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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28. 2023

노화에 관한 이론들

[책을 읽고] 제이슨 펑 등, <어떤 몸으로 나이 들 것인가> (1)

나는 제이슨 펑의 팬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보고 덥썩 집어들었으나, 공저였다.

아쉽게도, 공저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책이었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노화에 관한 4가지 이론을 소개한다.


노화란 세포의 회복 능력이 점점 감소해서 세포 손상이 서서히 쌓이는 것이다. 그 결과 낮은 수준의 염증이 발생하는데, 이는 노화의 매우 큰 특징이므로 '염증성 노화(inflammaging)'라고 불린다. (37쪽)


노화에 관한 첫 번째 이론은 '마모 이론'이다. 유전자 입장에서 번식 이후 생존기계는 의미 없다. 그래서 버려진다. 다른 식으로 설명하면, 한정된 에너지를 번식과 생존 사이에서 배분한 결과, 번식 이후 생존에 배정되는 에너지는 적을 수밖에 없다. 번식 직후 죽어버리는 곤충이나 어류들을, 이 이론은 잘 설명한다.


이 이론은 암컷이 수컷보다 오래사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번식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할당한다'는 사실 자체가 암컷의 정의다. 그렇게 번식에 많은 에너지를 할당하고 그 이후에 생존에 쓸 에너지도 더 많다니, 이 이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두 번째 이론은 자유 라디칼 이론이다. 생물은 생존 과정에서 자유 라디칼을 생성할 수밖에 없다. 이 자유 라디칼을 중화시키는 능력이 퇴행하는 것이 노화라는 이론이다.


세 번째 이론은 미토콘드리아 이론이다. 세포 수준에서 자가포식(오토파지)이 일어나는 것처럼, 미토콘드리아에도 자가 포식이 발생하는데, 이를 미토파지라 부른다. 이를 통한 손상 복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노화가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네 번째는 '호르메시스(hormesis)'인데, 저자도 말하듯이 노화 이론이 아니다. 독도 적은 양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는,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다. 스트레스가 전무한 상황보다 적절한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 좋다는 소위 유스트레스(eustress)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저자는 운동과 칼로리 제한 역시 호르메시스의 한 종류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뛰어난 통찰이다. 그러나 노화 이론 이야기는 아니다. 증상도 짚기 전에 처방부터 하는 꼴이다.


사진: Unsplash의Christian Bowen


(외)할머니 이론


노화가 왜 일어나는가, 다시 말해,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완료한 생명체가 왜 살아서 늙어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대표적인 학설은 할머니 이론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외할머니 이론인데,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구분하지 못하는 서구권 언어의 영향으로 그냥 할머니 이론이라 불린다.


할머니 이론은 간단하다. 암컷은 자식을 낳고 길러야 한다. 여기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번식에 이미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은 암컷에게 위험한 투자다. 이는 단지 암컷의 생존은 물론, 갓 태어난 자식에게도 위험한 상황이다. 이때 구원 투수로 등장하는 것이 할머니다. 


할머니란,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지존 퀘스트를 오래 전에 끝냈고, 번식 능력도 더는 없지만 자기 딸이 번식기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개체다. 할머니는 번식 능력이 없으므로, 딸의 자식이 생존하도록 돕는 퀘스트에 전력 투구할 수 있다. 바로 이 쓸모 때문에, 생명체는 번식 이후에도 살아 남을 이유가 있다는 것이 할머니 이론의 골자다.



아쉬운 접근


노화가 왜 일어나는가 하는 질문과 노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질문은 별개의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4가지 이론은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텔로미어 이론이 빠져 있다. 미토파지 이론과 텔로미어가 관련 있을 수도 있다. 미토콘드리아에도 DNA가 있으니, 그 DNA에도 텔로미어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저자는 노화의 방식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론을 빠뜨렸다.


이 책의 목적이 노화 대책이라면, 노화에 대한 두 가지 질문, 즉 왜와 어떻게 모두 실전 적용이 가능하다. 어떻게에 초점을 맞춘다면, 노화가 일어나는 기전에 맞써 싸우면 된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질문은 왜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대증요법이다. 증상에만 맞서 싸울 뿐,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다.


게다가 호르메시스 이론은 증상에 대한 진단이 아니라 처방이다. 너무 성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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