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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차니피디 Nov 06. 2020

폴란드 은행 계좌를 해지합니다.

그럼에도 마음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폴란드에서 근무할 때 사용하던 오스트리아 Raiffeisen bank가 지난해 프랑스 BNP PARIBAS에 인수되었다. 처음엔 폴란드 국책은행 WBK에 계좌를 열었다가 글로벌 은행인 HSBC로 옮겼다. 이후 회사 재무담당이라 주거래 은행인 라파이젠에도 개인 계좌를 만들고 잘 사용했었다. 확인해보니 라파이젠 은행에 근무하던 지인들은 파리바스에 근무하지 않는다. 3년 전에 폴란드에 방문했을 때 은행 사무실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옛 추억을 회상할 때만 해도 은행이 문 닫을 것이란 이야기는 없었다. 시내에서 식사도 하고 즐거운 한때의 사진이 남아있다. 다리우스와 마리올라는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유럽의 금융사들도 인수합병으로 생존하고 있는 중이다.  


2017.5.5 브로츠와프 시청 앞 리넥 광장

7년 전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폴란드에서 저축한 자산을 남겨 두고 인터넷 뱅킹으로 송금하곤 했다. 은행이 인수되어 덕분에 내 계좌도 인터넷 뱅킹이 중지되었다. 계좌를 다시 사용하려면 오로지 직접 폴란드에 방문해서 본인 확인을 해야 했다. 해외 거주하는 외국인 신분이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다. 올해 육아휴직 때 가족 유럽여행에서 폴란드에 먼저 들려 은행 업무를 보려고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출국을 무기한 연기했다. 내년에도 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사실, 귀국하면서 7년간 폴란드에서 살았던 흔적을 남겨 두고 싶었다. 훗날 시니차니가 유럽에서 공부하게 되면 생활비로 사용할까 싶었다. 그런데, 인생은 계획처럼 되지 않는다. 내가 폴란드 주재원이 되는 순간부터 여기 포항오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끈듯하다.  길에서 흘린 땀의 이야기를 기록하다 보니 어쩌다가 작가도 되었다. 육아휴직을 하니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6개월이 지나자 은행 잔고가 줄어드는  눈에 보였다. 돈보다 시간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다짐하고 시작한 휴직이지만 현실의 먹고사니즘을 벗어날  없다. 생활비와 재테크를 위해서 아쉽지만 계좌를 폐쇄하고 한국으로 송금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없으니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상진 사장님. 2006년에  출장에서 만나고 14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나를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대우그룹 기획실에서 김우중 회장님을 모셨고 대우자동차의 폴란드 진출에 앞장섰다가 현지에 정착하셨다. 2005 LG전자, LGD, LG화학이 폴란드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사장님을 찾는 이가 많아졌고 사업도 날개를 달았다. POSCO 폴란드에 진출하는데도  도움을 주셨다. 어쩌면 나도 그곳에 남았다면 사장님과 사업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사장님 나이는 지금 내 나이보다 젊었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을까?

폴란드에 남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슨 삶이 더 좋았을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까?



내가 2007년 설립한 회사. POSCO-PWPC. 근무했던  사무동, 눈만 내리면 지붕에 수시로 올랐던 공장동.


 번도 만난 적인 없는 파리바스 은행 직원, Lukasz와 연락하며 위임장을 작성하고 있다. 오랜만에 폴란드어를 보니 친근하지만 새롭다. 그곳에서 일하던 생각이 났다. 한국보다 행정업무처리가 느리고 도장보다 자필 서명만 효력이 있는 나라. 여전히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 있는 . 유럽인들의 저녁이 있는 일터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처음에는 폴란드 사람들의 비효율적인 업무처리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답답했다. 팀원들에게 화도 내고 때론 한국의 문화를 가르쳐주고 폴란드어를 배우며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한국인의 우수성을 보여주듯 나는 멀티태스킹으로 일을 하며 능력자로 소문이 났다. 성능이 좋은 기계처럼 일했다. 그들 눈에는 내가 불쌍해 보였다고 한다.


 년을 살다 보니 오히려  보존된 자연과 따스한 인간미가 느껴져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아내의 난소암 치료를 위해 급히 귀국했지만 마음의 고향으로 언제고 돌아가고픈 마음이었다. 다시 한국에   7년이 되었다. 초고속으로 변하는 나라, 넘치는 정보 속에서   앞서가려고 부단히 경쟁하는 사람들, 낙오자에게 연민을 하면서도 경쟁 탈락을 내심 반가워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곳에서 적응하다 보니 행복감은 폴란드에  때보다 낮아졌다. 가족의 행복을 찾고 나를 잃지 않으려고 천천히 걷고 있다.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사는 것이 그리운 요즘이다.




머지않아 계좌를 해지하면 나의 흔적이 폴란드에서 영원히 사라지겠지. 내가 만든 회사도 언젠가 문을 닫고 직원들도 떠나겠지. 나의 젊은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겠지. 여러 얼굴이 떠오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곳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기억에서 나는 차츰 사라지겠지.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만나러 가야겠다. 코로나가 사라지면 내년 혹은  후년에 가족과 함께 가자. 원규형, 철승이형, 경섭이형, 송영호 공장장님, 윤정이, 마리올라, 모니카, 다리우스, 마체이... 다들 건강하게 지내시길. 지구 반대편이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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