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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16. 2023

찍어먹어봐야 아나

식품 위해성에 관한 책을 하나 읽었는데, 아쉽게도 또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거두절미해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유난 떨지 말고 전문가들 시키는 대로 해라"라는 것이다.


(좋은 점도 무지하게 많은) 자본주의의 나쁜 점 중 하나는 돈이 목숨보다 가치 있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어떤 이는 돈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영역 중 하나가 식품업계다. 레드 와인이 몸에 좋다고 광고하는 세계다. 굳이 IARC 지정 발암물질 목록을 들먹이지 않아도, 술이 발암물질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 책에서 특히 거부감이 드는 것은 위험을 과장하지 말자는 저자의 태도다. 저자는 환경법상 사전주의의 원칙을 식품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법도, 사전주의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식품에 대해서만 사전주의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어떤 식품도 허용되지 않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전인수적 논리일 뿐이다. 


사전주의 원칙을 배제하고 나면, GMO 식품이나 MSG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뻔한 일이다. 저자는 예상대로 이들의 위험성을 과장하지 말자고 말한다. 이런 논리 전개가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의 오류다. 나는 위험성을 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위험의 가능성에 대해 인지하고, 사전주의 원칙에 따라 '어느 정도' 안전하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조심하자는 얘기다. 


'위험하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안전하다고 생각하자'는 식의 태도는 그냥 막 살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냥 막 사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막 살 거라면, 저자 같은 식품학자가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런 식의 논리는 소비자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정보 우위에 있는 식품 제조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얘기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사족이지만 MSG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MSG가 천연 물질이라 안전하다는 주장은 저자 본인이 거부하겠다고 말한 논리다. 소금도 천연 물질이다. 저자는 혈액뇌장벽(BBB)이 MSG를 막아준다고 아주 좋아하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누수증후군이 BBB의 투과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인간의 신체가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언제나 제대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왜 뻔한 얘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또 하나, IARC 발암 물질 구분을 '급' 대신 '군'이라고 부르자는, 종종 등장하는 이상한 논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급'이라고 부르면 그것이 마치 발암 물질의 위험도를 계급화한 것처럼 느껴지니, '급' 대신 '군'이라 부르자는 것이다.


이건 그냥 이상한 말 장난이다. IARC 1급 발암 물질은 2급에 비해 암과의 상관 관계가 더 확실한 것들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철학적 논쟁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더 확실하게 위험한 것이라면, 분명히 더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군'이라는 이상한 단어로 위험을 호도하는 것보다 '급'이라는 친숙하고 누구나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형법 상 1급 살인과 2급 살인은 분명 다르지만, 결과가 다르지는 않다. '급'이라는 단어가 결과의 정도만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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