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홍지혜, <오늘의 죽음 Q&A>
누군가는 이런 책이 뭔 소용이냐고 말한다. (실제 그런 평이 있다.) 어쩌면 막 던진 것처럼 보이는 죽음에 관한 질문들. 그러나 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좋은 질문은 어쩌면 좋은 해답(설명)보다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밑줄 그은 질문들에 대답을 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부끄러운 생각들이지만, 블로깅하면서 낯 가리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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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뜨겁게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A
이 질문에 즉각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신들의 봉우리>를 떠올렸다. 주인공은 높은 산을 오르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고, 나중에는 산 중턱에 집을 짓고 혼자 살면서 계속 산에 도전한다. 이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등반가가 된 그에게, 왜 그렇게 산에 집착하느냐고 묻는 관찰자에게, 그는 대답한다.
"산을 오르는 순간이 아니면, 사는 의미가 없게 되었어."
어쩌면 지루한 이 영화에서, 나는 이 한마디가 보석 같이 빛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 끝에 나오는 추천 영화 목록에서 이 영화를 발견했다.
캐서린 비글로우, <허트 로커>, 2008.
그렇다. 이 영화도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심지어 같은 대사를 한다. 안락한 고국 생활을 벗어나 다시 폭탄 제거를 위해 떠날 결심을 하면서, 주인공은 어린 아들에게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하는 일은 줄어들고, 내 나이쯤 되면 결국 한두 개가 되고 말아. 나는, 하나뿐이야. (The older you get, the fewer things you really love, and by the time you get to my age, maybe it's only one or two things. With me, I think it's one.)"
나는 당시 이 장면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목숨을 걸고 암벽을 오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폭탄 해체는 이해할 수 없다? 결국 나는 나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볼 뿐이다.
내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주는 순간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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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죽음조차 당신에게서 이것을 앗아가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긍정적인 마음, 깊은 우정과 사랑, 독
실한 믿음, 지성과 아름다움 같은 것 중 무엇이길 바라는가? 당신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1년 수입의 몇 퍼센트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가? 또한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평소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가?
A
생각하는 능력. 잘은 몰라도 연수입의 50%까지는 지불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걸 위해 평소 운동과 독서를 한다. 운동은 일주일에 5시간 정도, 독서는 글쎄 20~30시간 정도? 출퇴근, 운동할 때, 점심 시간, 주말에 카페에서... 난 짜투리 시간에 책 읽는 게 좋다.
***
Q
모든 사람은 지옥과 천국을 번갈아 한 번씩 태어나게 되어 있다. 당신은 이번 생에 지옥에 살게 되었다. 지난 천국의 삶에서 피할 수 있었던 슬픔과 고통 세 가지를 이번 생에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고,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 그것을 느끼고 있다. 현재 당신의 삶에 추가된 그 세 가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정말 고를 수 없다. 내가 지금 얼마나 안락하게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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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죽음만큼 우리의 삶을 단번에 반전시킬 좋은 기회는 없다. 당신은 죽음을 사용해 삶을 어떻게 완성시키고 싶은가?
A
전재산 사회 환원. 얼마 안 되겠지만.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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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의 장례식장에서 흘러나올 노래는?
A
내가 평생을 걸쳐 제일 좋아한 음악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전부를 좋아하지만, 물론 제1악장을 제일 좋아한다.) 그러나 그걸 내 장례식장에 틀어야 할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들, 내지는 그 자리를 지킬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틀어야 하지 않을까? 죽은 다음에까지 내 개성을 뿜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Q
죽음을 앞둔 당신에게 색다른 모험을 해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로 떠나겠는가?
A
SF 소설, <노인의 전쟁>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소설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같은 선택을 할 듯. 책상물림으로 오래 살았으니, 새로운 몸을 얻었을 때는 신체 활동을 직업으로 갖고 싶다. 그게 전쟁이라는 건 좀 꺼림직하지만.
Q
당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 생생히 볼 수 있다. 당신은 이 구슬에 얼굴을 비추어보겠는가?
A
그렇다. 언제 죽는지 아는 것만으로 매 순간이 더 충실해질 것 같다.