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Nov 04. 2017

우리 우주에 설계자가 꼭 필요한가

[서평] 모 가댓의 <행복을 풀다>, 두 번째 서평

모 가댓의 <행복을 풀다>의 또 다른 결론은 설계자의 존재에 대한 긍정이다. 이 세계는 누군가의 설계의 결과이며, 세상사는 설계자가 정한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 설계자가 정한 법칙에 위배되는 결과를 기대해봤자,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만 신경 쓰면서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모 가댓의 결론이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위대한 설계(grand design)'라는 개념은 내가 알리의 죽음을 직시하고 환희 상태를 유지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주제가 끊임없이 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알리의 죽음을 우연한 결과로만 생각했다면, 내가 환희에 도달하는 모델은 중대한 기둥을 일찌감치 상실했을 것이다. (모 가댓, 401-402쪽)


2010년, 우리 시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라는 책을 냈다. 설계자에 관한 호킹의 통찰과 비교해 보면서, 모 가댓의 결론을 살펴보겠다.


두 책 모두 일반 대중을 독자로 전제하는 교양서지만, <행복을 풀다>는 에세이에 가깝고, <위대한 설계>는 과학서적이다. <행복을 풀다>에서 저자는 설계자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증명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단순한 확률 계산일 뿐이다. 결론 먼저 말하자면, 이 우주가 설계자 없이 우연히 발생했을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깝다. 아니, 그냥 0이다.


원숭이가 자판을 무작위로 두드려서 <전쟁과 평화>를 완성할 확률은 대략 27의 3,480,000제곱 분의 일이다. 이 원숭이가 우리 우주보다 조 단위의 자릿수만큼 더 오래 살더라도, <전쟁과 평화>는 완성될 수 없다. 197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생화학자 크리스천 앤핀선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하나의 단순한 단백질이 모든 가능한 접힘을 무작위로 시도해 형성된 후, 최종적으로 안정된 구조에 이르려면 무려 1,026년이 걸린다.


결국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 전부를 만들어내려면 우주의 나이보다 1조 배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모 가댓, 434쪽)


이렇게 한없이 0에 가까운 일이 무작위로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한없이 무한대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에 지나지 않고, 태양계는 45억 년 전, 최초의 생명체는 겨우 37억 년 전에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우주는 무작위가 아닌, 누군가의 작위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제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를 살펴보자. 태양으로부터 지구의 거리는 아주 적당하다. 소위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이라고 불리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범위에 존재한다. 기막힌 우연이다. 그런데 이런 우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강한 핵력이 현재보다 0.5% 다르거나, 전기력이 겨우 4% 다를 경우, 모든 별의 내부에서 탄소나 산소가 발생할 수 없게 된다. 탄소계 생명체가 원천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말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이 우주를 지탱하는 물리 법칙들에 등장하는 상수가 '조금만' 틀어지면, 우리의 존재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우리 우주의 모든 조건들은 생명체를 위해 미세 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을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라고 한다. 약한 인류 원리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특징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강한 인류 원리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환경의 특징은 물론 물리법칙 자체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예컨대 전기력이 현재의 전기력보다 5% 크거나 작았다면, 탄소나 산소가 항성 내에서 융합될 수 없었을 것이고, 생명체가 탄생하지 못했을 테니 인류도 없었을 것이다. 인류가 없었을 테니 우주의 탄생에 대해 고민하는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명제의 대우로서,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주의 법칙이 현재와 같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이것이 인류 원리다.

<위대한 설계> 표지 (저작권자 도서출판 까치)

인류 원리는 마치 모 가댓의 결론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티븐 호킹도 '강한 인류 원리는 마치 신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썼다. 그러나 우리 우주는 제각기 다른 물리 법칙을 가진 수많은 다중 우주 중 하나일 것이라는 것이 호킹의 결론이다. 스티븐 호킹의 결론은 단순한 명제 뒤집기가 아니고, 아전인수는 더더욱 아니다. 


다수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인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우주론의 많은 이론들과 무경계 조건의 귀결이다. (스티븐 호킹, 207쪽)


무경계 조건이라는 것은 블랙홀과 같은 특이점에서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서로 상충하지 않는 조건이다. 현재 이 두개의 강력한 이론을 모순 없이 통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초끈이론의 최신 버전인 M-이론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스티븐 호킹이 아마도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M-이론은 다중 우주가 존재한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이제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 가댓의 결론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우주가 주사위 놀음의 결과로 발생하기에는 그 확률이 너무 낮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파생한 결론이지만, 모 가댓의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특히, 먼 미래 황폐해진 지구에 착륙한 외계인이 지구 표면 아래에서 다양한 모델의 아우디를 발견하고는, 아우디라는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그의 통찰력을 잘 보여주는 비유이다.)


모 가댓이 놓친 것은 다중 우주의 가능성이다. 전자의 스핀 하나하나마다 별개의 우주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다중 우주론이다. 존 스칼치(John Scalzi)는 SF 소설 <노인의 전쟁(Old Man's War)>에서 워프 항법을 설명하면서 다중 우주 개념을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리학 이론과 작가적 상상력이 결합한 아주 멋진 사례이다.


무작위의 결과로 우리 우주가 지금의 모습으로 발생하기에 우주의 역사는 너무 짧다. 그러나 존재하는 우주의 수는 모 가댓이 예로 든 원숭이 소설가가 <전쟁과 평화>를 무작위로 써낼 확률의 분모보다 훨씬 더 크다! 결국, 상당수의 우주에서 각기 나름대로 진화한 지적 생명체들은 자신들의 우주가 칼날의 균형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지금도 경탄하며 사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탄소로 되어 있든, 규소로 되어 있든, 산소를 호흡하든 질소를 호흡하든, 그들은 자신의 세계가 그토록 정교하게 자신들의 존재를 위해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설계자를 긍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약하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지금 이 상태로 무작위에서 발생할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우니, 누군가 설계를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모 가댓의 결론이다. 그는 이 결론을 통해, 세상일은 우리 인간의 통제 밖에 있으니,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의 행동과 마음가짐에 집중하면서 행복하게 살자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스티븐 호킹은 인류 원리를 긍정하고, 나아가 신을 긍정하는 듯한 이 생각의 어디가 틀렸는지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세상이 지금 현 상태를 정확히 예견하는 형태로 미세 조정되어 있는 이유는, 그렇게 된 경우에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능해져서, 지금 그 문제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우주는 수많은 우주들의 하나에 불과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것이 M-이론으로 귀결된 초끈이론이 풀어나가고 있는 물리학 방정식의 귀결이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청춘만 민망한 것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