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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27. 2023

이미 달리는 중인데 왜 때려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3) 인슐린 저항성

인슐린 저항성


제이슨 펑의 <비만 코드>는 비만의 원인을 찾아가는 탐정물이다. 섭취 열량, 운동, 유전자, 그리고 지방을 먹으면 그게 그대로 지방으로 쌓일 거라는 유아틱한 상상까지, 모든 용의자들을 조사한다.


범인은 인슐린 저항성이다. 스테로이드 제제가 부신을 망가뜨리고, 마약이 도파민 중추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처럼, 끝없이 몰아치는 탄수화물 폭탄은 우리 몸의 인슐린 시스템을 파괴한다. 그렇게 망가지는 인슐린 체계는 인슐린 저항성을 통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인슐린 체계가 백기 투항한 다음에는 통제 범위를 벗어난 혈당 수치를 통해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 의학은 바로 이 통제를 벗어난 혈당 수치를 근거로 당뇨병을 진단한다. 그러나 이런 진단이 내려지는 시점은 이미 인슐린 체계가 철저히 파괴된 다음이다. 폭탄이 떨어진 다음에 폭탄 조심하라고 말하는 격이다. (하긴, 거기에 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낫다.)


폐허가 된 다음에야 폭격 당했다는 사실을 알다 (c) Unsplash - Daniel Lincoln


인슐린의 본 모습


인슐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인슐린은 높은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이다. 우리 몸에는 낮은 혈당이라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호르몬이 여럿 존재한다. 코르티솔, 에피네프린, 글루카곤 등등.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비상 상황이라면 몸의 일부를 분해해서라도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 한겨울 칼바람에 추워 죽겠으니 나무로 된 외벽을 뜯어서라도 불을 지펴 일단 집 안 온도를 올리겠다는 식의 디자인이지만, 무식하다기보다는 과감하다고 칭찬해 주자. (그리고 벽보다는 책상과 의자를 먼저 뜯는 정도의 상식은 갖추고 있다. 심근이나 폐세포보다는 팔다리 근육부터 녹여 쓰니까 말이다.)


높은 혈당에 대처하는 호르몬은 인슐린 하나뿐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 환경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다. 주위에 먹을 것이 넘쳐나게 된 것은 아직 200년도 되지 않은 최근의 일이다. 게다가, 고혈당은 서서히 우리를 말려 죽일 뿐이지만, 저혈당은 즉사를 초래할 수 있는 긴급상황이다. 쯔진천의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동트기 힘든 긴 밤>에는 인슐린 주사로 저혈당 쇼크를 일으켜 사람을 죽이는 악당이 나온다.


우리가 단맛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먹을 것이 부족한 원시 환경에 살던 우리 조상들에게 꿀이나 과일은 횡재나 다름없었다. 먹을 수 있는 만큼 먹고, 남는 것은 글리코겐과 지방으로 변환해서 저장한다. 언제 또 먹게 될지 모르니 일단 저장해 두는 것이다. 대단히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환경에서는 말이다.


인슐린은 바로 이런 횡재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진 호르몬이다. 탄수화물을 만나는 횡재를 했으니,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어 당장 쓰기도 하고 나중에 쓰기 위해 비축도 해두는 시스템이다.


탄수화물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난 다음, 몸 안에는 탄수화물의 최종 대사 형태인 포도당이 넘친다. 모든 생물의 핵심은 엔트로피에 거역하는 항상성이다. 평소보다 훨씬 높은 농도로 존재하는 포도당이 몸에 좋을 리가 없다. 여분의 포도당은 시스템에서 제거돼야 한다. 그런데 여분의 포도당을 소변으로 내보내는 대신, 우리 몸은 그것을 체세포로 거둬들여 글리코겐과 지방으로 바꾸어 저장한다.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다. 이 일을 담당하는 호르몬이 바로 인슐린이다.


