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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25. 2023

목구멍 안쪽을 지나면,
쌀은 설탕과 같다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1) 인트로

먹을거리


아토피성 피부염이라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으려는 친구 덕분에, 나는 내 몸을 가지고 수많은 식이요법을 임상 시험해야 했다. 생식도 다양하게 먹어봤고, 사상 체질에 따른 체질식, 몸에 좋고 나쁘다는 음식들을 많이 먹고 피하기도 해봤다. 여러 가지 약초를 섞었다는 환약 형태의 <수제> 생식은 물론, 간장과 고춧가루, 식초를 섞어 마시기도 했다.


좀 더 대중적인 식이요법 중에서는 저탄고지에 도전했다가 2개월 만에 백기 투항한 경험이 있다. 효과는 조금도 보지 못했고, 부작용은 직격탄으로 맞았다. 난생처음 변비라는 걸 제대로 경험했는데, 이 고통을 안고 사는 분들께 리스펙.


음식에 관해서는, 무엇을, 얼마나, 언제 먹느냐 하는 점을 따져보아야 한다. 무엇을, 그리고 얼마나 먹느냐에 관한 방법론이 식이요법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무엇을 먹느냐에 집중하는 식이요법으로는 황제 다이어트로도 불리는 앳킨슨 다이어트, 과학적 근거가 비교적 탄탄한 저탄고지 다이어트, 아베 코지의 당질 제한식,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사기꾼 앤설 키스 때문에 이름이 더럽혀진 지중해식 다이어트 등이 있고, 얼마나 먹느냐에 집중하는 식이요법은 칼로리 제한에 집중한다.


언제 먹느냐에 관한 내러티브는 간헐적 단식이 주도하고 있다. 먹는 시간을 제한하면 얼마나 먹느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간헐적 단식을 포함하는 식이요법은 대개 무엇을 먹을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간헐적 단식의 중요한 장점이라면, 어떤 식이요법에도 추가로 장착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운동도 마찬가지다.


언제 먹느냐, 그리고 무엇을 먹느냐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당장 그만둬야 하는 식사법 한 가지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불도 끄지 않고 뒷정리를 시작할 수는 없는 법이다.


(c) Unsplash - Akshar Dave


탄수화물은 독이다


식이요법 관련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딱 하나뿐이다. 희대의 사기꾼 앤설 키스가 주장했던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이요법이다. 미국 정부가 검증조차 없이 앤설 키스의 주장을 정부 시책으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당뇨병이 유행병처럼 번졌고, 온갖 성인병이 창궐했다. 이와 관련한 어이없는 흑역사에 관해서는, <비만 코드>나 <지방의 역설>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탄수화물 섭취량은 0이다. 단백질과 지방은 인체를 구성한다. 자가포식에 의한 단백질 재활용이 제일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지만, 재활용률이 100%일 수는 없다. 각종 대사에 관여하여 소모되는 아미노산과 지방질 손실분도 먹는 것을 통해 보충해 줘야 한다. 그래서 생존에 있어 단백질과 지방 섭취는 필요조건이다. 


반면, 탄수화물은 먹지 않아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탄수화물은 다만 편리한 에너지원일 뿐이다. 우리 몸의 설계에 따르면, 지방과 단백질은 필수재, 탄수화물은 사치재다.


경제학적으로 사치재는 공급이 폭발하면 더는 사치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는 고전경제학이 가정한 이콘(Econ)이 아니고 그냥 감정과 욕망에 휘둘리는 동물이다. 만 년 전, 이기적 유전자는 사치재이자 고순도 에너지 덩어리인 탄수화물을 보면 만사 제치고 달려들어 먹어 치우도록, 그래서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에 대비해 지방으로 저장하라고, 우리 몸을 코딩했다. 


얘는 정상, 우리는 비정상 (c) Unsplash - Ankith Choudharyd


세상이 바뀐 지금, 탄수화물은 가장 저렴한 음식이지만 우리 몸속 깊이 각인된 코드는 그대로다. 시대가 변해 탄수화물은 열등재가 되었지만, 유전자를 거스르지 못하는 우리 몸은 이 싸구려 음식을 여전히 사치재로 인식한다. 빈곤과 비만이 손잡고 가는 제일 큰 이유가 바로 이거다.


앤설 키스가 만든 탄수화물 위주의 영양소 피라미드는 아직도 건재하다. 내 루틴의 많은 것을 책임져 주는 고마운 앱, <삼성 헬스>도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비율을 55:25:20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비율에는 아무런 실험적, 과학적 근거가 없다. 탄수화물은 철인 3종 경기에나 필요한 것이다.


앤설 키스가 어떤 거짓말과 로비로 자신만의 피라미드를 세웠는지는 수많은 책들이 지적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다. 앤설 키스의 주장을 가장 체계적으로 논박한 책으로는 니나 타이숄스의 <지방의 역설>을 추천한다. 재미를 생각한다면 제이슨 펑의 책들이 접근성이 더 좋다. <비만 코드>, <독소를 비우는 몸>, <당뇨 코드> 어떤 책을 읽어도 좋다. 인슐린 저항성을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간헐적 단식을 유행시킨 사람이 쓴 책인 만큼, 설득력도 뛰어나고 재미도 있다.


(c) 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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