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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Nov 01. 2020

문경새재를 너머 한양으로

가족 둘레길 걷기 프로젝트 No.17

시월의 마지막 날, 아내를 서울 친정집으로 휴가를 보냈다. 다음 주 병원 검사를 앞두고 있어 며칠 마음 편히 쉬고 오라고 했다. 나흘 동안 엄마 없이 시니차니와 지내야한다. 함께 문경새재로 향했다. 엄마 없이 걷는 길은 처음이지만 엄마 몫까지 씩씩하게 걷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아빠 오늘은 얼마나 걸어요?"

"8km는 걸어야 해."

"네... 2시간 반에 완주할 수 있겠어요."


이제 아이들이 앞장선다. 4 주차장에서 제1 관문까지 가는 길도 제법 길다. 1 관문 앞 넓은 잔디광장을 뒤로 오색 단풍이 산을 뒤덮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런 곳에서 걷기만 할 아이들이 아니었다. 고삐 풀린 경주마처럼 차니가 달렸다. 시니도 뒤따라 달렸다. 두 살 터울이지만 달리기만 보면 친구 같다. 오늘은 차니가 더 빨라 보였다. 달리기로 몸을 풀었으니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


드라마 촬영장을 지나면 잘 다듬어진 황토 둘레길이 시작된다. 찾는 등산객이 많아 길을 넓게 만들었지만, 조선시대 새재 옛길은 짚신으로 걷기에는 았을 것이다.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는 경상도 선비가 눈에 보였다. 경치 좋은 계곡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글을 읽고 시도 한수 지었겠지. 어둠이 내리면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었을 것이다. 포항에 사는 시니차니도 훗날 서울에서 공부를 하겠지.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을 키우기 위해서 옛 선비와 같이 이 산길을 넘어야 한다. 거뜬히 넘어가길 바라며 함께 걷는다.


종종 맨발로 숲을 즐기는 등산객도 보였다. 고등학생 형들이 있는 가족부터 유모차를 밀고 올라가는 가족까지 마스크를 쓴 얼굴에도 미소가 넘쳐 보였다. 제2 관문에 도착했다. 사온 김밥을 먹으며 땀을 식혔다. 오늘은 이상하게 힘들지가 않다며 3 관문까지 갈 수 있겠다며 욕심을 부린다. 마음 같아서는 끝까지 가고 싶지만 컨디션도 생각해야 한다. 정상 방향으로 더 걸었다. 이정표를 보니 이쯤에서 내려가면 목표는 무단하겠다. 유튜브 영상을 찍기 위해 계곡에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쳤다. 


무슨 이유인지 숲의 공기가 달콤했다. 오색 단풍과 오미자 그리고 사과 향기였을까? 시원한 공기를 보내드리겠다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에는 엄마도 같이 전체 코스를 걷기로 했다. 문득 엄마가 옆에 없어서 허전하다는 첫째, 엄마가 보고 싶지만 잘 참는 둘째가 고맙다. 다시 1 관문 앞 잔디밭에 도착해 하늘을 보고 누웠다. 뻐근한 다리를 펴니 시원했다. 가방에서 준비해온 종이를 펼쳤다. 


시니차니 문경새재 왔다!

가족 둘레길 100km 달성! 




조그만 얼굴, 조그만 손, 조그만 발로 지난 4개월간 열일곱 번의 둘레길, 돌담길, 성곽길, 바닷길을 걸었다. 발이 아프고 종아리에 쥐가 날 때는 그만 걷고 싶었다. 8월의 더위를 피해 새벽 일출을 보며 걷기도 했다. 동네도 탐험했고 태풍의 어마어마한 힘도 목격했다. 천년의 도시에서 세상을 호령했던 화랑도 되었다. 분명히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몸도 마음도 한 뼘 더 자랐다. 가족 둘레길은 엄마에게도 건강을 찾아준 고마운 길이었다. 


가족 둘레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함께해준 시니차니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시니 생각>

바닷길, 산길을 다니면서 힘든 날도 많았지만 하루하루가 쌓여서 큰 일을 낸 게 너무 기뻤어요. 엄마 아빠랑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좋았어요.


<차니 생각>

20km까지 걷기까지는 힘들었고요. 이후에는 용기가 생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결국 100km를 완주하니 앞으로 200km도 할 자신이 생겼어요.




<열일곱 번의 걷기>

1. 호미반도 둘레길 4코스 10km

2. 수원 화성 성곽길 5.6km

3. 비학산 휴양림 둘레길 5.3km

4. 호미반도 둘레길 2코스 3km

5. 경주 첨성대, 보문호수변 9km

6. 포항 영일대 숲 2km

7. 호미반도 둘레길 2코스 13km (광복절 새벽 5시 30분)

8. 예천 금당실전통마을 돌담길 4km

9. 포항시 지곡동 4km

10. 영덕 블루로드 축산항+괴시리 전통마을+목은 이색 4km

11. 경주 불국사, 석굴암 4km

12. 포항 오어사 7.5km

13. 경주 양동마을 5km

14. 포항 도음산 7.5km

15. 강화도 마니산 5.5km

16. 포항 영일대 숲 3km

17. 문경새재 11km


총 103.5km를 가족이 함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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