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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29. 2023

<노인과 바다> 한국어판에 나오는
결정적인 오역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장면은, 그 놀라운 물고기의 뼈를 본 관광객이 묻는 질문에 웨이터가 대답하는 장면이다.


테라스 식당에 들어선 한 무리의 관광객 중 한 여자가 인상적인 물고기 뼈를 보고 뭐냐고 묻는다.


"티부론입니다." 웨이터가 말했다. "상어지요." 그는 물고기가 그렇게 된 원인을 설명해 주려는 참이었다. (<열린 책들> 버전)


"티부론이죠." 급사가 대답했다. "상어의 일종이랍니다." 급사는 사투리가 섞인 영어로 고쳐 말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열심히 설명하려고 했다." (<문예출판사> 버전)


원문은 이렇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가 카잔차키스(그리스어)나 루미(페르시아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설명을 위해 뒷 부분까지 길게 인용한다.


“Tiburon,” the waiter said. “Shark.” He was meaning to explain what had happened. 
“I didn’t know sharks had such handsome, beautifully formed tails.” 
“I didn’t either,” her male companion said. 
Up the road, in his shack, the old man was sleeping again. He was still sleeping on his face and the boy was sitting by him watching him. 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the lions. 


무엇보다, 저런 오역이 등장하게 된 1차적인 책임이 헤밍웨이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정확하게 번역하려면 이 정도로 하면 될 것 같다.


"티부론..." 웨이터가 말했다. "그러니까, 상어가..."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려고 애썼다.


티부론은 스페인어로 상어다. 그러니까 쿠바 사람인 웨이터의 입에서 우선 모국어인 스페인어가 튀어 나온 것이다. 상어가 그 물고기를 뜯어 먹어서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왜 뻔한 질문에 간단하고 확실한 답을 하는 대신 상어를 들먹인 걸까? 그냥 그 물고기 이름을 말해줬으면 될 일이었다.



그 대단한 물고기의 정체는 거대 청새치(giant marlin)다. 상어라는 단어도 영어로 곧바로 안 나오는 웨이터가 청새치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웨이터는 관광객의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최대한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웨이터는 말을 끝맺지 못했고, 관광객은 그것이 물고기의 정체라고 오해해 버렸다.


단지 두 단어(사실은 한 단어)로 끝나버린 웨이터의 대답을 관광객이 오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가 들은 것은 단지 <상어>라는 단어 하나뿐이었으니까. 그 아름다운 뼈가 상어 뼈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헤밍웨이가 왜 저렇게 썼는지 역시, 알 수 없다.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은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이고, 마찬가지로 그는 소설의 엔딩에도 꽤나 공을 들였을 것이다. 저런 오해를 묘사해서 뭔가를 노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앞뒤 사정 다 잘라버리는 그의 하드보일드 문체도 물론 한 몫 했다.)


덕분에, 그 미국인 관광객은 물론이고 한국의 유수 출판사들까지 오해를 해버렸다.



사족

이 엄청난 오역은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고, 내 친구가 발견한 것이다. 그 친구는 블로그를 하지 않으니, 나라도 이 엄청난 발견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사족2

이 엔딩이 무슨 의미일까 하고 구글 바드에게 물어봤더니, 환장스틱한 거짓말을 시전했다. 너무 기가 막혀서, 이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의 글로 쓸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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