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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13. 2023

트랜스 지방 피하기 게임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10) 트랜스지방

트랜스지방이란 무엇인가


트랜스지방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도 정착한 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초창기에 인공 트랜스지방은 건강한 지방으로 광고되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사실, 트랜스 지방은 자연에도 존재한다. 대략 5% 정도의 지방이 트랜스지방이다. 트랜스 지방의 '트랜스'는 변화시켰다는, 즉 트랜스포메이션을 거쳤다는 뜻이 아니라, 시스(cis)와 트랜스(trans) 중 트랜스형의 이성질체를 의미한다. 


cis와 trans는 이성질체의 3차원 구조에 관한 이야기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지방은 대부분이 cis형 이성질체로 이중결합 한쪽으로 수소가 정렬한다. 트랜스지방은 수소가 반대편으로 붙은 것이다.


cis와 trans를 쉽게 정파, 사파로 번역하면 어떨까 한다. 정파, 사파는 마치 선악을 따지는 명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다수파가 소수파를 매도하는 이름이다. 어쨌든, 자연 상태에서는 cis 지방이 압도적 다수파이니, 그렇게 불러도 아귀가 맞는다. 게다가, 사파 지방이라 부르면 안 좋은 느낌이 그냥 따라붙으니 설명하기에도 좋지 않을까? (무협지 주인공 중에 사파 고수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세련되어 보일지도 모른다.)


자연에 존재하는 트랜스지방은 몸에 해롭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아직 확립된 이론은 아니다. 그러나 인공 트랜스지방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확립된 사실이다. 인공 트랜스지방은 액체 상태의 지방에 수소를 욱여넣어 강제로 안정화시킨, 즉, 고체가 아닌 것을 억지로 굳혀 고체로 만든 지방이다.


사진: Unsplash의Tabita Princesia


트랜스지방 피하기 게임 


트랜스 지방의 해악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따로 말하지 않겠다. 다만, 인공 트랜스지방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아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기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서다.


트랜스지방뿐 아니라, 많은 식품첨가물은 아주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된다. 이유는 뻔하다. 식품회사들은 몸에 안 좋다고 널리 알려진 물질의 이름을 바꾸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으니, 우리가 알아서 피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현행법에 따르면 0.5g 미만으로 함유된 물질은 0이라고 표시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건강기능식품의 표시 기준> 제6조 제6항 가호) 트랜스 지방의 경우는 0.2그램 이하인 경우에만 0으로 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역시 0이 아닌 것을 0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집에 있는 과자 포장지를 한번 살펴보자. 대개 0이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절대 0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한 표기법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0에 가까운 0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기 위해 철학적 사색까지 동원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왠지 서글퍼진다.


게다가 0.2그램의 기준은 1회 제공량에 따라 정해진다. 1회 제공량이 0.1그램인 과자가 존재한다면, 전체가 트랜스지방이라고 해도 트랜스지방 함량을 0으로 표기할 수 있다는 궤변이 성립한다. 억지를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0이 0인지 의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1회 제공량을 줄이면 트랜스지방 함량이 0이라는 표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가 좋아하는 초코 과자는 3개 들이 한 봉지가 1회 제공량이라 트랜스지방 0.5그램 미만이라 적혀 있다. 이 과자를 1개씩 한 봉지에 포장해서 1회 제공량이 1개로 줄어들면, 1회 제공량당 트랜스지방은 0.2그램 미만으로 떨어진다. 0으로 표시할 수 있다.


초콜릿 없이는 못 산다 (c) Unsplash의Maria Georgieva


사전주의 원칙


참고로 WHO가 제시하는 트랜스지방 섭취 기준은 섭취 열량 전체의 1% 이하로 제한하라는 것이다. 미국 심장협회도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협회의 과거 행각을 생각해 볼 때, 귓등으로 흘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WHO 기준조차 권고 사항일 뿐이며, 공식 입장은 안전 섭취 기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GMO나 일본산 원전 오염수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사전주의 원칙을 제안하고 싶다. 사전주의 원칙이란 환경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지만, 전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식이다. 위험이 입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위험할 수 있는 것은 조심하자는 얘기다. 위험이 입증되지 않았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퍼먹자는 논리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트랜스지방에 대해 WHO가 안전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유는 뭘까? 트랜스지방 섭취로 죽은 사람이 없어서라는 단순명쾌한 논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트랜스지방 섭취로 죽은 사람이 없다는 얘기는 암으로 죽은 사람이 없다는 얘기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암 자체가 죽음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암이 퍼져나가면서 다발성 장기부전이나 폐렴, 심정지 따위의 원인으로 죽는 것이다. 물에 빠졌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물 때문에 숨을 못 쉬어 죽는 것이다. 사약도 아닌 트랜스지방을 먹고 즉사하는 사람은 없다. 오랜 시간에 걸쳐 건강이 악화되면서 당뇨병 합병증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거친 다음 심정지나 폐렴으로 죽을 것이다. 그런 죽음을 트랜스지방死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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