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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진통제 복용 중.

다 지나가겠거니. 25년 1월. 경기도 연천.

by 박세준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라는 말은 내게 마지막 진통제 같다.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 견디기 힘들거나, 직면하기가 싫거나,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 자주 되뇌이곤 한다.

보통, 새로운 근무지나 새로운 직책을 맡은 초반부에 자주 그랬던 것 같다.

사람들은 ‘지나면 다 추억’ 이라고들 하던데, 왜 나는 그게 안 되는 걸까.


공감능력이 뛰어나서 과거의 나를 냉철한 시선으로 보지 못하고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듬는 건 아닐까.

과거의 내가 위로를 받고 싶어했는가 보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는고 하니,

일요일 밤 당장 내일 어떻게 될 것만 같은 순간을 영화 속 캐릭터 - 걱정이? 불안이? 라고 했던가 - 처럼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쉴새없이 시뮬레이션 한다.

예전엔 이것이 불확실한 내일을 위한 대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을 해 보면 나의 생각과 마음에 쉴 새 없이 스트레스와 데미지를 입히는 것 같다.


원파운드라는 온라인 옷 쇼핑몰을 경영하는 오송민 씨는, 그의 남편 이지보이님이 부럽다고 한다.

‘지훈이는 내일 걱정을 내일 해요. 스위치를 딱 내려 버린달까.’

“지금 걱정해 봤자 달라질 건 없잖아? 내일 생각할래!”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마인드를 가지셨구나. 참 부럽네.

ON/OFF가 어쩜 저렇게 쉬울까. 자유로운 영혼이 틀림없다.


걱정하는 성격을 고치려 노력해 본 적은 없다.

내가 쓴 글 중에, 걱정의 총량에 관한 글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총량이 다 채워져 있어야만 ‘나는 이정도 노력(걱정)했으니까 내 잘못은 덜어질 거야’ 하는 자기방어의 수단.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혼나고, 내일 또 혼나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불안. 다시 걱정 시작. 악순환일까. 나 이대로 이 성격 가지고 살아도 괜찮을까 누가 답해줬으면 좋겠다.


아니, 누가 내 일 좀 대신 해 줬으면 좋겠다.

아니, 나 이 일 말고 다른 일 하고 싶다.

원하는 걸 늘어놓으니 내게 솔직해지는 느낌. 벌거벗는 것 같지만 직면해봐야겠다. 계속.

아니, 다른 일 중에서도 근무시간에만 딱 신경쓰면 끝나는 일을 하고 싶다. 직장의 걱정을 집으로 가져올 필요도, 휴식시간을 빼앗길 염려가 있는 일도 아닌. 딱 9 to 6에만 일 하면 오늘 하루 끝, 내일은 내일에 맡길 수 있는 일.

생소하거나 접해보지 않은 분야라도 괜찮다. 오히려 그게 나을 수도 있겠다.

좋아할 것만 같았던 군대는 내게 맞지 않았다. 물론 그 안에서 즐거움도 찾았지만 감내할 게 너무 많다. 나라보다 내가 더 중요해졌다.

생소함은 새로움으로 다가올 것이고, 초반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배우면 되고, 새로운 일은 내게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할 것이다.


유튜브 채널 ‘일상 녹음 중’은 부부가 평소 대화하는 걸 녹음하고 귀여운 그림을 넣어서 들려주는 채널이다. 난 이 채널의 콘텐츠를 참 좋아한다.

내가 꿈꾸는 결혼생활 그 자체다.

아내와 토요일 낮 복숭아를 먹으며 복숭아의 무른 정도에 따라 먼저 먹어야 할 녀석을 고르고, 라면에 계란을 풀어 넣는 게 좋은지, 건더기를 좋아하는지 따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모습.

채널 주인장 두 분의 직업적 고충은 알 수 없지만, 내가 그 모습과 가까워지려면 나는 평소에 받는 근무스트레스가 지금보다는 낮아야 함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음이 불편하면 머리가 복잡해져 그런 귀여운 상상력과 동심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남을 부러워하고 있다.

쓰다 보니 깨달았는데,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요인에 대해 굉장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주둔지에 잠들어있는 병력들이 갑자기 사고를 친다거나, 내일 있을 계획보고에서 또 수정사항이 나와 야근을 하게 된다거나, 내가 모르고 있는 혹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항이나 상황에 대해 지휘관이 갑자기 묻는다던지 말이다.

상상을 해 보면, 업무의 변수 대부분이 내 통제 하에 있거나 실현 가능한 대안을 가지고 있을 때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결국, 긴장감이 덜해야 하는 것이다.


40대 이후의 얼굴은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나는 웃는 상은 몰라도 입꼬리가 내려가 우울한 상은 되고 싶지 않다.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는 나의 자녀들에게 ‘우리 아빠는 맨날 걱정만 해’ 가 아닌 ‘우리 아빠는 웃는 얼굴로 엄청 잘 놀아줘’ 라는 말을 듣고 싶다.


미래의 나는 과연 어떤 직업을 갖게 될 것인지, 어떤 직업을 갖기 위해 나아가야 하는지, 내가 만족하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인지가 참으로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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