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과 나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Jul 19. 2023

착한 남자

어떤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친구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는데, 미역국이 나왔다. 웬 미역국이냐고 물었더니, 마침 남편 생일이란다. 그런데 미역국을 한 숟가락 떠먹어 보니 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간이 안 맞는 게 아니라 간을 아예 안 한 것 같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제야 미역국을 떠먹어 본 친구가 말한다. 정말이네.


친구 남편은 이미 저녁밥을 먹은 뒤였다. 아까 먹었으면서 왜 말 안 했어? 라고 묻는 친구에게 남편이 답한다. 부담될까 봐 그랬지.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는 남편.


"사실, 나 카레도 별로 안 좋아해."


결혼 생활 10년 동안 친구가 가장 많이 해준 요리가 카레였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 든 생각은 이렇다. 하나, 정말 자상한, 아니 착해 빠진 남편이구나. 둘, 그렇지만 너무 답답한 거 아냐?


갈까 말까 고민되면 가고, 먹을까 말까 고민되면 먹지 말며, 말할까 말까 고민되면 말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친구의 남편은 이걸 참 잘 지켜온 거다.


학교 다닐 때, 별명이 <춘향이>인 애가 있었다. 순둥이 같은 인상에 말투도 마치 여자처럼 나긋나긋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이런 남자가 결혼하면 저렇게 되려나? 그 친구는 지금 어떻게 사는지 새삼 궁금하다.


이야기를 접하고 첫 느낌은 분명 감동이었다. 간이 조금도 되지 않은 미역국, 그러니까 미역을 담은 맹물을 어떻게 꾹 참고 먹었을까? 싫어하는 카레를 매일 저녁 먹으며 어떤 느낌이었을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 이런 사람은 본 적은커녕 들어본 적도 없으니 감동 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둘 사이에 대화가 얼마나 없었던 걸까?


혹시나 마음 다칠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이야기도 하지 않은 남편의 마음씨는 참 훌륭하지만, 그렇게까지 대화가 없었다면 그게 과연 바람직한 관계였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인바디 대 눈바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