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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26. 2023

과일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2) 포도당, 과당, 탄수화물

강대봉은 과일을 많이 먹어 살이 쪘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내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이야기하면 귀를 기울여주는 편이다. 그런데 딱 한 가지만은 그렇지 않았다. 계속해서 헛소리하지 말라는 눈빛을 받고 나니, 그 이야기는 잘 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과일이 몸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다. 과일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찔 수 있다. 그러니까, 만화 <키드갱>에서 강대봉이 했던 말은 개그가 아니라 사실이다. 긴 얘기를 하겠지만, 우선 짧은 요약을 말하자면, 과당은 몸속에 들어가는 즉시 간으로 직행하여 지방으로 변환되어 축적된다.


해당 장면을 찾을 수 없어서 명장면 중 하나로 대체 (c) 신영우


인체의 모든 세포가 포도당을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어떤 세포도 과당을 사용할 수는 없다. 오직 간만이 과당을 대사시킨다. (제이슨 펑, <당뇨 코드> 135쪽)


설탕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대개 인정할 것이다. 설탕, 즉 자당은 포도당과 과당이 1:1로 결합한 이당류다. 포도당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하면 대개 수긍할 것이다. 그런데 설탕의 다른 반쪽인 과당에 대해서는 왜 너그러운가? 


혈당은 혈액 내 포도당 함량을 측정한다. 과당은 측정 대상이 아니다. 설탕의 절반은 포도당이므로, 같은 양을 먹었을 때 설탕은 포도당에 비해 혈당에 주는 부담이 반 정도가 된다. 순수 과당은 포도당이 전혀 없으므로 이론상 혈당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과당"은 옥수수를 발효해 만든 시럽으로, 통상 "고과당 시럽"이라 불리며 과당 55%, 포도당 45%의 혼합물이다. 같은 양을 먹었을 경우, 설탕보다 포도당 함량이 5% 포인트 더 적으므로, 혈당에 대한 영향도 더 적다. 그래서 과당의 혈당지수가 설탕보다 낮은 것이다. 그뿐이다. 단지 혈당지수가 낮다고 더 좋은 물질이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지적하듯, 과당은 포도당에 비해 몸에 훨씬 더 악영향을 끼친다.


포도당은 인슐린으로 조절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다. 과당은 그렇지 않다. 과당 대사에 직접 관여하는 호르몬은 없다. 과당은 그 상태로 에너지 대사에 사용할 수 없다. 과당은 간에서 변환한 다음에야 에너지로 활용될 수 있다. 열량 섭취가 과한 현대인이 그럴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과당은 먹는 대로 간에서 지방으로 변환되어 쌓인다. 이것이 지방간이다. 한때 의사들은 술을 먹지 않았다고 말하는 지방간 환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과당으로 인한 지방간, 즉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알코올성 지방간보다 훨씬 더 흔하다.


포도당도 물론 지방간을 만든다. 그러나 포도당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세포가 사용하는 연료다. 그래서 일단 사용되고 남는 양이 글리코겐이나 중성지방으로 변환되어 저장된다. 반면, 과당은 먹는 즉시 간으로 직행하여 지방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에너지원이 모자라는 비상사태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대체로 끝나지 않는다. 비상사태는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는다.


과일을 쌓아 놓고 먹는 상황을, 유전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먹을까 안 먹을까 고민된다면 먹지 말자


물론 과일에는 포도당과 과당 외에도 섬유질, 비타민, 미네랄 등 좋은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다. 과일을 먹는 것은 액상과당을 마시는 행위보다 분명히 낫다. 그러나 과일 섭취는 절대 다다익선이 아니다. 세상에 다다익선인 식품은 없다. 적은 양으로 약이 되는 것들도 많이 먹다 보면 독이 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과일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은 무엇을 얼마나 먹을 것이냐 하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초코바 대신 과일을 먹는다면 건강에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초코바를 먹고 또 과일을 먹는 것은 절대 좋지 않다. 과일 섭취가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과일을 대체로 후식 삼아 먹기 때문이다. 밥 대신 사과를 먹는다면 나쁠 게 별로 없다. 그러나 식사 후에 먹는 사과는 뭔가 더 나쁜 음식을 대신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쁜 선택이다. 


뭔가를 먹어서 건강을 증진시키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몸속에 넣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도넛을 먹고 나서 "몸에 좋은 음식"인 과일을 먹어 도넛으로 입은 대미지를 회복하겠다는 상상은 그야말로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내가 즐겨 먹는 세척 사과는 정말 작다. 한 번에 몇 개라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작다. 그러나 무게를 재 보면 대체로 200그램 전후다. 탄수화물 27.6그램을 포함하며, 104칼로리나 된다. 탄수화물 중 식이섬유는 4.8그램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 당질이다.


104칼로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라면은 대체로 500칼로리 정도 되고, 내가 애정하는 초코 과자는 겨우 3개가 들어 있는 한 봉지에 250칼로리다. 그러나 이 초코 과자조차도 당질은 31그램 정도밖에 포함하고 있지 않다. 200그램짜리 사과와 50그램짜리 과자를 비교하는 것이 부당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과의 대부분은 물이다. 포만감 대비 탄수화물 섭취라는 관점에서 사과는 절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밥 역시 대단히 좋지 않다. 당질이라는 표현은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으로 순 탄수화물, 즉 탄수화물에서 섬유질을 제외한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법은 식품류 영양성분 표기에 탄수화물과 별도로 당류, 즉 단맛이 나는 탄수화물(대개 단당류와 이당류)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보다는 더 넓은 범위의 개념인 당질의 양을 표시하도록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무네타 테츠오는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다.


쌀이 목구멍 안쪽을 지나면 설탕과 같다. (무네타 테츠오, <지방의 진실, 케톤의 발견>, 표지)



탄수화물을 아예 안 먹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음식에 미량이라도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탄수화물을 끊는다는 얘기는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끊는 것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우리가 곡류를 길들인 것이 아니라, 곡류 식물들이 우리를 길들였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마음속 제일 깊은 곳에 새겨야 하는 사실은 바로 탄수화물의 유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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