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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18. 2023

이름만으로도 무서운, 콜레스테롤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11) 콜레스테롤과 지단백질

총콜레스테롤 256!


혈액 검사 결과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256이 나왔다. 볼드체로도 모자라 붉은색으로 인쇄된 이 숫자, 걱정해야 하는 걸까?


콜레스테롤이 무서워 달걀을 먹지 못한다는 말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아질산나트륨이나 카르기난이 들어 있는 가공식품은 잘만 먹으면서, 우리 주변에서 더는 보기 힘든 자연식품에 대해 이게 도대체 무슨 학대인가 싶다. 


오랫동안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았던 콜레스테롤의 팔자가 요즘 조금씩 피는 것 같다. 심혈관계 환자의 혈관 벽에 이 물질이 잔뜩 끼어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것이 나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화재 현장에 잔뜩 와 있는 소방관들을 전부 방화범으로 모는 격이다. 


화재 현장에 소방관이 있고, 범죄 현장에 경찰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상관 관계는 물론 인과 관계도 명백하다. 그런데 이 현상을 보고 인과 관계를 거꾸로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을 생각할 수 있다. 소방관과 경찰관의 수를 줄여 화재와 범죄를 줄여보자는 천재적인 발상이다.


콜레스테롤이 그동안 당했던 억울한 사정이 거의 같은 종류다. 손상된 혈관 벽에서는 거의 언제나 콜레스테롤이 발견된다. 워낙 다재다능한 물질인 콜레스테롤은 손상된 혈관 벽을 긴급 수선할 때도 사용된다. 살인 현장마다 나타나는 명탐정을 살인범으로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경찰에 살인범을 신고하기 전에 한 번쯤 인과 관계가 혹시 거꾸로는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사진: Unsplash의Craig  Whitehead


이런 과오가 있어서인지, 알츠하이머병과 뇌 속 알루미늄 축적 사이의 관계에 대해 현재 의학계는 말을 아끼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뇌 속에서 다량의 알루미늄이 발견되었지만, 그것이 병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은 단호함을 좋아한다. 말을 아끼는 신중한 과학자는 주목받지 못하고, 앤설 키스처럼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바보는 큰소리를 치면서 무대 중앙을 차지한다.) 



콜레스테롤의 정체와 지단백질


콜레스테롤은 지방(스테롤)의 일종인데, 우리 몸의 필수 물질이다. 세포막을 구성하는 물질이니 말 다 했다. 게다가 많은 종류의 호르몬을 만드는 재료다. 꼭 필요한 물질이라서 먹지 않아도 우리 몸에서 자체적으로 합성한다. 체중의 겨우 4%를 차지하는 뇌가 전체 콜레스테롤의 30%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중요한 물질이다.


콜레스테롤을 몸 구석구석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HDL(고밀도 지단백질), LDL(저밀도 지단백질), VLDL(초저밀도 지단백질) 등 지단백질이다. 


혈액 검사에 수치가 나오는, 넓은 의미의 LDL은 LDL과 VLDL로 다시 나뉘는데, LDL은 콜레스테롤 운반이 주 업무인 반면, VLDL은 중성지방 운반이 주 업무라는 점이 다르다. 간에서 만들어진 VLDL은 근육으로 중성지방을 운반한다. 중성지방을 내려놓은 VLDL은 LDL이 된다. LDL이 손상되면 sdLDL(저밀도 LDL이라니, LDL이 이미 저밀도 지단백질인데, 낙숫물이 떨어지는 듯한 이 작명은 대체...)이 되는데, 당연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LDL에게 태생적인 잘못이 있다면, 손상되어 sdLDL이 될 수 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LDL을 꾸짖는 것은 비행 청소년이 될 수 있으니 모든 아이들을 꾸짖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손상된 LDL과 산화된 LDL은 면역 체계의 공격 대상이 된다. 염증을 일으킨다는 얘기다.


사진: Unsplash의Adriana Elias


슈퍼스타 HDL


HDL은 대단히 흥미롭다. LDL 수치를 낮추는 약은 여러 가지가 개발되었지만, HDL을 효과적으로 높이는 물질은 아직까지도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HDL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확실히 알려진 요인은 딱 하나인데, 운동이다. 


HDL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을 한다. HDL은 기본적으로 콜레스테롤이 넘치는 분자에서 콜레스테롤을 덜어낼 수 있는데, 이 분자들에는 LDL과 VLDL도 포함된다. 즉, HDL은 LDL과 VLDL이 운반하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의 양을 조절할 수 있고, 무거운 짐을 지고 비행 청소년이 되기 직전까지 갔던 LDL과 VLDL을 도와준다. 짐을 덜어낸 이들은 성질을 죽이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온다. 


HDL은 상하차뿐 아니라 LDL, VLDL과 마찬가지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택배도 잘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택배 방향은 반대다.)


콜레스테롤 관련 검사에서 유일하게 높을수록 좋다고 알려진 수치가 HDL이다. HDL 수치가 높다는 것은, HDL에 의해 옮겨지는 콜레스테롤의 양이 많다는 얘기다. HDL 수치라고 우리가 보통 말하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HDL-c다. 


HDL 자체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HDL에 의해 운반되는 콜레스테롤의 양을 측정한다. 콜레스테롤 측정을 위한 혈액 검사 방식이 그렇다. 혈액 내에 있는 조직들을 뿌셔뿌셔 한 다음에 그 양을 측정하는 것이므로, 콜레스테롤 분자에 붙은 분자 조각을 보고 그게 HDL이 운반하던 것인지 LDL이 운반하던 것인지 알아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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