 반나절을 걸어서 해바라기가 활짝 핀 남촌에 돌아왔다. 증조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100년 묵은 홍두깨로 할머니가 칼국수를 만드셨다. 구수한 칼국수에는 금당실의 건강한 맛과 멋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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