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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24. 2023

과학자들의 인격 하강 대회

[책을 읽고] 데이비드 보더니스, E=mc^2

오토 한이라는 폐기물


오토 한이라는 남자는 아주 매력남이었나 보다.

실험은 좀 할 줄 알지만, 이론적 해석에는 젬병이었던 이 과학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을 이용해 논문을 썼다. 아니, 아예 대신 쓰게 했다.

어느 정도로 그녀를 이용했느냐 하면, 노벨상을 탔다.

물론, 그녀는 상을 타지 못했다.

이 인간이 "그녀는 나의 조수였을 뿐"이라 말했을 정도로, 그녀의 연구는 오로지 그의 이름으로만 발표되었다.

나중에는 치매가 왔는지,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했다.

아, 물론 이 인간은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그녀의 이름을 우리라도 기억하자.

그녀의 이름은 리제 마이트너다.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 (1909년 베를린 대학교)


비슷한 얘기가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은 수학 실력이 모자라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밀레바다.

나는 무려 <아인슈타인 박물관>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초기 업적이 거의 밀레바의 연구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들은 1960년대에 세르비아 민족주의 차원에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편견을 가지면 안 되겠지만, 세르비아라는 단어는 내게 인종청소와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 어감이 별로 좋지 않다.)

참고로, 밀레바는 평생 동안 정신병원을 드나든 둘째 아들을 돌보느라 지쳐버렸다.


아인슈타인의 인성에 대해서는 증거가 차고 넘치므로, 이건 그냥 흥미거리 이야기일 뿐이다.

반면, 오토 한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이쪽은 지지하는 증거가 아주 차고 넘친다.

오토 한, 리제 마이트너와 함께 연구했던 과학자들의 증언이 산처럼 쌓여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토가 리제에게 연구를 애원하는 편지가 수십 통 남아 있다.



공식 하나 가지고 책 만들기


E=mc^2은 물론 유명한 공식이다. 그런데 이 공식 하나로 책을 만들다니, 대단하다.

이 공식이 원자폭탄이라는 실체로 나타나는 과정만 다루었다면, 그건 일반적인 수준의 발상이다.


이 책은 그 전에, E, =(등호), m, c, 그리고 제곱에 대해 다룬다.

에너지에 대해서는 패러데이, 등호에 대해서는 그 기호를 대중화시킨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컨대, 등호는 16세기 중반 영국의 교과서 작가 로버트 레코드에 의해 도입되었으나,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 세기 정도 걸렸다.


이 파트가 조금 더 길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특히, 생불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인격을 가진 패러데이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아서 좋았다.



과학자들의 생활 에피소드


과학자들의 인격에 대한 에피소드는 무수히 많고,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왜곡되기도 한다.

게다가 이쪽에는 자폐 스펙트럼에 가까운, 즉 예전에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불렸던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특이한 에피소드가 많으니 재미있지 않기가 어렵다.

대표적인 것은 역시 폴 디랙일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극단적으로 비사교적인 과학자들은 대개 19~20세기 이후다.

태양인들은 성질이 더러워서 거의 멸종했다는 주장과 비슷하게, 동화주의적(conformistic) 경향이 강했던 근대 이전의 문화에서 이런 사람들이 살아남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기록 비용이 높았던 과거에는 과학자들의 세세한 생활 에피소드가 기록으로 남기 어렵기도 했을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과는 전혀 상관없고, 오히려 사교성이 뛰어난 아인슈타인에 관한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어쨌든, 이 책의 주인공이다.


취리히 공과대학에서 아인슈타인을 가르친 교수는 이론물리학을 싫어해서, 맥스웰을 가르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인슈타인을 그걸 다 독학했다는 얘기인데, 과학자들에게 독학은 당연한 거니까,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제본 일 하면서 과학자가 된 패러데이를 보라.)


민코프스키는 아인슈타인에게 수학적 센스가 부족하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 공교롭게도 아인슈타인에게 수학을 가르친 장본인이 민코프스키다. 셀프 디스인가? 민코프스키가 없었다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도식화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을 것이므로, 그냥 웃고 넘어가자.


에딩턴의 검증 탐사 당시, 아인슈타인은 결과 확인이 늦어져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러나 9월 중순까지 감감무소식이자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소식 들은 것 없냐고 물었다. 꽤 귀여운 에피소드다.


민코프스키


아서 에딩턴 욕하지 마라


에딩턴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고 싶다. 에딩턴을 싫어하게 되는 에피소드는 딱 두 개뿐이다. 두 개가 많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인격이 훌륭함을 방증해주는 에피소드는 수십 개가 넘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그가 어떤 기자에게 "나하고 아인슈타인 말고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게 누구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기자 얘기다. 가려 듣자.


두 번째 에피소드는 그가 찬드라세카르에게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선, 그가 이런 경박한 표현을 썼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당시 블랙홀을 상상하는 것이 과연 쉬웠을까? 아인슈타인도 우주 팽창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 우주상수를 억지로 끼워넣었다.


나중에 에딩턴은 자신이 틀렸음을 시인하고, 찬드라세카르에게 여러 차례 사과했다. 그러나 찬드라세카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에피소드에서 찬드라세카르는 가련한 피해자처럼 묘사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후일담을 들으면 느낌이 반전된다.


아서 에딩턴이 아인슈타인의 중력 렌즈를 증명하기 위해 탐사를 떠났을 때는, 1차 대전이 끝난 직후였다. 아인슈타인은 어쨌든 조금 전까지 적이었던 국가의 사람이다.


전쟁이 끝났는데, 무슨 앙금이 있겠냐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퀘이커 교도인 에딩턴은 평화주의자였고, 1차 대전 중 영국의 평화주의자들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알베르트와 아서



*********** 버리기 아까운 메모들 ***********


- 볼테르의 연인이자 뛰어난 물리학자였던 뒤 샤틀레 부인은 1749년, 40세의 나이로 임신하자 출산 중 죽을까 두렵다고 편지에 썼다. 결국 그녀는 출산 후 감염으로 죽었다.

- 물방울은 대체로 한데 모여 있는데, 표면장력 때문이다. 비슷하게, 원자핵 양성자들에게는 강력이 있다. - 보어의 비유라고 한다. 이 책에서 처음 봤다. 이런 환상적인 비유를 왜 가르치지 않을까?

- 하이젠베르크와 히믈러의 어머니들은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 프랑스에서는 원자력 발전 기업에 대한 소송이 금지되어 있으며, 정부가 대신 책임을 진다.

- 화재감지기는 방사성 아메리슘으로 작동하며, 비상구 표시등은 삼중수소로 작동한다.

-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스웨덴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데, 게오르크 헤베시는 실제로 시민권을 받아 여생을 스웨덴에서 보냈다.

- 하이젠베르크의 심문 녹취록을 보면, 중수가 500리터만 더 있었어도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노르웨이 특공대 작전은 정말로 결정적이었다.

- 오래된 격언에 따르면, 수학을 하려면 종이, 펜, 쓰레기통이 필요하지만, 철학에는 종이와 펜만으로 충분하다.

- 뻘짓은 영국, 미국뿐 아니라 독일에서도 벌어졌다. 하이젠베르크는 핵무기 개발에 꼭 필요한 드라이아이스를 공급받지 못했는데, 식료품 보관용으로 써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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