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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28. 2023

위고 대 셰익스피어

웬 말도 안 되는 대진이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맞다. 말도 안 되는 대진표다. 그러나 국뽕이라든가 1인자에 대한 반감으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빅토르 위고의 위상은 예사롭지 않다. 위고가 셰익스피어보다 위대하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과연 그럴까? 위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레 미제라블>을 살펴보며 생각해보자.


어렸을 적, <장발장>이란 소설을 읽었고, 매우 좋아했다. 당연하다. <장발장>만큼 어린이들을 매혹시키는 소설도 드물다. 코제트라는 어린이가 주인공 중 하나이고, 권선징악이라 부모님들도 흐뭇하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매우 재미있다.


작년에 <레 미제라블>을 읽었다.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읽고 나서 보니 완역판이 아니었다. 쓸데없이 구구절절한 ABC단 묘사 때문에 고통스러웠는데, 이게 다가 아니라고? 지금 완역판을 읽고 있다. 무려 5권으로 되어 있다. 두께를 생각하면, <삼국지>처럼 10권으로 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량이다.


어릴 적 <장발장>을 읽을 때는 마리우스 편이 매우 지루했다. 여러 번 다시 읽을 때도, 마리우스 편은 안 읽었던 것 같다. 작년에 두꺼운 1권짜리를 읽을 때는 마리우스보다 더한 존재, 즉 ABC단이 나를 괴롭혔다. 마리우스는 양반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3배는 되는 것 같은 완역판을 읽으니, ABC단의 유쾌하고 쓸데없이 말이 많은 청년들조차 귀엽게 느껴진다. 통으로 한 챕터씩을 차지하고 시시때때로 출몰하는 저자 자신의 잡설을 견디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과도한 수다와 시시콜콜한 옛날 이야기를 견디는 것보다도 훨씬 고통스럽다.


워털루 전투나 루이 필립에 대해 통으로 한 챕터씩을 할애해서 강의를 하는 걸 견뎌냈더니, 이제는 <은어>라는 주제로 언어 철학 강의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이해한다. 게다가 내 생각도 위고의 생각과 거의 같다. 특히 규범문법보다 묘사문법을 지지하는 것 같은 그의 입장에 전적으로 찬동한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은 소설가의 의무가 아닐 뿐더러 사실은 절대 피해야 하는 일이다. 출판 분량의 두 배, 세 배를 쓰고 나서 줄여 쓴다고 주장하는 소설가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그 두꺼운 책을 사야 하는 독자들은 무슨 죄인가? 


앨범에 트랙 수를 채우려 들어가 있는 이상한 음악들처럼, 분량을 채우려는 것인가? 비슷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앨범은 곡 몇 개 과감하게 가지치기하고 1장짜리 디스크로 나왔다면 훤씬 더 명반이었을 것이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다. 두꺼운 소설 한 권이 가성비 좋은 엔터테인먼트였던 시대다. 무인도에 갈 때 뭘 가져갈지 고민할 때 소설책이 상위권을 차지했을 시대다. 그렇다 해도, 흥미로운 이야기 대신 역사, 정치, 언어에 관한 잡설을 무인도에서 읽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위고가 발자크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그냥 돈이나 벌면 장땡이라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두껍고 가성비 좋은 엔터테인먼트는 <쇼섕크 탈출>에서 dumb ass로 유명해진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맡기면 될 일이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 시절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중 하나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다.)


위고가 단지 가성비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레 미제라블>의 분량을 미저러블하게 늘렸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위고가 불멸의 문학성을 추구했는지도 알 수 없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문학성 같은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어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는 셰익스피어는 그냥 사업가였을 것이다. 물론 완벽을 추구하는 사업가로서 그가 작품들의 퀄리티에 신경을 썼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와 같은 사업 마인드를 보여준 사람으로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고 싶다.


호사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정체로 들먹이는 인물들의 <일부> (말로 잘 생겼다)


어쨌든, 상품을 세상에 내놓는 사업가로서 위고와 셰익스피어의 태도는 매우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천 년이 넘도록 지켜진 3일치를 아무 주저 없이 한방에 깨부순 것이 셰익스피어다. 그것만으로도 셰익스피어는 물리학과 수학에서 뉴턴이 가지는 위상을 차지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문학에서 가지는 위상은 물리학에서 뉴턴, 아인슈타인, 보어를 합쳐 놓은 것보다도 더 높다. 그에게 버금가는 작가가 누구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질 뿐, 앞서 말한 어떤 프랑스 사람처럼 국뽕으로 해괴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관종으로 여겨질 뿐이다. 셰익스피어 위에 세르반테스를 놓으려고 하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거나, 헤밍웨이처럼 셰익스피어를 시기하는 이상한 정신병을 앓은 사람들뿐이다. 그냥 내 편견인지 모르겠으나, 독일인들은 괴테조차 셰익스피어 위에 놓는 테러를 하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그가 자기 상품에 대해 가진 자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효과의 일치로 기존의 3일치를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스스로 증명했다. 그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불러 일으키려 한 <효과>에 가성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새 앨범을 내려는 데 곡이 5개밖에 안 쓰여졌다면, 그걸로 앨범을 내면 될 일이다. 굳이 브라이언 메이를 데려와서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곡을 다섯 개 더 쓰게 할 이유가 없다.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위고와 셰익스피어의 차이점이다.


그렇게 셰익스피어는 위고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톨스토이에 도스토예프스키를 더한 다음 2를 곱한 숫자보다도 아득히 더 위대한 작품들을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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