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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12. 2023

지방, 먹어도 될까?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9) 지방에 대해 알자

다이어터에게 지방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 이유는, 그램당 칼로리가 9나 되기 때문이다. 같은 무게의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을 먹을 때의 2배가 넘는 칼로리다. 그러나 체중은 칼로리와 별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칼로리 측정 대신 탄수화물 섭취량을 측정하자. 지방이 꺼려지는 두 번째 이유는,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맛 있는 것은 나쁜 것 아니었던가? 지방에 대해 알아보자.



지방이란 무엇인가


지방 또는 지질(lipid)이란 지방산의 복합체다. (지질은 정확하게 말하면 지방, 포스포리피드, 스테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지만, 흔히 지방이라는 단어와 혼용된다.) 탄수화물이 당의 복합체이고, 단백질이 아미노산의 복합체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기름(oil)은 지방(fat)과 다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쓰는 말들은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옛날에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그래서 본질보다 외양에 집중한 단어들이 흔하다. 지방은 상온에서 고체이고 기름은 상온에서 액체다. 그래서 다른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지방은 그대로 몸에 쌓일 것 같고, 기름은 자연스럽게 흘러 나와 몸에 쌓이지 않을 것 같지만, 그건 이미지일 뿐이다.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물질이다. 얼음과 물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둘 다 H2O다.


지방의 가장 흔한 형태는 중성지방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트라이글리세라이드(triglyceride)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방산(fatty acid) 분자 세 개가 글리세롤 분자 하나를 중심으로 엮여 있는 형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지방 조직은 바로 이 트라이글리세라이드로 되어 있으며, 우리가 음식으로 섭취하는 지방의 대부분도 트라이글리세라이드다.


그냥 보기만 해도 지방이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c) Unsplash의Blake Carpenter


지방의 종류


지방산의 종류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 너무 종류가 많기 때문에, 탄소 사슬의 길이에 따라 세 종류의 그룹으로 묶어서 퉁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 세 그룹은 각각 단쇄, 중쇄, 장쇄 지방산이라 불린다.


지방산을 분류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탄소 사슬에 이중결합이 있는지 여부에 따른다. 흔히 들어본 이름들이다. 바로, 포화지방산과 불포화지방산이다. 불포화 지방산은 이중결합의 수에 따라 단일불포화지방산과 다가불포화지방산으로 나누기도 한다.


흔히 포화지방은 몸에 해롭다고 말한다. 그런데 명제의 형식이 아주 재미있다. 정상적인 명제라면, 근거가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포화지방이 몸에 해롭다는 명제는 칸트의 정언명령이라도 되는지 아무런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다. 굳이 논리가 있다고 생각해주자면, 포화지방이라는 존재 자체가 악이라는 논리다.


아주 가끔, 포화지방이 몸에 안 좋은 이유는 그것이 그대로 혈관 벽에 쌓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듣기도 한다. 아주 재미있는 농담이다. 닭 다리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 몸 어딘가에 갑자기 닭 다리가 솟아나지는 않는다. 탄수화물이든 단백질이든 지방이든, 우리 몸은 영양소를 분해한 다음에 흡수한다. 분자 크기가 충분히 작아져야 소장 융모를 통과할 수 있다. (분해가 덜 된 덩어리가 소장 융모 사이의 빈틈을 파고 드는 상황이 요즘 만병의 근원으로 악명을 떨치는 장누수증후군이다.) 포화지방을 먹으면 그게 혈관 벽에 쌓인다는 말은, 사과를 먹으면 사과가 혈관 벽에 쌓인다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재기발랄한 농담이 아닐 수 없다.


사진: Unsplash의Sorin Gheorghita


불포화지방산은 불안정하다


불포화지방산은 탄소 이중 결합으로 인해 분자 구조가 불안정하다. 그래서 상온에서 고체가 아닌 액체 형태다. 이중 결합이라고 하니까 왠지 강하고 안정적인 결합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비유를 하자면, 손을 뻗어 뭔가를 잡아야 안정적인데,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으니 손끼리 서로 맞잡은 것이 이중결합이다. 버스가 급정거를 한다면 손으로 뭔가를 붙잡고 있던 사람과 자기 손을 맞잡고 있던 사람 중에 누가 넘어질까 생각해보자.


이렇게 불안정한 구조는 자유 라디칼, 즉 활성 산소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뭘 잡아야 하는 손이 서로를 맞잡고 있는 상황이라, 뭐든지 잡을 수 있으면 잡는다. 그렇게 허공을 휘젓는 손이 잘 잡는 대상이 산소다.


