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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10. 2023

소크라테스의 악처

약자인 것도 서러운데 악명까지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여성들 중 아직도 이름이 회자되는 희귀한 인물이 크산티페다.

악처로 유명했으나, 그 실체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박색이라 결혼했다는 제갈량의 아내에 대해서도 각종 판타지가 많지 않은가.

(우에스기 겐신이나 신윤복이 여자라는 썰도 유행 중이니, 이 정도는 마일드하다.)


각설하고, 크산티페가 왜 오명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 기괴한 생각을 해보았다.


이 사람 아내가 악처라는 얘기가 아니다


헬조선


21세기 한국을 헬조선이라 하지만, 이씨 조선이야말로 헬조선이었다.

<열하일기>를 보면, 책문 건너편 국경 마을조차 한양보다 훨씬 더 번화하다는 묘사가 나온다.

박제가가 수레 좀 쓰자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지만, 헬조선은 망할 때까지도 민생 따위는 챙기지 않았다.


열하일기가 유행하자, 성군이라는 정조는 문체반정을 일으킨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보면, 세손 시절 소설책 보다가 걸려 영조에게 혼날 뻔했던 기억이 이산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건 어떨까. (홍국영이 재치로 구해주었다는 그 야사 말이다.)


어쨌든, 실학자가 넘쳐나던 시대에 왕이었던 정조는 화성 건축 때 기중기를 쓴 것 빼고는 충성스러운 천재들의 말을 싸그리 읽씹했다.

그렇게 헬조선은 이어졌다.

아니, 그의 아들 대에서 세도정치라는 헬조선 끝판왕으로 진화했다.


정조에게 중요한 것은 사대부들이 우아한 (그러나 열하일기처럼 지나치게 재미있지는 않은) 문장을 쓰는 것이지, 백성들 따위 굶든 말든 상관없었던 것이다.

정조를 예로 든 것은, 성군조차 그랬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연산군이나 인조 같은 사이코패스가 백성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정조보다 몇십 배는 더 성군인 세종대왕 역시 마찬가지다.

명나라 사신들 접대에 백성들 등골이 휘어진다는 상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명나라를 섬기는 것은 큰 일이고, 백성들이 힘든 것은 작은 일인데, 어찌 큰 일을 버리고 작은 일에 신경을 쓰란 말인가?"


명나라 사신들의 뇌물 요구는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신생 국가로서 명나라의 눈에 들어야 했던 조선은 그야말로 초호화판 뇌물로 명나라 사신들을 구워 삶았다.

조선 후기에, 명나라 수준으로 마련해둔 뇌물 더미를 보고 청나라 사신들이 놀라 자빠졌다고 한다.


명군도 헬조선에서는 별 수 없었다는 주장을 하려고 세종과 정조의 이야기를 했다.

소위 "사대부의 나라"인 조선이 백성들 굶어 죽는 것에 아무 관심 없었다는 사실은, 이와 기의 관계에 관한 논쟁이나 호락논쟁, 더 한심하게는 예송논쟁 따위의 정신 나간 행태를 보면 더 설명이 필요 없다.


문명6에 등장하는 세종 (몸매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


조선 양반들이 형이상학적 논쟁이나 벌이며 농땡이를 부릴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당연하다. 먹고 살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백성들이 50%가 넘는 세금을 내는 동안, 군포 한 필 안 내겠다고 왕을 협박한 인간들이다.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고상한 철학적 논쟁을 벌일 정도로 에너지가 남아 돌았던 것이다.


같은 배경으로 번성했던 문명이 바로 고대 그리스다.

나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시대의 광팬이다.

그러나 그들이 꽃 피웠던 찬란한 문화와 소위 "민주주의"는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전체 인구의 일부에 불과한 한 줌의 사람들만이 즐기던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외된 대다수는 노동과 침묵으로 그들의 위세를 떠받드는 역할을 강요당했다.


바로 여기에 크산티페가 등장한다.

찬란한 고대 그리스 문명이 꽃 피우는 동안, 그 찬란함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워낙 유명한 사람의 아내였으니, 이름이라도 남긴 것이다.

그녀가 남긴 악명은, 그 찬란한 시대를 모든 사람들이 반겼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근대 이전 시대에는 너무나 희귀했던, 료타르가 말하는 <작은 내러티브>의 빛나는 사례라고 말한다면 너무 나간 주장일까.


말 그대로, 찬물 세례를 해주는 크산티페 (그런데 복식이 그리스가 아니잖아...)


사족


양반이라고 다 먹고 살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든가, 정조가 (서울에서 난전을 펼 정도로 뭘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지만) 신해통공 같은 민생 정책도 추진했다든가 , 헬조선에서 벌어졌던 성리학 논쟁이 그렇게까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논점이 다르므로, 패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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