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라색 인간입니다

Chapter 3. 보라색 맛 - 두 번째 이야기 "책"

by 낭만부인

Chapter 3 보라색 맛(본능과 이성사이)


2. 책_냉정과 열정사이



어린 시절 나는 ‘책벌레’라고 불릴 정도로 책을 끼고 사는 사람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질 못했다. 책보다 영상물을 더 사랑했던 나는 활자가 가득한 책을 따분한 대상으로만 여기고 가능한 한 멀리멀리, 가능한 한 읽지 않으려 애썼던 아이였다. 책이라면 각종 학습지와 문제집 그리고 교과서로 충분하다며 그 흔한 그리스 로마신화나 세계문학 시리즈, 판타지 무협소설 등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나에게 책은 그야말로 따분하기만 한 ‘종이 묶음’이었다.

내게 처음 ‘이런 게 책의 매력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 책은 바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무렵이었는데, 재밌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삶의 깨달음이 들어있어 흥미와 배움 모두를 충족시켜주는 인상 깊은 책이었다. 그때부터 이런 부류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고, 이런 글을 언젠가는 써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다. 1947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한 작가가 먼 타국에 있는 한국의 한 소녀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켰다는 점이 신기하고, ‘이것이 바로 책이 가진 힘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책에 대한 본격적인 신봉(?)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산후우울증으로 바닥까지 내려앉은 자존감을 되찾고 싶어 심리 서적을 붙잡은 것부터 ‘나를 치유하는 독서’가 시작되었다.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그다음은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지기 시작해서 심리 서적을 이것저것 읽어대기 시작했다. 책이란 것은 어쨌든 한 사람이 몇 년 동안 자신의 생각과 여러 지식들을 정성껏 한자 한자 써 내려간 ‘노력의 농축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농축물을 만원 조금 넘는 가격에 하루, 이틀 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매력적인 매개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나와 비슷한 상황과 생각들을 가진 지인들에 둘러싸여 살다 보면 나 또한 생각이 좁게 갇히기 마련인데,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책으로 만나고, 심지어 이미 저세상에 가신 위인들도 책으로 만나볼 수 있으니 ‘책은 하나의 세계’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심리 서적으로 시작한 나의 독서는 어느덧 문학으로까지 뻗쳐가며 조금은 깊은 독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내게 제일 인상 깊은 영감을 준 작가는 한국의 ‘공지영’과 일본의 ‘에쿠니 가오리’ 작가이다.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결국 나름의 길을 찾으려 애쓰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그리고 외도와 자살까지. 어린 시절에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다소 자극적인 소재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금만 정신을 붙잡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무탈하게 살아가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와 운이 필요한 일인지도 깨달으면서 그녀들의 이야기가 멀게 만 느껴지지 않았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타워』와 『반짝반짝 빛나는』에서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누가 누굴 감히 판단하고 평가하고 재단할 것인가. 평범한 우리들 중에서도 이성을 버리고 본능에 충실하게 사랑이라는 마음만을 따라간다면, 그들의 모습과 비슷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던 작품들이었다.

책이라는 한 권의 세계는 극중 여러 캐릭터들의 인생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느끼면서 냉정하게 살아가는 현실적인 나에게는 ‘열정’을 보태어주고, 열정에만 휘둘리고 있는 나에게는 ‘냉정’ 한 바가지를 끼얹어준다. 앞으로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기 위해 책과 ‘동행’할 것이다. 책 속에서 얻은 깨달음들로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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