과당에 대해서 포도당과 전혀 다른 대사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포도당은 복합 탄수화물을 분해해서 얻을 수도 있지만, 과당은 과일이나 꿀이 아닌 다음에야 좀처럼 만나기 힘든 보물이다. 따라서 당장 에너지로 소비하는 대신 간으로 직행시켜 나중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변환, 저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 시스템은 정제 설탕이나 액상과당이 넘쳐 나는 세상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늑대 소년 인슐린, 그리고 번아웃


인슐린 저항성이란 바로 이 효율적인 시스템이 고장 난 상황을 의미한다. 현대인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먹는다. 공복을 절대 참지 않는 것이 현대인의 덕목이다. 게다가 앤설 키스 박사 덕분에 공복을 채울 때는 탄수화물이 으뜸이라는 지혜도 터득했다. 


탄수화물을 포식하는 운빨 크리의 상황이 매일 벌어진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포도당에 대응하여 인슐린 명령이 계속해서 발령된다. 아주 가끔 일어나야 하는 비상 상황이 언제나 벌어진다. 이번 주만 바짝 긴장해서 일하자고 하더니, 그런 일이 일상이 된다. 이제 "이번 주만 바짝 긴장해서" 일하자는 말은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인슐린의 명령에 몸이 저항하는 것이다.


그토록 열심히 일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혈당을 세포로 옮겼는데, 혈액 안에 아직도 포도당이 가득하다. 게다가 세포 쪽에도 이제 저장 공간이 부족하다. 포도당을 지방으로 바꿔 쌓고 또 쌓았는데, 계속해서 밀려오는 포도당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쯤 되면 주마가편이 아니라 시벌로마(施罰勞馬), 즉 일하는 말에 벌을 시행하는 꼴이다. 아무리 일해도 결과가 없으니 의욕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상사(인슐린)가 아무리 닦달해도, 번아웃에 지친 직원(세포)은 일하지 않는다. 인슐린 저항성이다.


이미 달리고 있다고! (c) Unsplash - Magdalena Smolnicka


그래서 비만은 인슐린 저항의 결과인 동시에 다시 원인이 된다. 악순환이다. 핏속에 넘쳐나는 당을 지방으로 바꿔 저장하려는데, 저장 공간도 더는 없다. 혈당이 높아지니 인슐린은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소리 지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한두 번 울려야 비상벨이지, 하루 종일 울리면 그건 그냥 백색 소음이다. 허구한 날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질러대니,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 제이슨 펑의 비유를 빌리자면, 이미 빵빵한 풍선에 공기를 더 불어 넣으려는 꼴이다. 인슐린은 무력함에 지쳐간다.


당뇨병은 인슐린 체계가 무너지고 난 다음에 어떤 결말이 따라오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인슐린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탄수화물 섭취 후 혈당은 급격하게 올라간다. 인슐린 신호에 따라 혈액 속 여분의 포도당을 체세포가 흡수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혈당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인체는 여분의 포도당을 글리코겐이라는 다당류로 저장하여 급할 때 꺼내 쓰게 되어 있다. 포도당을 지방으로 바꿔 저장하면 꺼내 쓸 때 더 복잡한 화학 처리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단기적 용도로는 훨씬 간단하게 끊어 쓸 수 있는 다당류, 즉 글리코겐으로 저장한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식사 후 혈당이 높을 때 여분의 포도당을 수거하여 글리코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후에는 혈액 속에 포도당이 넘쳐흐르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포도당이 부족해서 몸이 비명을 지른다. 저혈당 쇼크다.


요약하면, 인슐린 작용으로 평탄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혈당 수준이 식사에 따라 널뛰기를 하는 상태가 바로 당뇨병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인슐린 체계가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망가졌음을 의미한다. 이 상태에서 인슐린 체계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일은 훨씬 어렵다. 이렇게 되기 전에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해야 한다.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쉬지 못하고 일만 하다가 망가진 인슐린 체계를 쉬게 해주는 것이다. 즉 몸속으로 탄수화물을 계속 투하하는 일을 잠시라도 멈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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