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라색 인간입니다

Chapter 2. 파란 맛 - 첫 번째 이야기 "다이어트"

by 낭만부인

Chapter 2 파란 맛(이성적인 나)


1. 다이어트_인생은 회전목마


물만 마셔도 살찌는 체질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과연 물만 마셨을까? 어릴 때부터 나는 타고난 식탐가였다. 스스로 밥을 먹기 시작한 6살 무렵부터 나는 줄곧 비만아동의 길을 걸었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들이 어찌나 많은지,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달려가는 곳은 냉장고였다. 오늘은 어떤 음식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맛있는 음식들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적게 먹으면 살이 찌지 않는다는 단순한 원리를 깨닫지 못한 어린 소녀는 과식 때문에 늘 엄마에게 바늘로 손가락을 따게 하는 일이 일상이었고, 몇 번은 크게 배가 아파 응급실에도 갔었다.

사춘기 중학생이 된 식탐 많던 비만아동은 이제 ‘외모 가꾸기’라는 여자의 숙명을 만나게 된다. 앞머리를 깻잎처럼 옆으로 붙이고, 교복 치마는 짧고 타이트하게 고쳐 입고, 메이커 가방과 운동화를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른다. 교복의 핏을 위해 그리고 다른 친구들만큼 예뻐지기 위해 그때부터 ‘다이어트’라는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대업’을 시작하게 된다. 엄마에게 받은 급식비는 갖고 싶던 학용품과 옷들에 써버리고는 덴마크식 다이어트니, 원푸드 다이어트니 집에서 도시락을 몰래 싸다니며 친구들과 다이어트 식단이란 것을 시작한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이성에도 눈을 떠 둥글둥글했던 몸은 제법 늘씬한 느낌의 몸이 되었지만, 아직도 내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낭랑 18세는 방학만 되면 줄넘기를 100개씩 하고, 운동장을 10바퀴씩 달리며 유산소 운동들로 붙어있는 지방들을 태워본다. 그렇게 맞이한 고3. 고3은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온 에너지를 수능 점수 올리기에만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므로, 맘껏 먹는 것과 살이 찌는 것에 무한정 관대 해지는 시기이다. 불어난 몸무게만큼 모의고사 성적이 올라갈 것 같은 마음으로 매일 전투적으로 먹어댄다. 3월에 친 모의고사 성적이 실제 수능 성적이 될 것이라는 떠도는 말에 딱 맞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보너스로 10kg가 불어있는 내 몸무게도 받게 된다.

수능이 끝나고부터는 본격적인 다이어터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에어로빅, 수영, 헬스, 요가, 필라테스 등등. '뼈만 남기고 살은 몽땅 빼드린다'는 각종 운동들을 등록하고, 수십 톤의 땀을 쏟아낸다. 음식도 이제 맛이 아닌 칼로리로 선택하고, 오늘 먹은 칼로리를 기록하고 반성하는 일기도 쓰게 된다. 젊음도 뒷받침해주는 터라 극소량의 음식만 먹고, 엄청난 양의 운동을 하더라도 내 몸은 지치지 않고 버텨주고, 결국에는 슬림하고 탄탄한 바디라인을 갖추게 된다. TV에 나오는 꿈에 그리던 그녀들과 얼추 비슷한 몸을 만들고, 자신감은 날개를 달아, 그동안 입고 싶었지만 소화할 수 없었던 과감한 옷들을 신나게 쇼핑해서 이 옷 저 옷 입어대며 청춘을 만끽한다.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느낌 있는 비주얼로 거리를 걸어갈 때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서 활활 타오르던 다이어트에 대한 열정도 서서히 식어가고, 이제는 조금 살집이 붙은 내 몸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믿음을 마음 한 곳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날씬한 몸에 대해 이성적으로는 끊임없이 부러워하면서도 본능적으로는 맛있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의 노예로 살아가는 날들이 더 많은 요즘이다. 날씬한 몸이 되고 싶다는 끊임없는 갈증을 느끼면서도 오늘도 덜 움직이고, 더 먹어대며 인자하게 불러있는 배를 내려다보며 '괜찮아, 내일부터 빼면 되지.'라는 주문을 걸면서. 지긋지긋한 다이어트라는 것이 끝이 있긴 한 건지, 내가 마음에 정해놓은 꿈의 몸무게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긴 한 건지 이제는 지치기도 하지만, 본능에 순응하지 않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면서 돌고 도는 회전목마 같은 '다이어터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내일은 최고급 옷걸이가 된 사이클을 한 시간 타고, 저녁으로 바나나와 삶은 달걀을 먹어야겠다. 기름진 음식들로 채워진 내 몸을 건강한 땀으로 씻어내줘야지. '간헐적 다이어터'로 살아갈지언정 포기는 하지 말자. 거울 앞에 자주 서고 싶어 질 그날까지 우리 모두 파이팅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