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라색 인간입니다

Chapter 3. 보라색 맛 - 첫 번째 이야기 "영화"

by 낭만부인


Chapter 3 보라색 맛(본능과 이성사이)


1. 영화_매 순간이 ‘화양연화’


두 살이 많은 오빠가 있는 나에게 기억에 남아있는 첫 영화는 ‘후뢰시맨’이었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천 원을 들고 가면 최신 비디오테이프를 1박2일 동안 빌려볼 수 있었다. 비디오 가게에 들어서서 장르별로 꽂혀있는 다양한 비디오테이프들과 마주할 때면 나는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오늘은 또 어떤 최신작이 들어왔는지 설레며 최신 코너도 훑어보고, 어른들만 볼 수 있는 성인물 방면으로는 발길도 돌리지 못하고 눈으로만 흘겨보기도 하였다. 오빠와 내가 합의해서 볼 수 있었던 장르는 바로 ‘액션물’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 ‘후뢰시맨’의 1호 레드님은 나의 이상형이자 로망이었다. 그들이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변신을 외쳐댈 때마다 입을 벌리고 몰입해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동네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면 남자아이들은 리더 역할인 ‘1호 레드 플래시 자리’를 두고 싸웠었고, 여자아이들은 ‘4호’와 ‘5호’를 두고 서로 하겠다고 다투곤 했다. 우린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멋지게 변신하고 보이지 않는 적들을 물리쳤다. 한번 대여한 비디오테이프는 돈이 아까워 3번이고, 4번이고 테이프를 되감아가며 시청하고 반납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고 보호자 없이 극장이란 곳에 입장하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웅장함은 더욱 극대화되었다. 그 당시, 엄청난 흥행을 했던 영화 ‘쉬리(Swiri, 1998)’는 재미와 슬픔과 감동을 선사했다. 이전까지 한국 영화보다 해외 영화를 더욱 우월하게 바라봤던 사춘기 여중딩은 ‘쉬리’를 보고부터는 한국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역사에 무지했고, 사랑이라고는 몰랐던 나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준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였다. 멜로보다는 액션과 스릴러 영화에 열광했던 천방지축 소녀는 영화를 통해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 흥행한 영화들의 포스터를 방 벽마다 붙여놓기도 했고, 영화 속 주인공들은 위인전속의 훌륭한 위인들보다 내게 더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04학번으로 신나게 대학생활을 시작한 해에 보게 된 영화 ‘노트북(The Notebook 2004)’은 아직까지도 나의 인생 영화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영화이다. 소녀에서 아가씨로 성장하는 동안 나는 현실감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고, 액션물과 스릴러물에 열광했던 마음은 어느덧 로맨스나 드라마 장르로 옮겨져 있었다. 평범한 멜로물처럼 흘러갔던 ‘노트북’은 후반의 반전 결과로 ‘사랑’에 대한 나의 로망을 정확히 심어주었다. ‘이런 게 바로 사랑이구나. 이렇게 사랑하며 늙고 싶다.’라는 환상을 심어준 영화였다. “I've succeeded as gloriously as anyone who's ever lived. I've loved another with all my heart and soul and for me that has always been enough.(내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난 비록 죽으면 쉽게 잊힐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영혼을 바쳐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으니.)” 가장 첫 장면에서 할아버지가 된 '노아'가 하는 대사인데, '앨리'에 대한 ‘노아’의 지극한 사랑을 담아내어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였다. 젊은 날은 주변의 시선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무시한 채, 그 어떤 계산도 하지 않고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힘든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내고 생을 함께 마감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여정’을 보면서 내 마음속에도 사랑에 대한 큰 틀이 생겨난 기분이었다.

최근에 나에게 깊은 여운을 주고 오열하게 만든 영화는 다름 아닌,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015)’이었다.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감정 컨트롤 본부 그곳에서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는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까칠이, 소심이’ 다섯 감정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처음엔 신선한 콘셉트라고만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주인공이 시간에 따라 겪게 되는 삶의 변화들과 하루에도 수십 번 뒤바뀌는 감정들을 다섯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어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감동과 위로를 받게 되었다. 특히, 주인공 ‘라일리’의 어린 시절 만들어낸 상상 친구인 ‘빙봉’이 무의식의 세계로 자신을 내던지는 장면에서는 한참을 어깨가 들썩일 만큼 울음이 터져 나왔다. “Take her to the moon for me, okay?(나 대신 라일리를 달나라로 보내줘, 알았지?)”를 외치며 떨어져가는 ‘빙봉’을 보며 터진 눈물을 닦아내면서 내 마음속의 ‘빙봉’은 언제부터 서서히 사라져갔을까를 돌이켜보았다. 삶의 매 순간이 재밌고 신났었던 그 시절의 내가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위로를 준 캐릭터는 바로 ‘슬픔이’였다. 살아가면서 내 안에는 ‘슬픔’이 자꾸만 커져 가는데 애써 꾹꾹 눌러놓고 ‘기쁨’만 드러내려고 애써온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빙봉’과 ‘슬픔이’를 통해서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 가슴 따뜻한 ‘힐링 영화’였다.

영화는 내가 살아볼 수 없는 삶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면서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영양제’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내가 너무나도 차갑고 건조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뜨거운 눈물을 선사해 다시금 마음을 뜨겁게 달궈주고, 내가 너무나 들뜨고 허황되게 살아가고 있다면 냉철한 자각의 시간을 선사해 주면서 ‘본능과 이성의 균형’을 맞춰주는 그런 ‘마음의 영양제’ 말이다. 내가 너무 본능에 이끌리는 삶을 살지도, 이성에 지배되는 삶을 살지도 않게 부족해진 영역을 채워주는 것이 영화가 주는 가장 매력적인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뜻하는 ‘화양연화’가 내 삶의 어느 한순간만이 아닌 매 순간, 삶의 길목마다 마주할 수 있도록 ‘매력적인 삶’을 만들어가자. 인생을 영화처럼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