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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24. 2023

몇몇 언어의 be 동사

김필영의 <5분 뚝딱 철학>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공부할 때 '있다'와 '이다'를 구분하지 못해서 헷갈려 해요. 그도 그럴 것이 영어에서는 '있다'와 '이다' 모두 be 동사를 사용하니까요. (<5분 뚝딱 철학>, 102쪽)


영어는 과연 그렇다. 프랑스어도 마찬가지다.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는 배운지 오래돼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러나 스페인어는 다르다. 한국어의 '있다'와 '이다'에 대응하지는 않지만, 스페인어에서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것은 두 개다. ser 동사는 존재, estar 동사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묘사 대상과 더 확실하게 결합한 어떤 속성에는 ser 동사를 쓰고, 일시적이거나 비필연적 결합에는 estar 동사를 쓴다.


Soy estudiante. 나는 학생이다. (존재)

Estoy cansado. 나는 피곤하다. (상태)


이 구분은 꽤나 철학적이다. 국적에 대해서는 ser 동사를 쓴다. 국적이라고 지칭하기는 해도, 그것은 '어디 사람'이라는 뜻이다. 스페인어가 발생할 당시 유럽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 사람의 태생적 속성이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듯 바뀌기 어려운 어떤 것이다.


직업에 대해서도 ser 동사를 쓴다. 국적도 직업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요즘을 생각하면, 살아 움직이는 생물인 언어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 갈지, 흥미롭다.


일본어에서도 be 동사가 간단하지 않다. ある도, いる도 be 동사에 대응하지만, ある는 무생물에, いる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에 대해 쓴다. 굳이 말하자면 두 동사 모두 한글의 '있다'에 대응한다.


아랍어에는 상태를 표현하는 be 동사가 없다. 예컨대 '카림이 착하다'라고 말하려면 كريم جيد (카림 자이드)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동사가 필요 없다. 물론 존재를 의미하는 동사는 따로 존재한다.


사실 한글도 그렇다. 예컨대 "커피가 뜨겁다"라는 문장은 '커피'라는 명사가 '뜨겁다'라는 형용사와 결합한 것이다. coffee라는 명사, is라는 동사, 그리고 hot이라는 형용사가 결합한 영어와는 문법 체계가 다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이다'라는 <어미>를 마치 동사처럼 생각할 수 있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한글에 '존재한다'는 동사가 있듯이, 영어에도 존재를 분명히 의미하는 동사는 따로 있다. 의미를 분명히 하고자 할 때는 exist라는 단어를 쓰면 된다. 이렇게 같은 의미를 가진 수많은 단어가 있으니,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오세아니아 정부에서는 단어를 없애려고 그렇게 기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be 동사의 이중성은 정말 시적이지 않은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온 햄릿의 위 대사는 너무 유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be 동사의 예시로는 역시 월리스 스티븐스의 시, <눈사람>의 마지막 구절이다.


Nothing that is not there and the nothing that is.



사족


물론 존재론이 be 동사로 인한 언어적 혼란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논고>로 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그 혼란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에이어는 <언어, 진리, 논리>에서 myself라는 영어의 재귀 대명사 때문에 self란 무엇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철학적 논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프랑스어에서 myself는 moimeme인데, my self라고 이해해서 내게 무슨 self라는 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영어와는 달리, moimeme는 그렇게 헷갈릴 여지가 없다. 영어로 굳이 바꾸자면 meself 내지 me (the) same 정도니까. 다르게 말하면, 영어에서는 3인칭에서나 himself, themselves지만, 프랑스어에서는 전부다 목적격이다.


사족2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힘은 강력하다. 나의 존재 그 자체와 별도로 my self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이츠는 <A Dialogue of Self and Soul>이라는 시를 썼는데, 말 그대로 my self와 my soul 사이의 대화다.


사족3


영어에서도, 뭔가를 형용할 때 be 동사가 기능적으로 필요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래서 상당수의 크레올 영어(식민지 영어)에서는 단순 형용구문에서 be 동사가 생략된다.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영어학 교과서에서 읽은 만화가 생각난다.


백인 꼬마: Where is Tom?

흑인 꼬마: He sick!

백인 꼬마: He sick? You mean he is sick! I am sick. You are sick. He is sick!

흑인 꼬마: (걱정스러운 얼굴로) Must be an epide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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