불포화지방은 몸에 들어오기도 전에 활성 산소를 만들기도 한다. 이 산화 현상을 보통 산패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른다. 네슬레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식물성 기름은 1차 산패가 진행되어도 맛과 향의 변화가 거의 없다고 한다. 불쾌한 맛과 향이 발생하는 것은 2차 산화물부터다. 1차 산패가 진행된 기름이 다른 물질과 섞이는 경우다. 이렇게 다른 물질과 섞이는 일을 우리는 보통 요리라고 부른다.


가열은 산화를 일으킨다. 즉 요리유를 가열하는 것은 산패를 불러온다. 그렇다고 요리유를 안 쓸 수는 없다. 기름의 산패를 최소화하려면 빛과 열, 그리고 공기에 대한 노출을 줄여야 한다. 적은 양을 어두운색의 용기에 담아 파는 기름을 사서, 웬만하면 가열하지 않고 먹는 것이 최선이다.


가열로 인한 산패, 그것은 정제유가 해로운 이유 중 첫 번째다. 가열은 무조건 산패를 일으키는데, 정제유는 가열해서 만드는 물질이다. 


포도 씨에서 기름을 짜낼 자신이 있는가? 아보카도나 올리브는 어떤가? 아보카도나 올리브는 손으로 쥐기만 해도 기름이 배어 나온다. 냉압착, 즉 물리적 힘으로 쥐어짜서 기름을 만들 수 있다. 포도 씨나 콩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가열, 추출, 분리, 정제 등 화학 공정을 동원해야 기름을 추출할 수 있다. 현대 공학이 등장하기 전에는 세상에 없던 기름이다. 


자연적인 것이 좋다는 말은 잘못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식용유에 대해서는 진리 그 자체다. 공장이 아니라 집에서 짤 수 있는 기름, 그래서 옛날부터 오랫동안 조상님들도 먹어온 기름을 고르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와 아보카도유가 대표적이다. (버진 등급이 아닌 '퓨어' 등급의 올리브유는 정제유다. '퓨어'라는 미사여구에 속지 말자.)


사진: Unsplash의Roberta Sorge


지방의 족보는 복잡하다


다음으로 알아야 할 것은 탄소 사슬 길이다. 14개 이상의 탄소 사슬을 가진 지방산을 장쇄 지방산이라 부르고, 6개에서 12개까지는 중쇄 지방산, 6개 미만은 단쇄 지방산이라 부른다. 방탄 커피에 들어가는 MCT 오일이 바로 중쇄 지방산이다. Medium-Chain Triglyceride의 약자다.


지방산의 종류는 탄소 사슬의 개수와 포화도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부티르산은 탄소 사슬 개수가 4개이며 탄소 간 이중결합이 없는, 즉 포화된 상태의 지방산이기 때문에 단쇄 포화지방산에 속한다. 올리브기름에 많이 들어 있는 올레산의 경우, 18개의 탄소 사슬과 1개의 탄소 간 이중결합이 존재하므로 장쇄 단일불포화지방산에 속한다. (탄소 사슬 개수와 이중결합 개수로 지방산을 표기하기도 한다. 부티르산은 C4:0, 라우르산은 C12:0, 올레산은 C18:1이 된다.)


출처: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1-Common-Saturated-and-Unsaturated-Fatty-Acids_tbl2_235094888 


포화도가 높을수록, 탄소 사슬 길이가 길수록 지방산의 형태는 안정적이다. 즉, 원래의 형태를 유지할 확률이 높아진다. 돼지기름이 상온에서 고체인 반면, 카놀라유가 액체인 이유다. 코코넛 오일은 녹는점이 섭씨 25도 정도라서, 상온에서 때로는 고체로, 때로는 액체로 존재하는데, 포화지방산이지만 중쇄 지방산이 대부분이라서 그렇다.


모든 지방은 혼합물이다. 예컨대 돼지기름(라드)은 포화지방의 대표주자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47%를 이루는 단일불포화지방의 비중이 가장 높다. 포화지방은 41%, 다가불포화지방은 12% 함유하고 있다.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카놀라유와 올리브유도 각각 6%, 14%는 포화지방이다.


<토막 상식 - 단쇄지방산을 먹고 싶다면 버터 대신 섬유질을 먹자>

단쇄지방산은 대개 장내 미생물이 섬유질을 소화해 만들어 낸다. 단쇄지방산의 하나인 부티르산은 버터에 풍부하게 들어 있으나, 그 양은 장내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양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따라서 단쇄지방산을 직접 먹는 것보다는 장내미생물이 단쇄지방산을 잘 만들도록 섬유질을 먹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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