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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Nov 05. 2020

아내의 휴가

나흘 엄마


첫 책 아내수업에 '일일 엄마'라는 글이 있다. 아내가 병원 진료를 위해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는 날은 아빠가 엄마 역할을 하는 내용이다. 올해 들어서는 일일 엄마 기회가 줄었다. 아내가 병원 가는 횟수가 많이 줄어서 좋지만 아빠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줄었다. 지난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아내를 친정으로 휴가를 보냈다. 기차를 타던 그녀가 새벽 5시 첫 버스를 타겠다고 한다. 4시간 버스여행에서 일출도 보라고 창가를 예약했다. 남편이 서울에 공부하러 갈 때마다 아내가 늘 정류장까지 바래다주었는데 그날은 내가 아내를 태워주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위해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이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친구도 만나고 친정 식구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세요. 마음이 편해야 병원 검사도 좋을 테니까요. 아내가 떠난 새벽 집은 고요했다.


나흘 엄마의 시작.


첫날(토요일). 나흘 엄마는 독서모임 사랑ON에서 '사피엔스' 책 나눔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6시 반에 일어나 이른 게임을 시작했다. 90분 후 게임과 독서모임을 마치고 아침식사를 했다. 문경새재 단풍구경과 트레킹을 위해 집을 나섰다. 2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서 도착했다. 진입로부터 길게 줄지어 있는 자동차 행렬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산길을 따라 올랐다. 3 관문까지 완주하지 못했지만 왕복 11km를 걸었다. 가족 둘레길 열일곱 번 중 두 번째로 긴 코스였다. 누계 103.5km를 걷고 목표했던 100km를 달성했다. 6월부터 시작한 5개월 가까운 여정이었다. 아이들의 걸음은 힘듬보다 보람이 넘쳤다. 예천 할아버지 댁에서 따뜻하게 잠들었다.


둘째 날(일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고향집에서 노트북 하드디스크에 글쓰기를 했다. 브런치 북에 응모할 원고의 막바지 작업을 했다. 코로나 시대의 조금은 다른 자녀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포항에 돌아와서도 계속 글에만 집중했다. 아이들의 점심은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칼국수였고 저녁은 맘스터치에서 사 온 햄버거로 해결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둘째가 엄마와 화상통화를 하다가 그만 울어버렸다.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진짜 엄마가 보고 싶다며...

 

마감 세 시간 전. 퇴고 작업을 할 만큼 여유는 없었다. 25편의 글을 다시 읽으며 흐름을 방해하는 문단을 들어냈다. 명료하게 주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제목을 정하고 브런치 북을 발행했다. 공모전에도 응모했다. 아슬하게 10분을 남겨놓고 일주일간의 글쓰기를 마무리했다. 깊은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두 번째 책의 원고가 반이나 완성되었으니까.



https://brunch.co.kr/brunchbook/jun10032 



셋째 날(월요일).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7시에 일어났다. 아이들도 등산의 후유증에 월요일 학교 가는 날의 부담 때문인지 일어나기 싫은 눈치였다. 우유를 부은 시리얼, 계란 프라이, 삶은 고구마에 따뜻한 물을 마시며 같이 식사를 했다. 가방을 챙기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붕 뜬 머리를 빗어주었다. 등교 준비를 마치고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는 둘째는 지난밤 슬픔을 잊은 듯하다. 8시 10분 등교하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현관에서 배웅을 했다. 매일 조금씩 자라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아내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들마저 떠나면 집은 고요하다.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해도 9시가 되지 않았다. 집현전에 혼자 앉아 뜨거운 물 한 잔으로 허전함을 채웠다. 책을 넘기는 소리만 들린다.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교하면 늘 아내는 고요한 집을 지켰으리라. 가족과 고향을 떠나 저 멀리 폴란드에 고립되어 긴 시간을 혼자 보냈던 그녀다. 이제는 포항에 내려와도 수다 떨 친구 하나 없던 그녀. 그 외로움이 어땠을까. 고작 이틀을 혼자 집에 보낸 나는 14년을 혼자 보낸 아내가 미안하고 고맙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넷째 날(화요일). 미라클 모닝을 했다. 아이들도 6시가 지나서 일어나 '가족나비'를 했다. 책으로 여는 아침이 낯설지가 않다. 학교에 다녀오고 밤이면 엄마가 휴가를 마치고 포항에 도착한다. 영재반 수업이 늦게 끝나는 첫째는 가장 바쁜 하루다. 둘째는 엄마가 사 올 선물을 기대하며 등교를 했다. 청소를 하고 설거지도 했다. 쌀도 씻어 저녁밥상에 차릴 준비도 마쳤다.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했다. 베란다 서재 너머로 보이는 노란 은행잎에 가을이 깊어감을 느낀다. 낮시간에는 햇살이 만든 따스한 온기가 베란다 서재를 밝혀준다. 마음까지 행복한 순간이다. 아내도 이곳에서 방해를 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겠지?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병원에 잘 다녀오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고. 휴가 잘 보내기.


저녁 6 50, 기차를 타고 아내가 왔다. 마중 나가는 길이 기뻤다. 병원 검사 결과까지 일주일이 남았지만 아내의 표정도 밝다. 양손에는 친정에서 만들어준 반찬과 아이들 선물이 있다. 차니가 달려가 엄마에게 안긴다. 나흘 동안 진짜 엄마를 손꼽아 기다렸구나


나흘 엄마의 역할은 여기까지

가족이 만나는 날은 이별의 시간만큼 기쁜 . 

다시 아빠와 남편으로 돌아와서 좋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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