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스왠슨의 이 소설을 나는 참 좋아한다. 5번은 넘게 읽었다.
어그로를 끌려는 것은 아니고,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잡담이다.
나는 사형 반대론자다. 이유는 사형 집행의 결과를 되돌릴 수 없어서다. 인간은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즉 오심의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오심이 아닌 사법 살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사형 제도가 없었다면 민혁당 사건도 발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중정표 분쇄기가 등장했겠지만.)
묻지마 살인 사건이 자꾸 일어나니 이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는 느낌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수십 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의미에서 사형 폐지 국가 중 하나다.
사형은 범법자를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는 방법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물론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다. 그러나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란 우리나라 법 체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해에 20명의 무기수가 사회로 나온다는 사실에 (사형 폐지론자인) 나조차도 충격을 받았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9SA5DWP69?OutLink=nstand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사형 폐지를 옹호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이다.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절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넘쳐 난다. 다만, 그 사람이 정말 죽어 마땅한가를 100% 확실하게 판단할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예컨대 노르웨이 대학살 사건의 범인인 Anders Behring Breivik은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한 극악인이지만, 현재 노르웨이의 호텔 같은 교도소에서 1인실과 각종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도 고립된 사람이었다. 데이트를 해보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성형 수술도 했다. 소위 "외로운 늑대"다. 최근에 묻지마 살인 사건을 벌이는 사람들 중 다수가 이 부류다. 우리보다 뭐든지 10년 정도 앞서가는 일본에서도 이런 부류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 우리보다 먼저 유행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Into the Night>에는 Rik Mertens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외톨이로, 데이트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자를 만나겠다고 러시아행 비행기에 탄 사람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 역시 인간적 찌질함을 여러 차례 보이지만,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건 드라마다. 게다가 저 사람은 적어도 완전한 외톨이는 아니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으니.
모든 문제는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모든 정책에는 돈이 든다. 완벽한 정책도 없으며, 돈을 투입한다고 효과가 정비례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또다시 최적점을 찾는 문제인가.
그래도, 같은 돈으로 교도소를 호텔처럼 꾸미는 것보다는 고립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정서적으로도 더 나아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