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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Oct 26. 2023

규칙은 견고하게, 마음은 유연하게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15) 블랙리스트 2/2

최대한 짧게 만들고 싶지만, 블랙리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6) 가짜 우유, 저지방/무지방 우유


우유 자체를 끊으면 아주 좋다. 나의 경우, 커피를 라테로 마시기 때문에 절대 끊을 수 없다. 대체 우유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 우유로는 제대로 된 라테 맛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코코넛 밀크 정도를 제외하면, 대체 우유는 그냥 우유보다도 나쁜 가짜 식품이다. 당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상당수에는 식물유(불포화지방)가 포함되어 있다. 식품 건강에 관해 가장 널리 통용되는 단순한 규칙은 자연식품과 전통 식품을 먹자는 것이다.


저지방, 무지방 우유 역시 우유 대체제로는 불합격이다. 제대로 된 맛이 나지도 않으며, 우유의 해로운 성분은 그대로 둔 채 마케팅 차원에서 지방 성분만 낮추거나 없앤 것이다. 


락토프리 우유라면 괜찮다. 유당불내증을 일으키는 유당을 제거한 것이므로 속이 편하고, 유당이 없어져서 탄수화물(당류) 함량도 아주 조금 더 적다. 다만, 맛이 없다는 대가는 치러야 한다.


사진: Unsplash의Rich Smith


7) 가공육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기는 했지만, 정말 자신 없는 항목이다. 


2015년 WHO가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면서 가공육 논란이 점화되었다. 핵심은 발색제로 쓰이는 아질산나트륨이지만, 가공육에는 정말 다양한 식품첨가물이 들어간다. 나쁜 탄수화물인 덱스트린, GMO가 분명한 옥수수 전분, 과당, MSG 등이 기본이다. 덱스트린, 과당, MSG 모두 다양한 이름으로 표기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MSG의 경우 향미증진제, L-글루탐산나트륨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인다. MSG의 위해성을 말하면 꼰대 취급하는 문화가 요즘 대세인 것 같은데, 글루타미네이트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신경전달물질을 먹는 것이 과연 아무 영향이 없을지, 한번 생각이나 해보자. MSG는 Monosodium Glutamnate, 즉 글루타메이트에 소듐(나트륨)이 하나 달린 것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이니 괜찮다는 말도 별로 반박하고 싶지 않다. 아질산나트륨도, 비소도, 수은도 자연에 존재한다.


뇌과학의 유명한 명제는 7개를 넘어가는 목록을 인간이 소화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래 두 개 항목은 준-블랙리스트다. 적당히, 정말로 적당히만 먹자.



8) MSG


내가 넣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내 음식에 넣으니, MSG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완전히 피하는 것은 포기하고, 내가 직접 첨가하는 것만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인공 조미료를 쓰지 말고, 장류를 구입할 때 MSG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구매하면 된다.



9) 글루텐


글루텐이 장누수증후군과 알츠하이머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글루텐을 금지할 수는 없다. 그건 MSG나 설탕에 대해 규제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밀가루는 세계 인구 절반에게 주식이며, 세계 인구 거의 전체에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간식이다. 


셀리악병 환자들만 글루텐을 피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글루텐의 영향을 받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체가 어느 정도 견뎌내는가, 그것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글루텐은 렉틴의 일종인데, 렉틴은 식물이 먹히지 않기 위해 진화시킨 방어기제다. 즉 렉틴은 소화를 거부하는 물질이다. 


글루텐에도 종류가 있다. 밀가루의 글루텐은 협의의 글루텐이다. 글루텐 프리 식재료의 대표주자들인 귀리, 콩, 심지어 쌀에도 광의의 글루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밀가루를 피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유효한 전략이다. 밀가루의 글루텐은 다른 광의의 글루텐들에 비해 인체 흡수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글루텐은 정말 맛있다. 치명적인 유혹이다. 피할 수 없다면 먹는 양을 줄이기라도 해보자.


사진: Unsplash의khloe arledge


규칙은 견고하게, 마음은 유연하게


이 블랙리스트는 계속해서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다이어터들은 잘 알겠지만, 다이어트 최악의 적 중 하나는 <이왕 베린 몸(What the hell)> 효과다. 규칙을 못 지켰으니 오늘은 치팅 데이라고 선언하고 막 나가는 것이다. 


사소한 규칙 이탈이 대대적인 일탈의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블랙리스트를 관리한다는 표현에는 블랙리스트의 유지, 보수 외에도 규칙 적용에 있어 다소의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포함되는 편이 현명하다. 법을 어긴 김에 막 나가서 중죄인이 되는 것보다는, 그냥 경범죄를 저지른 소시민으로 남는 편이 낫다.


나는 술을 절대 마시지 않지만, 10년 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라면 한두 잔 정도는 마신다. 담배 역시 절대 피우지 않지만, 길을 걷다 보면 길빵을 당하는 것이 다반사다. 1년에 한두 번이라면 탄산음료를 마실 수도 있고, 아프리카 추장 아들의 초청으로 아주 진귀한 열대 과일 주스를 마시게 되었다면 그런 희귀한 경험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통조림 국물을 완전히 다 제거할 수도 없으며, 모든 가공식품을 금지하지 않는 한 트랜스 지방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탈리아에 가서 젤라토를 먹지 않는다면, 스카이다이빙용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뛰어내리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경험은 행복 추구의 핵심이다. 맛있는 음식은 그 자체로서 경이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스위스에 가서 슈바르츠발터퇴르테를 먹지 않는다든가, 이탈리아에 가서 젤라토를, 독일에 가서 소시지를 먹지 않는다면 그 여행의 의미는 크게 퇴색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까지 규칙을 깐깐하게 들이댈 필요는 단연코 없다.


으아아아아 ㅠㅠ (c) Unsplash의David Gabri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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