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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19. 2023

검강검진 결과 독해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12) 건강검진 숫자 읽기

건강검진 결과지 읽기


건강검진 결과지에는 딱 4개의 수치만 나온다. 총콜레스테롤, 중성지방, HDL, LDL이다. 친절한 설명도 곁들여져 있다. 총콜레스테롤은 200 미만, 중성지방은 150 미만, LDL은 130 미만, HDL은 남자 40, 여자 50 이상이 정상이라고 한다.


잘 살펴보면, LDL에는 다른 수치와 다르게 <계산>이란 말이 붙어 있다.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에서 신사구체 여과율을 계산(추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LDL 수치 역시 대강 어림잡은 값이라는 사실을 실토하는 두 글자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공식은 LDL = 총콜레스테롤 - (HDL + 중성지방/5)다. 중성지방 수치를 5로 나누는 이유는, VLDL이 그 정도 있을 것이라 추정하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VLDL 한 분자가 중성지방 분자를 평균 5개 정도 운반하기 때문이다.


https://www.healthcentral.com/condition/high-cholesterol/how-to-calculate-ldl


HDL은 높을수록 좋고, 나머지 숫자는 낮을수록 좋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HDL 파편이 붙은 콜레스테롤이 많아야 HDL 수치가 올라간다. HDL이 높은데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낮게 유지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사진: Unsplash의Jair Lázaro


행간을 읽어라


맥락을 무시하고 수치 하나하나만을 보고 판단하면 엉뚱한 결과에 다다른다. 그래서 프레이밍햄 심장 연구라는 장기간 대규모 코호트 연구를 진행했던 윌리엄 카스텔리는 1992년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LDL 수치가 300mg/dL 이상으로 매우 높지 않은 한, 이 수치 하나로는 개인의 심혈관계 질병 위험을 예측하는 데 전혀 가치가 없다. (W. P. 카스텔리, "Lipids, Risk Factors and Ischaemic Heart Diseases," <저탄고지 바이블>에서 재인용)


프레이밍햄 심장 연구는 매사추세츠주 프레이밍햄 주민 5,000여 명의 건강과 생활 습관을 1948년부터 추적해 온 코호트 연구다. 연구 책임자 윌리엄 카스텔리는 LDL 수치가 이상하게 높은 경우가 아니라면, LDL 수치 자체만으로는 관상동맥질환(CHD) 위험을 예측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우리들은 단순한 메시지를 좋아하며, 언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언론은 LDL을 악당으로 포장했고, 우리는 달걀귀신도 아니고 달걀노른자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위 논문에서, 카스텔리는 훨씬 더 중요한 수치들, 즉 비율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총콜레스테롤/HDL 비율이 총콜레스테롤, LDL, HDL, 중성지방 등 개별적 수치보다 관상동맥 심장 질환 위험을 훨씬 더 잘 예측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렇게 연구 결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겨우 나누기에 불과한 계산을 해주지 않는 이유는 뭘까? 치매 예방 차원에서 전 국민에게 암산 훈련을 시키려는 것일까? 


우리는 두 개의 수치에 집중해야 한다. 총콜레스테롤/HDL 비율과 중성지방/HDL 비율이다. 카스텔리는 총콜레스테롤/HDL 비율을 칭찬했지만, 중성지방/HDL 비율이 더 나은 예측력을 가지고 있다는 후속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었으니 나눗셈하는 김에 한 번 더 해서 나쁠 것 없어 보인다.


사진: Unsplash의Recha Oktaviani


숫자 자체가 아니라 비율을 보라


중성지방/HDL 수치는 2 미만인 것이 권고된다. 총콜레스테롤/HDL의 경우 4.5 미만이 정상 범위다. 단지 나눗셈만 해도 되는데 이들 숫자가 건강검진표에 표시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저탄고지 바이블>의 저자들은 이 기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무래도 제약산업과 관련한 이야기다. 


LDL을 낮추는 약물들은 많이 개발되어 있다. 반면, HDL을 높이는 약물 개발에 성공한 제약회사는 아직 없다. 저 두 개의 수치를 강조하면, 사람들은 HDL을 높이는 방법에 관심을 가질 터인데, 그런 약물이 없으니 수익을 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 반면, 사람들이 LDL 수치 자체가 위험하다고 믿는다면 장사하기가 훨씬 편해진다. 스타틴을 처방하면 그만이다.


심각한 심혈관계 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LDL 수치가 낮은 케이스는 흔히 보고된다. 약물 치료로 인해 LDL 수치가 인위적으로 낮아진 것도 문제지만, LDL 수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반면, 심혈관계 질환 환자의 HDL 수치가 높은 경우는 찾기 어렵다.


2001년 중국 연구 결과에 따르면, LDL이 130 이상이지만 총콜레스테롤/HDL이 5 미만인 경우에 비해, LDL이 130 미만이지만 총콜레스테롤/HDL이 5 이상인 경우에 관상동맥 질환 위험이 2.5배 이상 높았다.


콜레스테롤도 중성지방도 우리 몸이 필요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너무 많아도 문제겠지만, 우리 몸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콜레스테롤의 경우, 우리가 얼마나 잘 컨트롤하고 있는지는 HDL 수치를 통해 알 수 있다. 옮겨야 할 짐이 많다고 무조건 큰일 난 것은 아니다. 운반할 차량도 많다면 문제가 없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더 활발하게 작동하는 신체의 증거다. 인체는 항상성을 꿈꾸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스템이다. 활발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 적응력이 더 높은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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